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 2015년 6월 4일
<목 차>
• 새 시리즈를 시작하며 •
1. 소제목 한자어에 대하여
2. 소제목별 내용에 대하여
I. 청천낙성 (暒天樂星)
Deep Sky 도
좋지만 우리 옆에 사는 대상부터
(1) 유아독존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
(2)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3)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
(4) 계량적 거리 심리적 거리
II. 담천잡담 (曇天雜談)
다른 문화 다른 별자리 (1) – 호주 원주민의 은하수
(1) 은하수
미리내 Milky Way
(2) 동남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
(3) 북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
(4) 동남부와
북부가 다른 모습으로 본 사연
III. 월하산책
(月下散策) – 1 부
잃어버린 별자리를 찾아서 (16) – 수탉자리 Gallus
(1) 네덜란드 국적
1612 년생
(2) Plancius 가
만든 살아있는 별자리들
(3) Plancius 가 수탉자리를 만든 배경
(4) 정말 성서만 참고했을까 ?
(5) Sumer – 목자와 그의 애완동물 수탉
(6) Sumer – 태양의
새
(7) Egypt – Dendera Zodiac
(8) Sumer Egypt 별자리와 Plancius 별자리 비교
(9) 사족 – 한국천문연구원 설명
1. Plancius 국적
2. 기린자리 창시자
(10) 수탉이
닭도리탕이 되더라도
IV. 월하산책 (月下散策) – 2 부
조선왕조실록과 성변측후단자에서 찾아본
수탉자리 혜성의 정체
(1) 조선실록
87일 유럽성도 34일간의 기록
(2) 두
기록에서 보이는 11일 차이
(3) 조선실록과
유럽성도의 혜성 위치비교
(4) 성변측후단자의
혜성위치
(5) 이
혜성이 나타날 때 조선에선 어떤 일이 ?
(6) 젊은
날의 초상
1. 금빛 목도리 휘날리며
2. 얼굴엔 눈부신 광채가
(7)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8) 그
해 겨울
V. 참고자료
조선왕조실록 혜성기록 (양력 1664. 11.26~1665.2.20)
<본 문>
• 새
시리즈를 시작하며 •
1. 소제목 한자어에 대하여
이번호부터 새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내용은 지난 Astro News 와 다를 건 없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려고
새로운 소제목을 달았습니다. 칼럼제목과
소제목 모두 한자어라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한자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표현할 수 있고 보시는 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장점이 있어, 이번에는 아예 제목전체를 한자어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청천낙성 담천잡담 월하산책의 한자는 暒天樂星 曇天雜談 月下散策 입니다.
청 (暒) 글자는 청 (晴) 과 뜻도 같고 발음도 같습니다. 하늘이 맑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칼럼은 별이 주인공이므로, 많이
쓰이는 청 (晴) 글자 보다는 별 (星) 이 들어간 글자인 청 (暒) 으로 썼습니다. 청천 (暒天) 은 청명한 밤하늘이 됩니다.
낙성
(樂星) 의 樂 글자는 낙 (또는 락) 과 요 두가지로 발음합니다. 낙성으로 읽으면 별을 즐긴다는 뜻이 되고, 요성으로 읽으면 별을 좋아하다가 됩니다. 그런데 요성으로 읽으면 같은 발음인 요성 (妖星) 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옛날에 국가적 재난을 암시하는 혜성이나 유성의 뜻이므로, 여기서는 별을 즐긴다는 뜻인 낙성으로 썼습니다.
담 (曇) 글자는 일 (日) + 운 (雲) 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태양 아래에 구름이 있으니, 당연히
날씨가 흐리겠지요. 담천 (曇天) 은 흐린 하늘입니다. 월하 (月下) 는 달 아래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달 밝은 날의 달빛 속이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청천낙성 담천잡담 월하산책 (暒天樂星 曇天雜談 月下散策) 을 풀어 쓰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맑은 밤에는 별을 즐기고,
흐린 날에 잡담을 즐기며,
달이 밝으면 달빛 속 산책을 즐긴다.
