1년. 시간의 흐름은 빠르다.
작년 3월에 성도 없이 메시에 마라톤을 해보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해본지도 벌써 1년이 흘러 다시 3월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내년에는 더욱 정교하게 성도를 외워서 도전해야지'라고
다짐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마라톤 일주일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ㅎ
어려운지 알면서 준비 안하고 버티는 건 무슨 배짱인가..
열흘이 넘게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성도 한번 펼쳐보지 않는 이 게으름은 ㅋ
대회 일주일전 토요일부터 성도와 참고자료를 프린트해서 예견된 벼락치기를 시작..
쉬운건 대충 대충 넘어가고 어려운 것만 집중적으로.. 8등성 별배치까지
머리속에 그냥 마구 되는대로 구겨넣는다
구겨넣은 정보들이 제멋대로 결합되고 변형되어 68번 호핑길에 106번 별들만 생각나고.. 엉망 -_-;;;
다 외운 페이지는 찢어버리고 남은 어려운 대상들만 반복 암기를 하다보니
종이 찢는 맛에 더 열심히 외우게 된다.. ㅎㅎ
결국 마라톤 전날..
60여개의 까다로운 대상에 대해, 번호를 보면 1초 안에 완벽한 호핑 루트가 떠오르도록 모두 확인하고
스텔라리움에서 모든 표식 지우고 광해등급 높여서 최악의 경우를 산정해서 최종 리허설까지 마쳤다
마라톤 당일, 하늘이 너무너무 파랗다.
예보도 위성사진도 완벽하고..
12년간의 마라톤 중 이렇게 완벽한 조건이 있었던가?
오후 2시반에 출발해서 1시간만에 서울을 막 빠져나올 즈음
뜬금없이 몰려오는 졸음 -_-ㅋㅋ
설날 교통사고의 트라우마도 있고.. 우선 무조건 자고 가자고 하남휴게소에서 눈을 붙였는데
눈을 떠보니 이미 한시간이 흘렀다. 마라톤 출발시점이 간당간당한 상황..
마라톤 전 체력 완충한 것이라 위안하고 ㅋ
열심히 달려 월현리까지 오니 여기부턴 완전 설국-_-;;이다
쭉쭉 미끄러지며 겨우 천문인마을에 도착하니
대회를 위해 아침부터 8시간 눈을 치웠다는 천문대장님의 눈부신 이마가 나를 맞이한다
생면 부지의 동아리 후배들 노동력을 착취해서 최단 시간에 망경 짐을 다 나르고도 시간이 부족하다
밥은 당연히 먹을 시간 없고 세팅이 끝나기도 전에 마라톤은 이미 시작! ㅠ_ㅠ
부랴부랴 세팅을 마치고 하늘을 보니,
심혈을 기울여서 달달 외운 74 77은 시도도 못 해보고 이미 안녕 ㅠㅠ
마음을 추스리고 안드로메다를 뒤지다가 산등성이 바로 위에서 31번을 찾았다
내 7번의 마라톤 중 처음 찾아본 31인듯 -_-ㅋ
근데.. 32 110이 안보인다
한솔님 80mm로도 110이 보인다는데.. 15인치로 안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이피스 갈아끼우고 하는 통에 근처에 있었을 32랑 110은 서산 너머로..
33번은 정확한 위치를 잡았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32 110번도 같은 이유로.. 고도가 낮아져서 급격히 밝기가 어두워진 것이 원인인 듯 하다
쩝.. 초저녁 비상사태에 겨우 31 하나 건지고 정속 모드로 전환하여 마라톤 진행.
페르세우스에서 34를 찾고 76으로 가는데
이런 왜 76이 안보이는거지?
호핑길도 쉽고 15인치 구경빨에 겨우 76 때문에 10여분을 허비. 결국 포기.. -_-;;;
북서쪽으로 사라지는 카시오페이아에서 가볍게 103을 넘어서 52번.
나에게 52번은 마의 대상이다
그동안 스타호핑으로 800개 정도의 대상을 찾아 보았는데
52번은 평상시에 성도 보고 찾을 때도 단 한번도 헤메지 않은 적이 없다
옆에 계신 한솔님은 그 쉬운 것을 못 찾는게 더 이상하다고.. ㅠㅠ
52는 결국 맹훈련의 보람도 없이.. 63mm 잘난 파인더에도 안걸리고
결국 서산 아래로..
괜찮아 새벽에 또 떠오르겠지....
그 뒤로는 48 93 67 등 까다롭다고 생각한 대상들은
성도 보고 달달 외운 덕에 각각 소요시간 5초 이내로 허무할 정도로 쉽게 찾았는데,
의외로 46 47에서 뜬금없는 삽질을 반복한다
워낙에 쉬운 위치라 마라톤 준비할 때 성도도 한번 들춰보지 않았는데
머리속에서 다른 대상의 복잡만 호핑루트 기억과 짬뽕이 되어서
계속 헤메는 중에 갑자기 북쪽에서 구름떼가 몰려오고....
지리멸렬한 노가다 삽질 끝에 구름 속에서 46은 겨우 찾았으나 결국 47은 포기!
