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북극권 원정 - #10.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진인사대천명
2015. 7. 14 (火) 조강욱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6.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7.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8. 7일차(스발바르) :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
9.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0.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진인사대천명
============================== 9일차 (21 Mar 2015) ==============================
새벽 3시반,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오늘 오슬로 - 코펜하겐, 코펜하겐 -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 인천까지
세 번의 비행을 하려면 새벽 6시10분 오슬로發 코펜하겐行 첫 비행기를 부지런히 타야 한다
호텔 이름에 B&B(Bed & Breakfast)가 들어가서 그런지
새벽 3시반에도 미리 주문만 하면 아침밥을 깨알같이 차려준다
퀄리티는 뭐... 새벽에 밥 차린 정성을 생각해서 봐준다!
새벽 4시.. 공항으로 출발
새벽의 오슬로 공항, OSL은 너무나 한산하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창가 자리에 대한 집념 (자리 선점 중)
짐은 다행히 ICN(인천)까지 한 방에!
노르웨이 땅에서 마지막 한 컷
나 개기일식 본 사람인데요.. 깨알 자랑
비행기에서 보는 일출
일출의 순간, 그 색의 변화는 언제 봐도 새롭고
언제 봐도 아름답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의 아이슬란드항공 광고
스발바르나 그린란드도 취항할만 한데..
비행기 오타쿠 Nightwid.
아마도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보다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아점을 해결하기 위해 라운지로
라운지의 신문에는 어제의 스발바르가 메인으로 떠 있다
이들도 못봤을 것을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감동이 밀려온다
코펜하겐 ASPIRE 라운지의 음식은 심플하지만 훌륭했다
모닝 맥주와 함께 스케치도 한 장 완성
[ 새벽의 여신 & 새벽, 갤노트4 & 터치펜으로 키루나에서 조강욱 (2015) ]
이제 비행기 쫌 타 봤다고 뱅기 탑승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추어 라운지에서 나와서 출국장으로 향하니
다른 라운지에 있던 한솔 형님이 마중나와 있었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 공항에서 사람 찾는 방송까지 했다는 것이다
귀국 트라우마 조심..
아무도 없는 출국장에서
출국장에서 뱅기까지는 버스 타고 활주로를 달린다
버스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아마 기사 아저씨 짜증 났을 듯
이 와중에도 깨알같이 빗속의 뱅기 구경
뱅기만큼 좋아하는 것. 끝없는 활주로
그렇다고 공군을 나왔거나 모형 비행기라도 한 번 날려본 적도 없다 (별로 관심도 없다)
그냥 그저 유아기적 호기심의 지속이랄까..
다시 한 시간을 날아서 비행기들의 고향, 큰집, 또는 전시장인 스타 얼라이언스의 총 본산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UNITED는 2017년 8월에 타 볼 기회가 있을지도..
유럽 최대의 허브 공항 FRA의 위용
여기서 서울 가는 비행편은 6시간이나 뒤에 있다
놀면 뭐하나.. 시내 구경이라도 하려고 전철 타러 출발.
아마도 독일 국산품일 전철 (뱅기와 다르게 기차덕후는 아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구글 지도에 의지해서 괴테하우스 찾아가는 길
요즘 그리스 사태로 자주 보이는 유럽중앙은행 (EBC) 사옥
외관은 꼭 짓다 만 것처럼 노출 콘크리트에다가 별로 맘에는 안 드는데 별이 많아서 봐 준다
괴테 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데 외관은 너무나 소박해서 그냥 지나칠 뻔 했다
괴테형님 자화상
소박한 외관과 달리 내부의 괴테 생가는 방마다 특색이 다르고 화려하다 (원래 부잣집 아들이었다 함)
그 당시에도 설정샷이 있었던 듯
독일을 대표하는 대 문호 괴테의 박물관인데..
모든 것은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제목밖에 모르는 내가
이 박물관의 가치를 온전히 느끼기엔 무리가 있겠지.
별쟁이 눈에는 천문시계만 보인다
그림을 좋아한 괴테는 상당한 양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무는 노가다를 많이 할수록 더욱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다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나뭇잎 노가다의 덧없음
초승달에 지구조까지.. 기가 막힌다
구름에 비친 보름달빛. 내가 생각해 두었던 아이템은 이미 몇백년 전에
누군가 모두 써먹었었네.. 사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그냥 지나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도 월령 2일쯤의 달. 월령 1일은 저렇게 잘 안보이겠지..