2. 소제목별 내용에 대하여
이번 시리즈는 소제목대로
단락을 세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청천낙성 (暒天樂星) 단락에선 몰라도 밤하늘 즐기는데 전혀 지장
없는 아마추어 천문학 관련사항을 써볼까 합니다.
제 수준이 일천하므로 기본상식에 불과하겠지만, 분야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소재로 찾아 뵙겠습니다.
모든 분들께서 하늘을 보실 땐, 우선 별자리 모양부터 찾으실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하늘을 볼 때, 왜
유럽식 별자리들로만 하늘을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해서
한국말을 쓰는 제가, 단지 하늘을 볼 때만은 유럽사람 시각으로 서양 별자리 신화를 생각하며 별들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는 IAU 가 정한 별자리가 세계 천문학의 기준이 되어서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토종 별자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동양 별자리도 사실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더구나 몇 개 별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왕의 궁궐 왕의 생활 및 국가의 운영을 묘사한 것이라 일반민중의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나라가 중국문화의 영향 없이 호주
또는 북미대륙 원주민들처럼 오랫동안 독자적 문화를 유지해 왔다면, 당연히 우리만의 별자리를 만들었겠지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별자리를 갖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런 생각에서 호주와 북미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별자리 모양은 과연 어떨지
담천잡담 (曇天雜談) 단락에서 찾아 보려 합니다.
비록 현재의 유럽식 밤하늘 보시는데 도움되지는 않지만 문화에 따라 별자리가 어떤 모양으로 바뀌는지 일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월하산책 (月下散策) 에선 지난 Astro News 에서 연재하다가 중단했던 “잃어버린 별자리를 찾아서” 를 몇 회에 걸쳐 마무리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지금의 88 개 별자리 모두 알기도 벅찬데, 이미 없어진 것들을 알아보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한 때는 당당히 하늘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별자리들이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I. 청천낙성 (暒天樂星)
Deep Sky 도
좋지만 우리 옆에 사는 대상부터
(1) 유아독존과 스스로 존재하는 자
지부행사나 결혼식 단체사진을 보실 때
제일 먼저 누구를 찾아 보시는지요 ? 저를 포함해서 아마 거의 모두 자기자신의 모습부터 찾으실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친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본 다음, 세번째로 자기 옆에 서있는 분들을 비롯해서 알고 계신 얼굴들을 둘러보실 겁니다.
단체사진에서 자기자신부터 찾아 보시는
것은 자기얼굴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궁금해서 그럴 겁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자기자신이 없으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음을
무의식 중이라도 깨닫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자신이 없더라도 세상은 잘 굴러갈 테지만, 세상 굴러가는 것을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므로 세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이타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자기자신의 존재를 비하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남을 위하거나 도와주려 해도, 자신의 존재가 확고하지 않으면 마음뿐이고 행동에 옮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잘 아시는 불교용어 중에,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말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란 것이 있습니다. “독존” 이 독존 (獨存) 이 아니고 독존 (獨尊) 임을 유의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일상에선 주로 고집불통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에 대해 사용되지만, 원래 뜻은 자기자신의
존재가치 또는 존엄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존귀한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이 말은 전등록 (傳燈錄) 이란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책은 인도불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중국 송나라 때 승려 도원 (道原) 이 1004 년에 저술한 불교 교양서적입니다. 우리말로도 번역된 책이 있습니다. 다른 몇 개 불교 책들에도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성서 출애굽기 3:14 나오는 I am that I am (KJV) 도 단어자체의
뜻으로만 본다면,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NIV 는 I am who I am).
물론 종교적 해석은 다를 겁니다. 우리말 성서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개역개정)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나
( I ) 는 성서에선 하나님입니다.
