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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대학생이 되면 꼭 김광석의 라이브 공연에 가보고

 

천문동아리에 들어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고 싶다는

 

두가지 명확한 소망을 가진 고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원서 내고 오는 길에 신문 가판대에서 김광석 사망 기사를 만났고

 

아직 동아리방도 구하지 못한 신생 동아리의 겸손한 장비는

 

내 쓸데없이 커다란 욕망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아 이게 뭐야

 

현실에 실망한 신입생은 여름방학을 맞아서

 

친구들이 여자를 꼬시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해운대 해수욕장 원정(?)을 추진할때

 

그 옆의 삼성자동차 공장 건설현장에서 두달을 노가다를 뛰었다

 

돈 모아서 망원경 사려고 말이다

 

 

그 현장의 소장이던 아버지가아들 고생하는 것을 며칠 보시더니 더는 못봐주시겠던지

 

그 망원경 얼만데 그러냐 사줄테니 당장 서울로 올라가라는 것을

 

어린 마음에 오기가 생겨서 방학 끝날 때까지 거기서 죽기살기로 버텼다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아름다운 백색의 망원경.

 

 

1996년은 그리 망원경이 흔한 시절이 아니라서

 

신입생이 다까하시를 샀다는 소문은 금세 다른 학교 동아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게 뭣에 쓰는지도 모르고 그저 샵에서 가장 멋있어서.. 뮤론 210을 C기획에서 신품 구매)

 

 

300만원짜리 망원경을 덜컥 사놓고 보니 우선 겁부터 났다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

 

그리고 내가 이 비싼 물건을 가치있게 쓸 수 있을까나를 향한 의문.

 

 

우리집 마당에서 4시간이 걸려서 57번 고리성운을 찾았다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나사진이랑은 다르네..

 

목성을 잡아 놓으니 줄무늬는 보이는데 아이피스 안에서 계속 흐른다

 

C기획에 가대 불량이라고 클레임 전화를 하니

 

니가 지금 지구의 자전을 목격한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 ;;;

 

 

이런게 관측이라고 하는게 맞는건가


어디 물어볼 데도 딱히 없고


그냥 혼자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가

 

망원경 사고서 한달쯤 뒤,

 

회사 회식 갔던 곳이 어둡던데 거기 데려다 주겠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차를 타고 간 곳은 파주를 지나 임진각 주차장이었다

 


텅 빈 주차장에서 부모님은 돗자리를 펴고 고기를 굽고

 

나는 옆에서 망원경을 펴고 성도를 보며 대상을 찾았다

 

서쪽으로 지기 전에 우선 궁수부터..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초가을 저녁 하늘에서 처음 만난 M22

 

나에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다까하시 번들 아이피스를 가득 채우는 빽빽한 별들의 집합.

 

세상 어디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을까?

 

 

무엇에 홀린 것처럼 22번을 보다가..


나는 그만 정신이 휙미쳐 버리고 말았다


(요즘 시절로 본다면 미끼를 물어븐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공부도 안 하고 미팅도 안 하고

 

당구도 안 치고 오로지 한길, 미친듯이 별만 보러 다녔다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그 미친 상태는 변함없이..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젠 관측 기술도 발전하고

 

망원경도 15인치로 두 배가 커졌는데

 

이상하게도

 

임진각에서 나를 홀렸던 그 22번의 충격적인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남쪽의 평범한, 아니 조금 큰 구상성단일 뿐.

 

에이 그냥 머릿속에서 미화되고 금칠된 기억인가보다

 


 

2008년 5월 천문인마을날씨가 너무 좋고 컨디션마저 좋아서

 

밤새 관측을 하고서 새벽녘에 궁수자리를 맞았다

 

그리고는 오래된 습관, M22부터....

 

아이피스에 눈을 들이밀었다가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영화 '라따뚜이'에서 생쥐가 만든 음식을 한 입 먹고서

 

어린시절 어머니의 음식을 먹던 시절로.. 순간이동에 맞먹는 회상 씬을 펼친 평론가처럼 말이다

 

rata.JPG 

 


 

2008년 어느 새벽의 천문인마을, 22번을 보자 마자 나는

 

1996년 임진각 주차장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아이피스를 가득 채우는 빽빽한 별들의 집합!

 

내가 본 것이 미화되고 금칠된 기억은 아니었구나




아래 그림은 그 이후 메시에 스케치 연작 중 그린 '보통' 22번이다

 

[ M22, 언젠가는 또..   조강욱 (2012) ]

M22_res_110606.jpg 

 


(Description : 암흑대에 주목해 보자)

M22_des_110606.jpg  

 


1996년 이후 2008년에 한 번, 12년만의 해후 이후에 지금까지

 

그런 황홀한 22번은 아직 다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지구상의 것이 아닌 그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또한번 알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일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오늘도 궁수자리가 뜨면 자동으로 22번을 먼저 겨눈다

 

언젠가는 또.....

 

 

 


나를 별이라는 것에 미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 M22라면

 

여러분의 M22는 무엇인가요?

 

 

 



                                                               Nightwid 無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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