(난 이제 월령 1일 달 하나 남았다)
이것도 해 보고 싶은 작업이었는데.. 역시 수백년 전에..
쌍무지개 색깔 순서도 정확하게. 상상으로 그리진 않았나보다
이건 괴테가 직접 그린 스케치.
세계적인 문학가가 그림마저 잘 그린다
프랑크 푸르트의 두 번째 관광지, 뢰머 광장
성냥갑 같은 길고 뾰족한 집들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천칭을 들고 서 있다
저 천칭을 보고 초여름 밤하늘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별쟁이들 밖에 없을 것이다
고대 수메르 시절부터 전갈자리의 일원, 전갈의 발톱이었던 천칭자리..
아직도 그 흔적은 별 이름에 남아서
Alpha별인 주벤엘게누비(Zubenenubi)의 뜻은 남쪽 발톱(또는 집게발),
Beta별인 주벤에샤마리(Zubeneshamari)는 북쪽 발톱이다
(천문학회 유태엽님 글 참조 : http://www.seoulkaas.org/xe/index.php?mid=AstroNews&document_srl=268746)
장마철 사이에 기회가 있으면 활짝 편 집게발 한 번 봐줘야겠다
Alpha와 Beta 중 어느 것이 남쪽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네이버에 천칭자리를 찾아보니 첫 번째 검색 결과는..
아 진짜 장난하나 겨우 연애용 별점을 천칭자리 1순위 검색 결과라고...
사실 뭐 별쟁이 아니면 아무 관심 없겠지
각설하고.. 여튼 다음 관광지로..
뢰머광장 뒤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수백년간 열렸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인강변에 오리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다
오리(는 모르게) 한 마리와 함께
다시 그 뢰머 광장에 돌아와서 성냥갑 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성냥갑으로 입장
전투식량과 안성탕면으로 다져진 뱃속에 레알 정통 독일 맥주를 쏟아넣으니
부드러운 바이스의 식감에 식도와 위가 막 녹아내릴 것만 같다
한솔형님 또 잘 먹겠습니다~~
독일 모듬안주. 프랑크푸르트에 프랑크소시지가 없으면 왠지 많이 서운할 것 같다 (족발도 있음)
낮술 먹고 가로수에 빙의
누나들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우리 키가 작은 건지 독일 사람들 키가 큰 건지..
어릴 때 지하철 손잡이가 잡고 싶어서 까치발을 들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난다
오후 6시 30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무슨 사정인지 7시 반으로 연기 되었다가, (며칠 전 통보 받았음)
그나마도 30여분을 더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원정 기간 중 처음이자 마지막 연착이었다
만약 10번의 비행 중 2번째~9번째 일정이 연착이나 취소가 되었으면 그 연쇄적인 파장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뭐 어떻게든 또 꾸역꾸역 수습하고 넘었겠지만 굳이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 비행기까지 기어코 창가를 확보했는데...
밤비행기라 극강 은하수 보면서 가겠다고 담요 신공까지 연습해 놨는데
Window seat은 맞는데 window는 없다
아 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그 덕에, 이코노미 닭장 안에서도
그간 부족한 수면 시간을 꽉꽉 채워 보충하며 세상 모르고 밤새 잘 잤다
============================== 10일차 (22 Mar 2015) ==============================
아시아나 귀국편엔 두 번의 기내식이 나왔는데
매운 전투식량과 라면을 주식으로 먹다보니 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도 한국 음식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아서
두 번 모두 양식으로
근데 매일 인스턴트로 1일 2식 하며 연명하다 보니
귀국하여 집에 와서 체중계에 올라 보니 몸무게가 2kg이 줄었다
(감동적인 관측에다 체중 감량까지.. 일석이조의 효과)
단거리 비행만 반복하다가 10시간 넘게 닭장에 앉아 있으려니 시간이 너무 안간다
놀면 뭐하나. 노트북을 꺼내서 관측기 목차를 짜 본다
확실히 글을 쓰면 시간이 잘 간다
몇 줄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인천 앞바다 스멜이 풍긴다
공항 옆에 사는 사람은 매일 비행기 구경하겠지. 나도 언젠가는?