성서에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으니, 피조물인 세상이 창조자의 존재에 대해
왈가왈부 논할 수는 없을 겁니다. 무례하게도
나 ( I ) 를 인간으로 본다면, “내 존재는 남들이 왈가왈부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존엄하며,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장황하게 종교용어를 인용 드린 이유는, 인간이 발 딛고 있는 지구가 존재해야 우주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지구가 없었다면 인간도 없었을 테고, 인간이 우주의 존재를 인식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칼럼에선 우리 지구에서 보이는 몇 가지 천문현상도 살펴보았고, 관심 있는 은하 성단도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옆에는 과연 누가 사는지 아직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단체사진 보실 때 세번째 순서로 자기자신
옆에 어떤 분께서 서 계시는지 찾아보시는 것처럼, 이번 단락에선 우리 지구 옆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는지
찾아보려 합니다.
(2)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우리 지구 옆에는 금성과 화성 및 태양계
행성들이 삽니다. 하지만 행성은
이 단락 소재는 아니며, 대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과 은하를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우리와 가장 가까운 별부터 알아봅니다.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별은 우리 별 태양입니다. 또한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지구 (또는 태양에서) 에서 약 4.2 광년
떨어진 Proxima Centauri (= α
Centauri C) 라는 것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러면 다른 이웃 별들은 누구일까요 ? 아래에 우리와 가까운 순서대로 다섯 이웃 별들을 발견연도와 같이 표시 드렸습니다.
<그림 1 지구에서 가까운 5 개 별들.
출처 :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Photo Journal. 2014년 4월 25일자 사진.
photojournal.jpl.nasa.gov/catalog/PIA18003>
위 그림에는 2013 년 및 2014 년에 새로 발표된 WISE 1049-5319 A/B 와 WISE 0855-0714 까지
업데이트 되어 있습니다. 만일 2013 년과 2014 년 이전에 만들어진 자료의 4 위 또는 5 위 이하는 위 표와 다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2015 년 중반인 지금에도 도표의 별들보다 더 가까운 새로운 별이 발견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1 위부터 3 위까지는 잘 아시는 별들이므로 4 위와 5 위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 드리겠습니다. WISE 1049-5319 A/B 라는
명칭에서 WISE 는 Wide-Field Infrared Survey
Explorer (광역 적외선 탐사 우주망원경) 의 약자입니다. 뒤쪽
1049-5319 숫자는 발견당시의 J2000 기준 적경과 적위를 간단히 표시한 것입니다. 공식명칭은 WISE J104915.57-531906.1 A/B 이며, 적경 적위는
명칭 그대로 10h 49m 15. 57s / 53° 19’
06. 1” 입니다. 이 별은 WISE 에 의해 2009~2010 년에 걸쳐 조사된 후, 2013 년에 공식 발표되었습니다. WISE 0855-0714 도 이런 방식으로
조사되어 201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공식명칭은 WISE J085510.83-071442.5
입니다.
(3)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반적으로 북반구 사시는 분들은 안드로메다 은하
(M31) 로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남반구에선 대마젤란 은하 (LMC) 또는 소마젤란 은하 (SMC) 라는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런 대답도 맞는 답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답변하려면 이 질문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아야 합니다. 질문에서 단순히 “은하” 라 했으므로 여기에는 “왜소은하
(Dwarf Galaxy)” 도 포함됩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왜소은하가 아닙니다. 대마젤란과 소마젤란 은하는 보통 정상은하로 분류되며, 가끔 왜소은하로도 불립니다. 정상은하 (正常. Normal
Galaxy) 란 단어는 정상나선은하 및 막대나선은하 용어처럼
어떤 은하의 세부적 모양을 구분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왜소은하를 제외하고, 나머지
타원 나선 렌즈 고리 불규칙은하 등을 총칭하는 뜻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왜소은하는 지름이 보통 1,000~2,000 광년 정도에 소속 별들 개수가 수십억개인 소규모 은하를 말합니다. 크기가
300~500 광년에 불과하지만 별들 개수는 수십억개가 되는 왜소은하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구상성단 Omega
Centauri 는 지름 160~180 광년에 1,000
만개의 별들이 들어차 있고, 우리은하는 지름 12 만
광년에 2,000~4,000 억개 별들을 갖고 있습니다. 규모로 보더라도 왜소은하는 정상은하 및 구상성단과 확실히 구별됩니다.
