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북극권 원정 - #9.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2015. 6. 21 (日) 조강욱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6.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7.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8. 7일차(스발바르) :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
9.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0.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진인사대천명
============================== 8일차 (20 Mar 2015) ==============================
'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보니
구름 조금이라는 예보대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3개월 만에 해가 나왔다는 어제보다 더 맑다
마지막까지 하늘이 돕는 걸까? (근데 우릴 왜 그렇게 도와주지?)
그동안 한솔형님과 나는 원정 중에 한 번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일식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로..
근데 수염을 언제 깎아야 할까? 일식 전에? 아님 끝나고 나서?
애매하면.. 한 명은 일식 전에, 한 명은 후에 깎으면 완벽하지!
어젯밤 자기 전에 니코네 누나와 어디서 보면 좋을지 한참을 얘기했었다
시청 앞에서 볼거라 했더니
앞산에 가려서 시야 확보가 잘 안되고, 엄청난 인파가 몰릴 거라
시청 뒤의 빙산에 등반해서 볼 계획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에이 그걸 어떻게 올라가..
롱이어비엔에 주민이 2천명이 살고, 일식 원정대가 2천명이 왔는데
일식 중에 빙산에 해가 가리지 않고 보일 장소는 한정되어 있기에
절반은 시청, 절반은 해변에 몰릴 것이란 얘기다
(니코와 여친은 빙산 등반, 누나는 호텔 고객들과 해변으로 갈 예정)
우리는 해변보다 사진에 더 유리할 시청 앞으로 포인트를 정하고
가장 좋은 자리를 점유하고자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개기일식은 오전 11시 11분 전후)
날이 밝을수록 구름은 점점 더 걷히기 시작한다
이건 기적이다
몇개월 만에 해를 볼 정도인 이 곳에서 이렇게 파란 하늘을..
빙산 뒤에서 나온 오늘의 첫 태양
동훈형님이 일식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장비들을 세팅하는 동안 내가 도울 일은 많지 않았다
명당 자리에 삼각대를 펴고 자리 맡고 있는 일 정도..
나도 일식 전후의 동영상 기록을 위해 여기까지 7kg짜리 삼각대를 들고 왔다
세팅 완료!
현재 기온 영하 16도. 체감 기온은 10도 낮은 영하 26도다 (체감기온 예보도 있음)
교대로 집에 가서 아침밥도 먹고..
치열한 자리 싸움을 예상하며 뿌듯해 하고 있는데..
오전 9시, 이제 두 시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청 앞은 너무나 한산하다
시청 앞 언덕길을 간간이 올라오는 인파는 대부분 시청을 지나쳐서
그 뒤의 빙산으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어젯밤 니코네 누나가.. 시청 뒷산에 올라가는게 시야 확보에 가장 유리하다고,
사람 많으면 북극곰도 안 나온다고 내일만큼은 안전하다고 조언했을 때
거길 어떻게 올라가냐고 일축해 버렸는데..
개미떼같이 질럿 대형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안정적인 고도에서 태양을 볼 수 있긴 할텐데..
그리고 여기 시청 앞에서는 산에 가려서 일식 시작 시점을 볼 수가 없다 (50% 이상 진행된 이후 관측 가능)
정말 저 산을 올라가야 할까? 우린 장비도 많은데..
순백의 설산. 나무도 바위도 없이 토핑 없는 우유빙수 같은 그 거대한 하얀 산.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생각 자체로 압도적인 공포가 만들어진다
셋이서 잠시 망설이며 의견을 나누다가, 한솔형님이 올라가서 보는 것이 좋겠다고 앞장선다
케언즈에서 산으로 갈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도 불현듯....