색동 무늬가 많이 보인다. ICN(인천공항)에 오긴 왔나보다
짐이 나오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림. ICN 답지 않네
어쨌든 10번의 비행에서 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귀국까지 모두 성공!
저 입국장 자동문은 참 묘한 마력이 있다. 사람을 설레이게 한다고 할까 (서호주 관측기 처음과 끝 참조)
열흘만에 다시 보는 원장님과 딸님
열흘간 생사고락을 같이 한 세 명의 북극 원정대
문제 : 아빠의 지령을 받은 조예별 양의 연속동작의 의미는?
정답 :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 The End ==============================
북극에 다녀온지 3개월 반이 지났다
분기마다 몰려오는 업무 폭풍도 두 번이나 지났다 (분기말 분기초가 사업기획 폭풍 시즌)
그래도 북극에서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게 떠오른다
북극 뿐인가. 09년 중국 항저우, 10년 호주 쿠나바라브란,
12년 도쿄와 호주 레이번 그리고 케언즈, 재작년 필리핀 세부와 작년의 서호주까지
모든 해외 원정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2009년 항저우 서호에서 개기일식 직후
☆ 2010년 호주 Miles 인근 외딴 농장에서 새벽 박명을 맞으며
(관측기록 : http://www.nightflight.or.kr/xe/33121)
☆ 2012년 도쿄 스미다 강변에서 금환일식을 관측하며
(관측기록 : http://www.nightflight.or.kr/xe/58324)
☆ 2012년 호주 레이번에서 환상의 하늘과 함께
(관측기록 : http://www.nightflight.or.kr/xe/63445)
☆ 2013년 필리핀 세부 리조트 앞바다에서
(관측기록 : http://www.nightflight.or.kr/xe/109205)
☆ 2014년 홧김에 떠난 서호주 자연의 창에서
(관측기록 : http://www.nightflight.or.kr/xe/143443)
생각해 보면 그간의 원정에선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 해도 무언가 하나씩 아쉬운 것들이 있었는데
이번 원정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준비과정의 어려움은 반대로 그간 원정 중 가장 힘들고 난해했다)
하늘이 우릴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근데 고맙긴 한데 진짜 우리를 왜 그렇게 도와준 걸까?
인심 쓰는 김에 그믐주간 주말마다 맑은 하늘도 하사해 주시지..
(오늘도 관측주간 주말이지만 쉼 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귀국하여 관측기록을 쓰며 정보를 찾아보니,
우리가 폭풍의 하늘을 만난 2015년 3월 18일은 올해 최대의 오로라가 몰아친 날이었다
같은 동네, 키루나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이 APOD에 올라오고
[ 키루나의 깃발 부대, Mia Stålnacke 作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a-flag-shaped-aurora-over-sweden/)
또 하나.. APOD에 올라온 다른 사진.
평소에는 오로라 구경을 할 수 없을 북위 59도의 스톡홀름 인근 지역이다 (키루나는 북위 67도)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eb%92%b7%eb%a7%88%eb%8b%b9%ec%9d%98-%ec%98%a4%eb%a1%9c%eb%9d%bc-aurora-in-the-backyard/)
니코 고향 동네 폴란드에서도 (촬영자 이름이 Nikodem인걸로 보아 Niko 친척일수도..)
(출처 : https://img.washingtonpost.com/wp-apps/imrs.php?src=https://img.washingtonpost.com/blogs/capital-weather-gang/files/2015/03/Marek-Nikodem-DSC_8169_1426647585_lg.jpg&w=1484)
하물며 남부 유럽에서도..
프랑스
(출처 : https://twitter.com/infoclimat/status/578098830949810177/photo/1)
독일
(출처 : http://youtu.be/7YOWWpNLuG0)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출처 : https://twitter.com/JamesMontanus/status/578088666972569601/photo/1)
지구 반대편 남극 인근에서도 오로라의 은총은 아낌없이 공평하게 내려져서,
뉴질랜드에 원정 갔던 이용해님도 같은 날 엄청난 오로라를 촬영했다
[ 뉴질랜드 남섬 Lake Pukaki에서 이용해님 作 ]
http://cafe.naver.com/skyguide/151476
고려시대 관측기록에 심심치 않게 나온 적기(赤氣)가 생각난다
3월 18일 같은 날이었으면 고려의 천문학자들도 모두 붉은 커튼을 보았겠지..