아래는 지구에서 가까운 은하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림 2-1 우리은하 중심으로부터 거리가 50 만 광년 이하인 은하들.
거리표시는 우리은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단위 광년.
참고자료 : Astronomy Magazine. March. 2015>
위 그림에 표시된 거리는 “우리은하 중심” 으로부터의 거리입니다. 이 범위에 있는 은하들은 13 개씩이나 됩니다. 이 중에서 11 개는 확실한
왜소은하이고, 대마젤란 및 소마젤란 은하는 왜소은하인지 다소 논란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들 두 은하는 영어이름에 구름단어가
들어가서 구름처럼 그려 보았습니다 (Large, Small Magellanic Cloud).
그림에서 큰개자리 왜소은하 (Canis Major Dwarf Galaxy) 가 우리은하 중심에서 4만
2천 광년 거리로 가장 가깝습니다. 지구 (또는 태양) 으로부터 거리는 이보다 훨씬 가까워서 2만 5천~2만 8천 광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 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큰개자리 왜소은하가
됩니다. 만일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정상 또는 일반은하” 라는 질문이라면, 대마젤란은하를 정상은하로 볼 경우엔 이것이 답이 되겠고, 대마젤란은하를
왜소은하로 본다면 지구에서 약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가 될 겁니다.
그림의 각도 표시는 은하좌표계의 은경입니다. 지구
(또는 태양) 에서 우리은하 중심쪽으로 그은 선을 은경
0° 로 정하고, 지구 (또는 태양) 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 (서에서 동) 으로 잰 각도가 은경입니다. 은위는 은하적도면과의 각도입니다. 은하수 가운데를 관통하는 평면이 은하적도면이
되겠지요. 은하좌표계에 대한 상세한
사항은 Astro News Serial No. 12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도표는 우리은하 중심으로부터 거리가
가까운 은하를 5 순위까지 정리한 것입니다.
<그림 2-2 우리은하 중심으로부터 거리가
가까운 은하 5 순위>
큰개자리 왜소은하는 지금부터 불과 12 년 전인 2003 년에 보고된 은하입니다. 형태로 보면 왜소 불규칙은하에 속합니다. 하늘에서의 위치는 큰개자리 꼬리부분이며, 시야각 지름은 약 12 ° 입니다. 아래에 위치를 표시 드립니다.
<그림 3 큰개자리 왜소은하 위치. 시야각 지름은 약 12°.
배경
성도출처 : Stellarium 화면. 편집 및 추가>
큰개자리 왜소은하 중심부 위치는 적경
약 07h 12.5m 적위 – 27° 40’ 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시야각 지름 12 ° (반지름 6 °) 인 원을 그리면, 위 화면의 황색원 표시부분이 됩니다. Wezen 과 Adhara 사이 시야각은 약 3 ° 입니다. 이 왜소은하는
당연히 우리은하로 끌려오고 있고, 위 그림에 표시드린 M79 및
NGC 2298, 1851 등과도 상호 중력작용 합니다. 이들 세 천체 모두 지구에서 약 4만
광년 거리에 있는 구상성단들입니다 (M79 : 지구에서 4.1만
광년. NGC 2298 : 4.0만
광년. NGC 1851 : 3.95 만 광년).
