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 중위도에 사는 관측자에게 M13은 특별한 존재이다
‘하늘에서 가장 밝고 큰 보기 좋은 구상성단’이기 때문이다.
과연 진짜로 그럴까?
전 하늘에서 가장 밝고 큰 구상성단부터 순서를 매겨 보자.
13번의 위치는 Top 5에도 들지 못하고 겨우 7번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대상 중에서도 22번, 5번보다 밝기가 어둡다.
다만 앞 등수의 위인들보다 하나 우세한 것은 남중고도 뿐.
왜 그런 것일까? 밤하늘의 왕건이 구상성단은 모두 하늘의 남쪽에 있다
아무리 13번이 멋져도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5139 104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것..
그리고 남반구의 높은 고도에서 보는 22번 또한 북반구의 13번보다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뭐 어쨌든, 대부분의 별쟁이들은 북쪽 땅에 산다. 그래서 과거부터 13번에 대한 관측 기록도 많고,
현재도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든 별이든 터를 잘 잡아야 한다
19세기 최고의 별쟁이이자 구경병의 조상님이었던 아일랜드 로스경의 스케치를 보면
성단 사이의 갈라진 틈, 일명 벤츠 로고를 잘 볼 수 있다
[ Rosse's Propeller (1850년대) ]
근데 하나 의아한 것은.. 로스경의 (실은 조수가 한) 스케치에선
성단 정중앙을 장대하게 지나가는 암흑대가 표현되었는데
현대의 관측자들은 한 귀퉁이에서 암흑대를 찾는다는 것이다
미국 관측자들은 주로 프로펠러라고 한다
[ M13, Roger Ivester (연도 미상) ]
우리나라 별쟁이도 한 번!
[ M13, 임광배 (2013) ]
19세기 로스경의 스케치는 그냥 대충 그린 것일까?
아니면 시선방향으로 훨씬 가까이 있는 암흑성운이
150년 사이에 슬금슬금 옆으로 이동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
※ 13번의 프로펠러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김민회님의 멋진 글로 대신한다
http://www.nightflight.or.kr/xe/observation/179803
나도 프로펠러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여
2012년 인제의 어두운 하늘에서 2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서
샤프로 점을 찍어 보았다
[ M13 - 인제에서 조강욱 (2012) ]
13번의 구조는 그 크기와 밝기 만큼이나 다채롭다
여러 줄기의 스타 체인과 빽빽한 내부 별들.
휴 이걸 언제 다 그려....
별이 더 많은 오메가 센타우리는 어떻게 찍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 오메갓! 센타우리 - 호주 원정에서 조강욱 (2010) ]
전체적인 모습은 다리 긴 빛나는 거미 같은 형상으로 보이는데,
프로펠러는 한참 봐도 찾기 어렵다
결국 같이 갔던 ‘프로펠러 본 남자‘들의 코치를 받고서야 한쪽 구석에서 쪼끄만 프로펠러를 찾았다
애걔.. 겨우 요만한 거네~
북반구 최고의 구상성단의 위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프로펠러..
보기가 어렵다기보다는 어떻게 보이는지 모습과 요령을 몰랐던 것이다
(Description)
M13 근처에는 볼만한 (또는 볼만하지 않은) 은하 두 개가 위치해 있다
하나는 13번만큼 사랑받은 NGC 6207번 은하다. (6~8인치로도 잘 보인다)
작지만 밝은 측면은하라 아이피스에 13번을 잡아놓고 그냥 휘휘 돌려도 얻어 걸리기도 하는 정도인데..
그리고, M13과 NGC 6207 사이에는 훨씬 더 작은 은하가 하나 있다
아래 빨간 동그라미에 있는 아이다.
(자료 출처 : 야간비행 김경싟)
이름은 IC 4617. 본인 망원경이 15인치 이상이라면
아래 정도 디테일의 사진 성도와 함께 한 번 시도해보자
언젠가는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야간비행의 4617번 관측기록들을 검색하여 읽어 보는 것이다)
다시 내 그림 얘기로 돌아가서..
13번을 관측한 날, 주중의 무리한 번개 관측이었음에도 하늘이 좋고 점이 잘 찍혀서(?)
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왔다. 회사에서도 피곤한줄도 졸린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며칠뒤 노동절, 울 마나님과 오붓하게 과천 현대미술관에 놀러갔다
(딸님은 당시 유치원에 다녔는데, 유치원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안 쉰단다)
마침 한국의 단색화전을 하고 있어서
이우환 화백 그림의 원작을 감상하고 싶은 소망을 품고 멀리 과천까지 출동한 것인데,
맨날 새끼손가락만한 사진으로 그림을 보다가 2미터가 넘는 원작들을 감상하니
감동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역시 그림은 크게 그려야 제 맛.
하지만 전시회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작품은 이우환 화백이 아니라
뜻밖에도 곽인식 화백의 점그림 연작이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작품의 '공식적인' 의미는 물론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나에게 그 작품들은 완벽한 별그림 그 자체였다
어떻게 저렇게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점을 찍을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미술관에서의 영감이 희미해지기전에
간만에 유화지와 아크릴 물감을 꺼내들고, 옆에 13번 스케치를 펼쳐놓고
아크릴 물감으로 13을 재구성한다
큰 붓으로 동일한 크기의 묽은 점을 겹쳐 거칠게 찍고,
세필을 들고 M13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몇 가지 상징을 표시했다
[ M13, 캔버스지에 아크릴 - 조강욱 (2012) ]
아, 이 그림은 올해 천문연구원 천문달력에도 실려 있다 (자랑 자랑)
나는 2시간동안 쥐잡듯이 샤프로 정밀묘사를 한 M13보다
큰 붓으로 거칠게 표현한 M13이 더 마음에 든다
내 눈으로 아이피스를 통해 본 모습과 더 유사하기 때문이다.
천체스케치를 함에 있어서 표현의 한계는 없다.
다만 무슨 짓을 해야 더 사실감이 살아날지 무한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Nightwid 無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