예보가 이렇게 좋은데.. 조금 기다리면 걷히겠지...
지하 카페테리아에 내려와서 세어보니 벌써 놓친게 74 77 33 32 110 76 52 47..
8개나 놓쳤다.
새벽에 52를 다시 잡는다 해도, 좀 있다가 47을 다시 찾는다 해도
새벽에 4개 이상을 더 놓치면 100개가 안나오는 것.
새벽애 30에 72 73 75에서 더 이상 놓치면.. 이 하늘에서 15인치로 100개를 못하면
천벌신께서 진노하실텐데.. ㅠㅠ
초저녁 관측 이후 기다려도 기다려도 하늘은 열리지 않는다
보현산의 궁수님과 이현호님께 연락해 보니 그 곳은 날씨가 괜찮은 것 같다...
야간비행 언니오빠들과 별보는 얘기를 하다가 양평 김병수 님을 처음 만났다
스케치 계의 떠오르는 신성 (양평)김병수님!!
이제 관측을 시작한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오리온과 M47 스케치는,
그 정교함과 감각은 마치 스케치계의 유일신인 윤정한 도사님의 화풍에 감히 견줄만하다
(김병수님 오리온 스케치)
http://cafe.naver.com/skyguide/76691
김병수님의 스케치 배경 작업 방식은 나도 따라해 봐야겠다.
스케치의 생동감에 큰 도움이 될 듯..
자정 무렵이 되어 하늘이 조금 열렸다
그 소식을 듣고 카페테리아에 앉아있던 선수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급 관측준비.
나도 서둘러 천문대 옥상에 올라가보니 서쪽 하늘이 반쯤 열렸다
사자를 잡고 큰곰으로 가려니 또 구름이..
한참 기다리다가 구름 구멍 뚫린 데부터 닥치는대로 찾기 시작한다
준비해온 관측 순서는 이런 게릴라전에서는 무용지물.
보이는대로 머리털을 잡고 처녀 T로 이동.
옆자리의 한솔님은 구름속에 80mm로 처녀은하단에서 힘겨운 호핑을 하셨지만
은하단은 고저 구경이 깡패 ㅋ
후루룩 16개를 한번에 훑고 나니 다시 구름이 몰려와서 하늘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다시 내려와서 화백님께 그림에 대한 고견을 구하고
별쟁이들과 다시 별얘기에 집중하다가 한참 졸다가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별이 10개 정도 보인다
새벽 3시반에 다시 한솔님과 긴급 출동!
하지만 구름 사이의 구멍은 더 작고 더 빨리 움직이고 게릴라전을 하기에도 척박한 하늘.
순간 베가가 보이길래 한솔님과 동시에 57을 잡았는데.. 이게 이날의 마지막 대상이 될줄이야 ㅠㅠ
생각해보면 57번은 나에게 단 한번도 실망을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날이 좋건 나쁘건, 구경이 크건 작건 간에.. 그리고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쉽게 그 얼굴을 보여주는 '착한 성운'이랄까.. ㅎㅎ
다시 카페테리아로 내려와서 팔베게를 하고 한참을 졸다가 깨어보니
한솔님은 벤치에 길게 누워 새우잠을 주무시고, 시간은 이미 새벽 5시가 넘은 상황.
허겁지겁 밖에 나가보니 살짝 여명이 감도는 하늘 가득 구름이.. ㅡㅡ;;;
이제는 포기. 나도 비어있는 벤치를 찾아서 늦은 잠을 청했다
마라톤 결과는 이한솔님이 49개를 찾아서 작년에 이어 대회 2연패 달성!
80mm 구경으로 우승한 것은 2001년 제1회 메시에 마라톤 이후
우천으로 완전 취소된 2006년을 제외하고 11번의 마라톤 중 최소구경 우승 기록이다
새로운 기록을 세우신 한솔님께 경의를 표하며..
내년에는 성도 암기 마라톤에 같이 도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ㅎㅎ
나는 43개로 2위. 41개를 찾으신 김병수님이 간발의 차이로 3위..
4위부터는 발표를 안해서 잘 모르겠다
사실 15인치로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반칙인데.. ㅎ
작은 구경으로는 2008년에 5인치로 해본 뒤로 답답해서 못하겠고 ㅋ
(2008년 메시에 마라톤 기록)
http://www.nightflight.or.kr/xe/32266
앞으로도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올때까지는 계속 성도 암기 마라톤에 도전할 것이다..
[Summary]
관측 성공 : 43개
관측 실패 : 8개 (74 77 32 110 33 52 76 47)
관측 불가 : 59개
관측 성공률 : 84%
얻은것 : 1. 메시에 스케치 작업시 성도 안봐도 됨
2. 내년에도 또 성도 암기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음
교훈 : 익숙하다 자만말고 어렵다고 쫄지말자
(76 47 93 105를 회상하며)
내년에는 더 멋진 마라톤이 될 것을 기대하며..
새벽 여명의 엄청난 쪼는 맛을 다시 느껴보길 기원하며....
Nightwid 無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