(4) 계량적 거리 심리적 거리
지구에 사는 인간과 제일 가까운 동물인
개를 나타내는 별자리에,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은하가 자리잡은 것이 재미있습니다. 얼마 전 개들이 주인공인 에이트 빌로우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Eight Below. 2006). 부득이 남극에 여덟 마리 썰매개를 홀로 남기고
미국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이들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입니다. 가족에 대한 것 같은 열정으로, 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진짜 있었던 일이라니 더욱 실감납니다. 얼마 전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Paul Walker 도 보게 되어 마음이 아팠지요.
그런데 영화 보기 전에는 제목이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남극은 지구에서 제일 아래쪽이므로 남극에 남겨진 여덟 마리 개들로 생각되었습니다. 간단히 줄이면 “아래쪽의 여덟” 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제목과 관련해서,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 같아 여담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한창 나이 때 시골 농가에 한동안 머문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막걸리를 담근 술항아리 통째로 가져다 여러 명과 마신 적이 있습니다. 항아리 맨 위의 맑은 술부터 살살 걷어 마시다가 결국 술지게미만 남게
되었고, 다른 술이 없어 술지게미까지 먹어 치우고는, 같이
마시던 사람들 모두 며칠 고생했었습니다.
술지게미는 필요한 맑은 술의 “밑에 남은” 찌꺼기이며, 결국
쓰레기로 버려지는 불필요한 존재입니다. 영화에선
갑작스런 폭풍으로 비행기의 여유공간이 없어 사람만 탈출하고 여덟 마리 개들은 남극에 남겨집니다. 따라서 Eight Below 를
풀어 쓰면 Eight Dogs Below Men 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번역하면 “버려진
여덟” 정도가 될 겁니다. 건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런
해석이 더 맘에 듭니다.
영화 속의 남극의 개와 미국의 남자 주인공
사이처럼, 계량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과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일 겁니다. 그렇더라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이, 마음 속에서도 가까운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지구에서 가까운 천체들을 찾아본 것을 계기로, 이제껏 먼 곳만을 바라보며 주변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II. 담천잡담 (曇天雜談)
다른 문화 다른 별자리 (1) – 호주
원주민의 은하수
(1) 은하수 미리내
Milky Way
이 단락은 호주 원주민이 본 은하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은하수는 별자리는
아니지만,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신비와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은하수도 문화권에 따라, 또한
같은 문화권이라도 부족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나라에선 중국문화 영향으로 보통 은하수 (銀河水) 로 불립니다. 은하수는
한자 뜻 그대로 은 (銀) 빛이 나는 강 (河) 물 (水) 입니다. 사실 어느
문화권이든지 이 대상을 보면 강물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은하수를 순우리말로는 미리내라고 합니다. 미리내에 대한 국어사전 설명은 우리나라
남부지방, 특히 제주도의 방언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용을 뜻하는 “미르” 와 시냇물
을 뜻하는 “내” 가 합쳐진 말입니다. 미르내가 편한 발음을 위해 미리내로 변했을
겁니다. 표준어인 서울지역 말
중에 은하수를 나타내는 순우리말이 없어서, 남부지방 방언을 순우리말 표준어로 채택했을 겁니다.
영어
Milky Way 는 그리이스 Hera 여신의 젖이 뿌려진 길이란 뜻입니다. Zeus 는 인간여자 Alcmene (알크메네) 사이에서
Hercules 를 얻었습니다. Alcmene 는 당시
Amphitryon (암피트리온) 이라는 남편을 가진 유부녀였습니다. Zeus 은 아기 Hercules 를 데려와 아내 Hera 에게 자기 아들이 아닌 것으로
속이고, 젖을 먹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Hera 는 이 말을 믿고
Hercules 에게 젖을 먹이던 중에 Zeus 의 아들임을 알게 되고, 먹이고 있던 젖을 갑자기 뽑자 젖이 뿜어져 나와 하늘에 뿌려졌다는 신화입니다.
이 신화에선 은하수가 만들어진 상황이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밖에서
아들을 낳은 Zeus 나, 질투 때문에 어린 아기에게 젖조차
주길 거부하는 Hera 등,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이라 어린이들에게
설명하기에는 민망할 것 같습니다.