가자, 가야겠다
우리가 이거 하나 보러 여기까지 말도 안 되는 여행을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최선의 노력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9시쯤(일식 2시간 전), 파란 눈물을 흘리며 시청에서 철수
빙산 등반로 초입은 나름 길도 닦여져 있다
뭐 물론 입구만 그렇고.. 그 위로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야 한다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어지러운 발자국에 내 머릿속까지 어지러워진다
먼저 올라가는 사람들이 마치 신기루처럼, 도저히 닿지 못할 곳에 있는 것처럼 점점 멀어진다
올라갈수록 발자국은 점점 더 깊어진다. 내 숨소리도 비례하여 함께 거칠어진다
평소에 동네 뒷산에도 한 번 올라가 본 적 없는 평균연령 44세의 세 남자가
장비를 들쳐 메고 북극의 빙산을 오르리라고는 30분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
출발 15분 뒤
역전
잠시 호흡도 고를 겸 동영상도 한 컷 찍고
북극의 이름모를 빙산을 오르고 있는 우리 지구인들 위로.. 완벽한 푸른 하늘이 속살을 드러냈다
이건 기적이야.
2009년 중국 항저우에서도, 2012년 도쿄와 호주 케언즈에서도
항상 개기일식의 하늘은 아슬아슬했다
다른 곳도 아닌 북극에서 완벽하게 파란 하늘을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완벽해. 완벽해..
일식 시작 시간과 철수 시간을 생각하면 그들처럼 산 정상까지 오를 여유는 되지 않고,
태양이 산 위로 걸리지 않고 올라올 정도 높이의 산 중턱으로 관측지를 확정했다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는 형님들
추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솔형님이 빙산 등반을 강행하여 추진한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통해 내 트라우마를 치료해 주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시청 앞에서 지켜보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산의 중턱에 도착했다
산행 시작 30분 만에.. 도착 시간은 9시 25분. (일식 1시간 45분 전)
올라오자마자 소감 인터뷰
시청앞 체감기온이 -26도였으니 산 위는 더 추웠을텐데
너무 더워서 옷을 벗고 땀을 식혔다
안면 마스크에는 내 입김이 얼어서 미니 고드름이 열리고
눈썹에도, 속눈썹 끝에도 땀이 나거나 수분이 있는 곳에는 모두 얼음 방울이 맺혔다
(왼쪽 눈으로 아이피스를 20년간 봤더니 이마 주름살도 왼쪽에만 생김)
콧물은 흐르다 얼다를 반복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콧속이 엄청 따갑다
큰형님의 과감한 결단으로 여기까지..
동훈형님은 다시 한번 촬영 장비를 세팅하시고
나도 일식 전후 10분의 동영상 촬영을 위해서
여기까지 7kg짜리 맨프로토 055 삼각대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깨알같은 자사제품 이용)
어린 시절, 중요한 순간에 카메라 셔터용 전지가 추위에 얼어서 무용지물이 되었던 아픈 기억이 생각나서 (2001 Leonids)
배터리 부분에 핫팩을 칭칭 감고 품 속에 넣어 두었다
몇 년 전에 가방에 넣어 두었던 스카치 테잎을 여기서 쓸 줄이야..
(참, 작년 서호주 칼바리 자연의 창에서 차 앞유리에 입장권 붙이는 데에도 썼었다)
장비 주인 포스로 한 컷
부분일식 시작 시간은 다가오고..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연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우리를 지나쳐 올라간다
마주치며 진심을 담아서 손을 흔들고, 서로를 격려한다
어디 사는 뭐 하는 누구인지가 무엇이 중요할까
그런데 유독 한 커플이 안 올라가고 우리 주위를 계속 알짱댄다
쟤네 뭐지? 여기서 자리 잡으려고 그러나? 하고 자세히 보니
니코와 여친이다
(여러 분들이 니코 여친을 궁금해 하셨는데, 제가 분명히 찍은 사진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거밖에 없네요 죄송 ㅎ)
대한민국 유일의 일식 원정대 단체 사진도 한 장!
10시 19분, 개기일식 예정 시각이 52분쯤 남았을 즈음.. 부분일식이 시작되었다
장비 4대를 동시에 돌려야 하는 동훈 형님도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눈으로 감상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는 나는
스발바르 시청 공무원이라는 할아버지에 가까운 아저씨하고 사진 한 방
(너무 말이 많아서 관측에 집중하는 데에 방해가 될 정도라 나중엔 상당히 귀찮아졌다)
개기일식을 기다리며 어떤 음악을 들을까..