오로라의 활동 측면에서 본다면 연간 최고 수치를 기록한 3월 18일, 스웨덴에서의 마지막 날이 압도적이겠지만
[ 김동훈作, 오로라 백화점 ]
가장 심미적으로 아름다웠던 오로라는 그 전날,
아비스코 얼음 호수에서 본 오로라 다리였다
장엄한 호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두 개의 다리.. (오로라와 은하수)
얼마 전 운전하여 잠수교를 지날 일이 있었는데
뜬금없이 아비스코에서의 두 개의 다리가 생각났다
이건 큰 병이 틀림없다
사실 북극, 스발바르에서는 변변한(?) 오로라를 관측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북극을 떠난 날 밤에 오로라가 대박이었다고 한다
뭐 우리도 이정도 봤으면 마이 묵었다 아이가
원정 중에 초딩 2학년 딸래미가 아빠의 오로라 자랑질 얘기를 듣고서
학교 숙제로 나온 동시 일기의 주제로 간택을.. (라임을 맞추는게 미션이었다고 함)
오로라를 본 아빠도 춤을 춘대 ㅋㅋㅋㅋ 어떻게 알았지?
귀국하여 인터넷으로 개기일식 소식을 검색해보니
개기일식 얘기보다는 '일식 보러 갔다가 북극곰 만난' 체코 사람 얘기만 가득하다
북극의 숙소가 Travel Quest의 독점 횡포에 워낙 부족해서 나도 궁여지책으로 캠핑장을 생각하다가
북극용 텐트며 침낭이며 난로며 도저히 챙겨갈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말았는데
일본의 단체팀과 또 숙소를 구하지 못한 수많은 일식 난민들이 결국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텐트 안의 사람들이 뿜는 입김이 텐트 꼭대기에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어 얼굴에 떨어졌다는 클레임은 애교 수준.
캠핑하는 사람들끼리 자율적으로 돌아가며 밤새 북극곰 불침번을 섰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경비망(?)을 뚫었는지 아님 경계태세가 불량했던지
배고픈 북극곰이 텐트를 덮쳐서 침낭째 사람을 물고 끌고 갔다는 것이다
(출처 : http://www.ytn.co.kr/_ln/0104_201503201155354907)
결국 얼마 못 가서 그 억세게 재수 없는 체코 아저씨는 구출이 되었는데..
병원에서도 '나 일식 보게 퇴원시켜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기사까지만 나와 있고
실제로 병원을 탈출하여 일식의 순간을 맞이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맑은 완벽한 하늘에서 혼자만 병실에서 일식을 못봤다면..
추위에 떨다가 북극곰에 물려가고 병원비 들고 남들 다 본 일식 혼자 못보고....
나까지 막 안타까워지려고 한다. 설마 봤겠지!
항상 개기일식 관련 공식 data를 제공하는 NASA에서는 일식 관측지로 페로 제도를 선택했다
근데 결과는.. 페로 제도는 완전 꽝!
구름이 덮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NASA의 훌륭한 박사님들이 알아서 잘 판단하셨을텐데..
스발바르보단 페로가 나을 거라고 말이야
(사실 제갈량도 아니고 그날 동남풍이 100% 불 거라고 누가 알까)
아니면 이들도 우리처럼 북극의 방을 구하지 못했을지도..
우리는 왜 페로가 아닌 스발바르를 선택했는가?
페로에는 스타얼라이언스 마일리지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APOD에도 스발바르의 일식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끊임없이 올라온다
1착 사진
[ Northern Equinox Eclipse, Stan Honda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northern-equinox-eclipse/)
베일리의 염주를 기가 막히게 찍은 사람도 있고
[ Diamond Rings and Baily’s Beads, Wang, Letian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diamond-rings-and-bailys-beads/)
코로나 표현을 위한 29매 합성 (이건 쫌 징그럽다)
[ Corona from Svalbard, Miloslav Druckmüller 外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d-2/)
일식 현장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는 한 컷
[ Total Solar Eclipse over Svalbard, Thanakrit Santikunaporn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total-solar-eclipse-over-svalbard/)
부분일식만 일어났던 스페인까지
[ A Double Eclipse of the Sun, Thierry Legault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a-double-eclipse-of-the-sun/)
일식만을 위한 뱅기에서. 생각보다 별로다..