아래는
Jacopo Tintoretto (1518~1594. Italy) 란 화가의 그림인데, 제목자체가
은하수의 기원 (The Origin of the Milky Way) 입니다. Zeus 가 아기 Hercules 를 들고 Hera 의 젖을 먹이는 도중에 Hera 가 뿌리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그림 4 Jacopo Tintoretto
(1518~1594. Italy) 그림.
제목 : The Origin of the Milky Way.
제작 : 1575 년.
출처 : commons.wikimedia.com> ,
(2) 동남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
<그림 5 호주 동남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와
암각화.
사진 : Barnaby Norris. 2007. 장소 : 호주 Kuring-Gai National Park. (Sydney 부근).
출처 : 논문 Astronomical Symbolism
in Australian Aboriginal Rock Art. 저자 Ray. P. Norris
and Duane W. Hamacher. atnf.csiro.au>
호주 동남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입니다. Sydney 에서 멀지 않은 Kuring-Gai 국립공원에 있는 원주민의 암각화를 아래에 배치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은하수가 암각화와 같은 새 모양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새는 은하수에서 빛나는 별들의 모양이 아니고, 어두운 부분의 모양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다른 은하수 사진에 성운과 별
이름 등을 아래에 표시 드렸습니다. 석탄자루
성운 (Coalsack Nebula) 이 새 머리에 해당합니다.
<그림 6 위 그림과 같은 위치의 은하수
사진 및 별 이름.
사진촬영 : Charlie Warren.
출처 : ozsky.org>
위 그림은 다른 은하수 사진에 성운과
별 이름을 표시 드린 것입니다. <그림 1> 에서
보셨던 α Centauri A/B 가 Rigil Kent 입니다. Hadar 는 β Centauri
입니다. 석탄자루 성운 (Coalsack
Nebula) 이 새 머리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이 새는 어떤 새를 묘사한 것일까요 ? 이 새 이름은 호주가 원산지인 Emu (이무 이뮤) 이며. 성체의 키는 남자성인 정도입니다. 얼핏 보면 타조 같이 생겼는데, 계통상으로도 타조의 먼 친척이라고 합니다. 서식지 분포도는 아래 <그림
10> 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여간 호주 동남부 원주민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Emu 가 하늘에 올라 은하수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림 7 Emu. 출처 :
commons.wikimedia.com>
(3) 북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
그런데 호주 같이 넓은 땅에서 모든 원주민들이 Emu 라는 단 한가지 모양으로 은하수를 보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래 그림은 북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 모양입니다.
<그림 8 호주 북부 원주민이 본 은하수의
암벽화. 사진촬영 : Yidumduma Harney.
촬영장소 : Wardaman Rock Painting (Katherine 부근). 출처 : 그림 5 의
논문과 동일>
인용 논문에 따르면, 위 그림에서 사람 모양은 하늘의 최고신 (Sky Boss) 라고
합니다. 아래쪽 구불구불한 동물은 무지개 뱀 (Rainbow
Serpent) 을 그린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은하수를 묘사한 것입니다. 무지개 뱀은 호주 원주민 신화에서 창조의
신 (Creator God) 입니다. 북부 원주민들은 무지개를 뱀으로 해석했으며, 이 무지개 뱀이 세상만물을 창조했고, 낮에는 무지개로 보이고 밤에는
은하수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호주 북부 원주민과 고대 중국인
모두 무지개를 동물로 본 것이 신기합니다.
아래 왼쪽 그림은 호주 원주민의 암벽화이며, 신화상의 무지개 뱀을 그린 것입니다. 오른쪽은 중국 갑골문에 보이는 무지개
홍 (虹) 글자입니다. 중국인은
무지개를 뱀 모양의 상상의 동물이 물을 먹는 모습으로 생각했습니다. 벌레 훼 (虫. 벌레 충 蟲의 약자) 로 동물인 무지개를 표현했고, 공 (工) 글자는 발음요소입니다. 기타
내용은 Astro News Serial No. 6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림 9 왼쪽 : 호주 암벽화의 무지개 뱀 (Rainbow Serpent). 사진 : Mark O’Nei
장소 : 출처에 언급 없음. 출처 :
commons.wikimedia.com.