일식의 장엄함을 잘 표현해 줄 곡이 뭐가 있을까?
폰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틀었다 (아래 동영상들에 배경 음악으로 나온다)
※ 나는 갤럭시노트4를 쓰는데, 영하 20도에서 돌리니 평소보다 배터리 소모가 4배쯤 빨랐다
카메라는 작동하는데, 플래시는 '저온에서는 동작하지 않습니다'란 친절한 문구와 함께 미작동.
산 정상을 향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간다
아마도 정상의 일식 view는 또 달랐을 것이다
10시 42분. (김동훈 作)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반대편, 북쪽 하늘에만 엷은 구름이 있을 뿐..
11시 정각 (김동훈 作)
품 속에서 보온을 넘어서 뜨끈뜨끈해진 카메라를 꺼내서 삼각대에 올리고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8분 전 풍경 (조강욱 촬영)
이 와중에도 town의 저 그림자 안에 그냥 있는 사람도 있겠지..
3분 전 (김동훈 作)
그래도 하늘빛과 땅의 색은 아직 크게 변화가 없다
내 눈동자 안에도 그 태양과 달의 조화가 비친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세 별, 태양과 달과 지구가
3차원 공간에서 시선방향으로 1차원 한 점으로 만날 결정적 순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는 사람이 개기일식을 맞이할 수 있는 세상의 최북단.
거기에 몇개월 만의 기록적인 맑은 날씨 아래서
빙산을 등반하여 시야에 조금도 가리지 않고 일식의 전 과정을 한 순간도 빠짐 없이 지켜보고 있다.
완벽해. 너무나 아름답다.. 지금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이
어느 곳에, 어떤 시간에 또 있었을까?
내가 ‘완벽해’라는 짧은 감탄사를 되풀이하는 사이,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블라인드 같은 모양의 그림자가 설원 위를 빠르게 지나간 후
세상 무엇보다 간절히 기다려온 2nd contact, 다이아몬드 링을 맞이했다
[ 2nd Contact, 김동훈 作 ]
기쁨의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저 팔을 높이 들고 그 순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뿐..
대체 이 느낌을, 감동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오스트리아 작가 란스마이어의 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의 문장을 차용하자면)
‘내게는 다이아몬드 링의 결정적 순간을, 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시공간을 기술할 능력이 없다’
그렇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서 1.5초간의 다이아몬드 링을 보내고, 개기일식을 맞았다
(때마침 대박 홍염도 함께 했다)
[ 개기일식과 코로나, 김동훈 作 ]
다이아몬드 직전 2분 (조강욱 촬영)
2년이 넘도록 준비하고 기다렸던 그 순간,
나는 내 인생 최고의 결정적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 개기일식과 코로나, 김동훈 作 ]
완벽해.
다른 감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개기일식의 감동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나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느라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개기일식의 검은 태양과 붉은 홍염,
그리고 음산하고 압도적인 코로나가 사방으로 빛을 내뿜으며
북극의 설산을 희미하게 비춘다
[ 북극의 개기일식, 김동훈 作]
잠시 검은 태양에서 눈을 돌려서 마을 쪽을 보니
마치 어젯밤 시내 야경처럼 노란 불빛이 가득하다
(어제 찍은 사진)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모습을 한 컷 담아볼까 생각했으나
이내 생각을 접었다
2분여밖에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에 그걸 찍겠다고 폰화면을 보고 있으면
또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할까..