[ Through the Shadow of the Moon, Stephan Heinsius ]
(출처 : http://wouldyoulike.org/apod/through-the-shadow-of-the-moon/)
이 정도 퀄리티의 관측에 8백만원을 투자하긴 좀 아까울 듯..
5월에는 천문연구원의 2015년 천체사진전 시상식이 있었다
김동훈님의 사진 중 북극의 빙산을 전경으로 검은 태양이 빛나는 작품이 은상 수상의 영예를 가져갔다
[ 세계 최북단 마을 롱위어비엔의 개기일식, 김동훈 作 (2015) ]
나는 야심차게 낸 스마트폰 달그림은 다 떨어지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산개성단 그림이 그림부문 역대 최초 수상의 영예를..
[ M34의 별줄기는 누가 다 만들었을까, 검은 종이에 젤리펜 - 조강욱 作 (2013) ]
나는 개기일식 그림은 출품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완벽한 일식을 제대로 보았다면,
2009년 싟형님의 다이아 반지나
[ 갠지스 강가의 개기일식, 흰 종이에 연필 - 김경싟 (2009) ]
http://www.nightflight.or.kr/xe/32656
2012년 Serge Vieillard의 작품 정도가 나올 줄 알았는데..
[ 케언즈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 북부 어딘가, 흰 종이에 연필 - Serge Vieillard (2012) ]
2.5분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지켜봤지만
그림으로 그리려 하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눈과 기억 체계도 카메라 렌즈처럼 빛의 축적이 필요한가보다
한 1시간 정도 축적해 놓으면 생생하게 기억이 나겠지?
일식 한 번에 보통 2~3분이니 한 20번만 더 보면 되겠네
30년간 빼먹지 않고 꾸준히 일식을 보러 다닌다면
아마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내 마음에 드는 필생의 역작을 한 번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대신에 폰을 꺼내서 코로나의 느낌을 생각하며 월령 0일 달을 그렸다
[ 북극의 기적, 갤럭시노트4에 터치펜 - 조강욱 作 (2015) ]
全월령 달풍경을 스마트폰 터치펜으로 그리는 연작이 이제 월령 1일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거기에 보너스로 월령 0일 달까지!
별로 맘에 드는 그림은 아니지만 완벽한 달 연작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위안해 본다
내년 3월 9일에는 인도네시아 전역을 횡단하는 개기일식이 있다
덕분에 인도네시아 지리 / 기상 / 역사 공부도 실컷 하고..
3월의 인도네시아는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아서 사실 확률은 높지 않다
(앤더슨 할아버지 기상분석 참조 : http://home.cc.umanitoba.ca/~jander/tot2016/tot2016.htm)
그나마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가면 갈수록 확률이 높아지긴 하는데
이번엔 일식보다 가족과의 여행이 우선 순위가 높아서 자카르타 인근의 작은 섬으로 관측 포인트를 정했다
항공권 발권 오픈하자마자 마일리지로 원장님과 딸님 것까지 예매 완료.
2017년 8월의 가족동반 미국 개기일식을 위한 적금은 3년째 진행 중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간 김에 일식 보고 캐나다로 가서 오로라를 볼까
아님 반대쪽으로.. 칠레에서 아타카마 사막을 찍고 올까 고민된다
아니지 칠레를 지나는 개기일식은 2019년 2020년 연속해서 있는데 그때 가도 되겠다
맨날 Travel Quest에 당하기만 하는데..
나도 이젠 일식 전문 여행사를 차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원정에서의 Best 3를 꼽아보면 무엇이 있을까?
3위 : 3월 18일의 오로라 폭풍
2위 : 그 전날 밤, 얼음 호수의 장엄한 오로라
1위 : 말할 것도 없이 개기일식의 결정적 순간
그럼 Worst 3도 뽑아 볼까?
3위 : 비정한 택시
- 개기일식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를 버리고 떠난 택시.