오른쪽 : 중국 갑골문의 무지개
홍 (虹) 글자. 출처 참고해서
필자가 그린 것.
Astro News Serial No. 6 재인용. 갑골문원형 출처 : 갑골문 이야기. 김경일. 바다출판사. 1999>
(4) 동남부와 북부가 다른 모습으로 본 사연
그러면 은하수를 동남부 원주민은 Emu 로 보고, 북부에선 무지개 뱀으로 보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요 ? 위 그림들을 인용한 논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간단히 추정만 해보려 합니다. 우선 아래 그림 먼저 보십시오.
<그림 10 Kuring-Gai 국립공원과
Wardaman 위치 및 Emu 서식지.
배경지도
출처 : commons.wikimedia.com.
편집 및 추가>
Emu 암각화와 무지개 뱀 (Rainbow Serpent)
암벽화가 발견된 장소를 표시해 보았습니다.
짙은 적색은 Emu 서식지입니다. Emu 암각화가 있는 Kuring-Gai
국립공원을 포함한 동부대륙 전체에 걸쳐 Emu 가 살고 있습니다. 고대 원주민 생각으론 땅 끝까지 가도 Emu 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무지개 뱀 암벽화가 있는 북부
Wardaman 주변 Emu 서식지는 그리 넓지 않으며,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건조지역입니다.
따라서 Emu 에 대한 애착은 동남부보다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에 건조지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뱀이 무지개 뱀으로 신격화되어 은하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부지역 원주민의 은하수에 대한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부
전체도 Emu 서식지이므로 동남부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황도12궁 기원 마지막 칼럼에선 우리나라 별자리로 사자 대신 호랑이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런 어색한 별자리 말고, 이제부터라도 암탉 쫓아다니는 병아리, 감나무 위의 까치, 새 잡는 고양이, 새끼 낳는 암소,
우물에 빠진 돼지, 마늘 먹는 곰, 된장 담그는
할머니, 손잡고 있는 갑순이와 갑돌이 등 우리에게 친근한 대상들로 우리 토종 별자리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합니다. 우리 별자리로 가득 찬 우주는 이해하기도
쉽고, 그 우주에 가득한 수많은 별들은 더욱 편안하게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III. 월하산책 (月下散策) – 1 부
잃어버린 별자리를 찾아서 (16) – 수탉자리
Gallus
(1) 네덜란드 국적 1612
년생
지난
Astro News 에선 2013 년 1월부터 10 월까지 모두 15개 별자리를 알아보았습니다. 이전에 살펴본 별자리 이름들을 게재한
순서대로 아래에 정리 드립니다.
<그림 11 Astro News 2013 년 1월~10월 기간 중 잃어버린 별자리 게재 목록>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이 시리즈는 수탉자리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탉자리는
라틴어로 Gallus 입니다. Gallus 가 종 (種 Genus) 이름일 때는 닭 종류 전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별자리 Gallus 는 영어로 The Cock The Rooster 또는 The Cockerel 로
씁니다. Cockerel 은 어린
수탉입니다.
수탉자리는 네덜란드의 Petrus Plancius (플란시우스 1552~1622) 가 1612 년에 만든 천구에 처음 등장합니다. 자료에 따라서는 1613 년이라고도 합니다. 이 분은 1592 년과 1598 년에도 천구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실려있다는 기록은 없으므로 수탉의 출생연도는 1612 년
또는 1613 년으로
보아야 할 겁니다. 그러면 이
수탉 모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림 12 Petrus Plancius 의 천구 (1612 또는 1613) 에 보이는 수탉자리.