개기일식의 하이라이트에 맞추어 라흐마니노프도 절정을 향해 간다
안정되고 경건한(?) 관측자세를 위해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촬영도 스케치도 기록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순간을 집중하여 지켜본다
2분 30초의 짧은 (실은 평균적인) 개기일식이
아름다운 3rd contact, 두 번째 다이아 반지와 함께 순식간에 끝이 났다
[ 3rd Contact,김동훈 作 ]
설레임과 충격으로 맞이하는 첫 번째 다이아몬드와
검은 태양의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나서 맞는
환희에 찬 두 번째 다이아는 그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북극의 3분, 결정적 순간 (조강욱 촬영)
완벽하다. 아름답다.
내 평생 이런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괜한 걱정마저 든다
대성공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남은 후반부의 부분일식을 여유롭게 감상할 시간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더니 내 방한복 무릎만 하얗다. 그래도 무릎은 전혀 시리지 않은게.. 돈이 좋긴 좋은가보다)
개기일식이 끝나자 마자,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장비를 철수하고 하산.
질럿 대형으로 힘겹게 산을 올랐던 사람들도 하산은 히드라 모드로 순식간에..
장비를 접고 있는 사이,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니코 커플도 다시 만났다
그게 대체 뭐길래? 하는 표정으로 산에 올랐던 둘은
엄청난 흥분에 휩싸여서 다음 개기일식이 언제 어디냐 물어본다
내년 3월 인도네시아라 했더니 둘이 하이파이브 하면서 꼭 가자고 난리 났다
(1년 뒤에도 둘이 같이 손잡고 있을 확률은.. 음..)
우리가 엉금엉금 한 발짝씩 내딛을 때, 현지 학생들은 그 가파른 길을 진짜로 굴러서 내려간다 (사진 왼쪽)
우리가 있던 곳은 저 산 중턱의 경사가 약간 완만해지는, 그림자의 경계 부근이었다
안녕. 너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서둘러 나온다고 했는데도 벌써 출발 시간이 촉박하게 되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13시 30분, 어제 Niko가 공항 가는 콜택시를 대신 예약해 주었다.
짐 챙기는 시간 고려해서, 12시 정각에 집 앞에 택시가 와서 짐 싣고 12시 20분에 출발하는 것으로..
어젯밤에 미리 짐을 다 싸 놓았으면 간단했겠지만,
우리가 북극에 가져온 짐의 내용물이 85%는 개기일식 관측을 위한 것들이라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짐을 싸고 무게를 맞춘다
휴. 겨우 12시 20분 약속시간에 맞추어 현관 앞에 나갔는데..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제 해변에서 보았던 멕시코 출신 싱가폴 총각이 거기 서 있었다
‘어떤 택시 한 대가 아까 12시에 와서는 세명 승객 어디있냐고 찾다가 얼마 안 기다리고 갔어’
이걸 어떡하지..?
중국과 브리즈번, 세부에 이어 귀국 트라우마가 다시 발동하는 것인가..
한 시간 뒤에 오슬로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내일 새벽에 코펜하겐 - 프랑크푸르트 거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도 줄줄이 못타게 된다
본인이 부른 콜택시를 기다리는 싱가폴 총각에게 우리 것도 불러달라고 다급하게 부탁했으나
택시회사에 연락해 보고서는, 지금 시간에는 (비행기 출발할 시간이라) 빈 차가 없다고 한다
이걸 어떡하지???
잔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대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멘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가
한솔 형님의 일단 큰길로 나가 보자는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서 무조건 타자
세 명이 한 번에 다 못 타면 나눠서라도 타고 가자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 올랐던 시청앞 언덕길을
다시 불안과 초조함에 하얗게 질려서 캐리어를 끌고 뛰어 내려간다
순식간에 공항 가는 큰 길에 도착하니
이게 무슨 하늘의 뜻인지 봉고차만한 택시 한 대가 마침 우리를 지나쳐가려 하길래
무조건 길을 막고 세웠다
택시기사에게 우리 3명이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 사진을 찍었을까.. 잘 모르겠다)
기적적으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안도하며 택시기사와 얘기하다 보니
이 택시는..
20분 전에 우리를 버리고 떠났던 바로 그 택시였다!