- 다시 그 택시를 잡아탄 기적은 Worst보단 Best에 가까울 수도
2위 : SAS의 농간
- 일식 전후 비행 스케쥴 장난질로 원정 일정 다 꼬아 놓고
- 국제선을 커피 한 잔으로 때우는..
세계 최악의 서비스 항공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서비스
1위 : 북극의 렌트카
- 하도 방을 구할 수가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예약한 렌트카.
- 북극에서 차박 하다가 얼어 죽을지 안 죽을지 덕분에 군대에서도 안 해본 혹한기 훈련도 해 보았다
(2015년 1월 30일 저녁, 혹한기 훈련 출발 전 한솔형님네에서 집결)
(1100고지 광덕산 정상의 조경철천문대.. 영하 20도에 칼바람이 불어서 체감 기온은.. 솔직히 북극보다 더 추웠다)
[ 혹한기 훈련, 갤럭시노트2에 터치펜 - 조강욱 (2015) ]
그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북극에서 빌릴 그 차가 수동기어였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망연자실..
우여곡절 끝에 방을 구해서 렌트카 환불을 요청했으나
북극의 렌트카 사장은 이핑계 저핑계 대며 아직까지 환불을 받지 못했다
(못 받으면 현장에서 직접 받겠다고 공항에 있는 렌트카 회사에도 몇 번 들렀는데
갈 때마다 부재중이라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뭐 렌트비 67만원.. 따뜻한 방에서 자고 완벽한 일식 본 관람료라고 생각하자
그 혹한의 날씨에 스포티지에 성인 남자 셋이 쭈그리고 앉아서 진짜로 차박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니코의 얼굴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스포티지 67만원을 포함하면 세 명이 북극에서 쓰고 온 돈은 총 785만원이다
인당 261만원 수준..
바가지를 잔뜩 쓴 항공료와 숙박비가 전체 비용의 3/4를 차지한다
엄하게 쓴 돈인 북극 왕복 항공료 53만원과 아직 못받은 렌트비를 제하면 인당 사용 비용은 187만원이다
그래도 많이 썼네..
원정의 목표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거의 돈을 쓰지 않았는데,
스발바르 롱이어비엔 공항에서 원정대의 유일한 기념품으로 작은 마그넷을 하나씩 사서
북극 원정의 징표로 나누어 가졌다
"North Pole 1338km"
(회사 내 책상의 좌측 파티션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원정대의 마지막 모임에서 동훈형님의 깜짝 선물.
천문연구원 공모전에서 낙선한 사진으로 기념 액자를!
케언즈에서의 기억, 스스로의 의지로 일식을 망친 그날 아침의 트라우마는
케언즈에서 돌아온 2012년 11월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같은 시각에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확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북극의 빙산에 올라 개기일식을 본 그 날부터
더 이상 케언즈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떠올리려고 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한가보다
그런데 그 대신에, 해외 파견근무 선발인원 탈락 통보를 받았던
그 순간의 충격이 케언즈가 떠난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건 다행히 주기적으로 같은 시각에 생각나진 않는다)
서호주에서 새 사람이 되어서 돌아온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매일 그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일식에는 일식으로, 남천에는 남천으로..
이것도 정면 돌파를 할 수 밖에.
‘일식을 보면 인생이 바뀐다’는 얘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호기심에 2009년 여름 중국행 비행기를 탄 이후
결국 일식은 내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내가 살아있는 한, 숨을 쉬고 있는 한
나는 지구상의 어딘가에서
달에 가린 지구의 그 까만 그림자 안에 들어가 있기 위해
평생을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적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그동안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Nightwid 無雲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http://www.nightflight.or.kr/xe/153916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http://www.nightflight.or.kr/xe/154663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http://www.nightflight.or.kr/xe/155441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http://www.nightflight.or.kr/xe/156166
5. 3~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http://www.nightflight.or.kr/xe/157065
6.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http://www.nightflight.or.kr/xe/157779
7.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http://www.nightflight.or.kr/xe/160351
8. 7일차(스발바르) :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 http://www.nightflight.or.kr/xe/161443
9.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http://www.nightflight.or.kr/xe/161443
10.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진인사대천명 http://www.nightflight.or.kr/xe/163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