12시에 우리집 앞으로 왔다가, 아무도 나와 있지 않음을 알고서는
예약 캔슬인 줄 알고 우리를 태우는 것을 포기(!)하고
시내에서 다른 예약 손님 한 명을 더 태우고 공항에 가는 중이었던 것.
놓친 택시를 다시 잡아서 타다니..
막장 드라마도 아닌데 세상에 이런 우연과 행운이 또 있을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을 떠나 집에 갈 수 있게 만들어 준 택시에게 그저 고마울 뿐.
땡큐를 연발하며 공항까지 4km를 순식간에 주파! (도보로 갔으면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전세계의 지리적 포인트마다 너도 나도 만드는 이정표
나는 꼭 남아프리카 희망봉에서 원조를 봐야겠다
(여기 개기일식이 언제 있더라?)
프로의 손길로 순식간에 셀프 티켓팅을 마치고,
보안 검색대 앞에 줄을 서 있는데 그 싱가폴 총각이 그제서야 내 뒤로 줄을 선다
아니 왜 이제?
자기 택시도 결국 오지 않아서 결국 다른 택시 잡아타고 왔다는...
출국장에 들어서니, 우리가 탈 비행기가 보인다
이거 못 탔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
활주로가 하나밖에 없는 LYR 비행장은 이미 만원사례.
아마도 개항 이후 처음이 아닐까?
스텝카를 오르다가 마지막 한 컷.
이틀 전 저녁.. 스텝카를 내리면서 기쁨의 비명을 질렀던 것이 너무나 생생하다
이 와중에도 깨알같은 창가 확보
저가 항공에서 기내식을 기대할 수는 없고.. 공항 슈퍼에서 사 온 늦은 점심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인간 세상을 향해 출발했다
북극은 북극 맞네
스발바르야 안녕~~
바다 건너 유럽대륙 위로!
여기도 뭐 그리 살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늘도 오슬로는 비가 추적추적..
노르웨이 본토는 맑은 날을 본 적이 없다
공항 셔틀버스 안은 승전(?)의 기쁨으로 가득하다
일식 보러 싱가폴에서 혼자 날아온 이 사람도 분명히 계속 만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보자는 약속도 필요 없다
북극 가기 전에 맡겨놓은 (일식과 관련 없던) 짐을 모두 찾고,
공항 근처 호텔의 봉고차를 타고 정말로 조용한 공항 옆동네 작은 호텔에 도착했다
정말로 최소한의 기능만을 갖춘, 공항 이용객을 위한 호텔이다
오늘 밤에 뜰 D+1 달은 이 부슬비에..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한솔형님은..
성공적인 일식을 자축하며 한국을 떠난 뒤 처음으로 면도를 했다
(일식 전에 수염을 깎은 내 공인지 완료 후에 깎은 한솔님 덕분인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음)
일식 성공 기념 파티를 해야 하는데.. 워낙에 조용한 동네라 어디 술집도 없고
호텔 1층 식당에서 북극원정 최초의 외식
한솔형님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별쟁이인줄 어떻게 알았는지, 주문한 연어 스테이크엔 눈에 좋은 당근이 연어만큼 나왔다
오랜 준비와 혼신의 노력과 하늘의 기적이 믹스된 원정을 자축하며 알딸딸하게 맥주를 마시고,
오로라도 일식도 북극에서의 생존도 걱정 없이
너무나 오랜만에 아무 근심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다만 한 가지,
나에겐 아직 개기일식의 감동을 표현할 능력이 없다
일요일 새벽에 이 글을 쓰면서도, 맥주 한 잔과 함께 동훈 형님의 사진들을 지켜보며
너무나 완벽하고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 시공간을 회상해 본다
[ 스틸사진 동영상(클로즈업), 김동훈 作 ]
낮이 밤이 되는 기적의 순간,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가 탄생하는 그 결정적 순간을....
[ 스틸사진 동영상(일식 풍경), 김동훈 作 ]
Nightwid 無雲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6.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7.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8. 7일차(스발바르) :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
9.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0.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진인사대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