출처 : atlascoelestis.com>
위 그림은 Plancius 의 1612 년 (또는 1613 년) 천구를 펼친 모습입니다. 오른쪽 그림의 황색원 표시가 수탉 입니다. 펼친 천구그림에서 왼쪽 조각엔 수탉머리가
보이고 가운데 조각에 몸통과 꼬리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천구이므로 일반 성도의 좌우도립 이미지입니다. 현대 성도에서 수탉자리 위치는 아래 단락의 <그림 23> 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는 수탉자리가 실린 성도를 연도순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그림 13 Issac Habrecht 2 세의 성도. 초판 1621 년. 위 인용그림은 1628년 판본.
출처 : Echo – Cultural Heritage Online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소. .
(Max Planck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Science. echo.mpiwg-berlin.mpg.de>
큰개자리 (Canis Major) 꼬리부분에 수탉이 있습니다. Issac Habrecht II (하브레히트 2 세. 1589~1633. 스위스 출생. 독일 이주) 는 수학 및 천문학 교수였습니다. 이 분은 스위스 출생이지만 독일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친 및 가족은 스위스에서 시계산업으로 유명한 Schaffhausen (샤프하우젠) 에서 천문시계를 만드는 장인이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천문 가족입니다.
<그림 14 Jacob Bartsch 성도. 초판
1624 년. 위 인용그림은 1661 년 판본.
출처 : Université de Strasbourg
(docnum.u-strasbg.fr)>
Jacob Bartsch
(바치. 1600~1633.
독일) 란 분은 Johannes Kepler (케플러. 1571~1630. 독일) 의 사위입니다. Kepler 가 사망했던 1630 년에 Kepler 의 딸과 결혼했다는데, 결혼 3년 후인 33세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되었습니다. 위
성도는 1624년 판본이므로 그가 24세 때 발간한 성도입니다.
<그림 15 1665 년에 출판된 성도. 작자미상.
출처 :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소 홈페이지.
Max Planck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Science. mpiwg-berlin.mpg.de>
위 성도는 Max Planck 과학사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수탁자리
부분만 확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상세한 성도가 아니고 한 장짜리 팜플렛입니다.
출처에는 1665 년 제작으로 되어있으나 제작자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혜성궤적을 제외한다면 <그림 14> Jacob Bartsch 성도와 표현기법이
거의 같습니다. Bartsch 작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 분 성도를 모방해서 다시 그린 다음, 혜성궤적만
삽입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칼럼
소재인 잃어버린 별자리와는 관련 없으나, 여기 실린 혜성의 정체가 궁금해서 맨 아래 단락에서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아래의
Hevelius 성도에선 수탉이 사라지고 지금의 고물자리 (Puppis) 인 아르고 호 (Argo Navis) 일부가 큰개 꼬리에 더욱 가깝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후에 발행되는 모든 성도에선 더 이상 수탉을 찾을 순 없습니다. 이로써
1612 년 또는 1613 년에 태어난 수탉은 1690 년에
공식 사망신고가 된 셈입니다. 그래도 87~88 년을 살았으니, 닭들 중에선 가장 오래 산 닭이 될 겁니다
<그림 16 Hevelius –
Uranographia (1690). 출처 : Tartu
Observatooriumi Virtuaalne Muuseum>
(2) Plancius 가
만든 살아있는 별자리들
16 세기 후반부터는 지리상 발견의 시대로서, 남반구
탐사가 시작되던 때입니다. Plancius 는 1595년에 남반구 탐사를 떠나는 같은 네덜란드 사람인 Pieter Dirkszoon Keyser (케이저 1540~1596) 에게 천문학과
수학을 지도했다고 전해집니다. Keyser
는 그 보다 31년 후배인 네덜란드 학자 Frederick
de Houtman (후트만 1571~1627) 과 같이 남반구를 탐사했으며, 이 두 분은 탐사 중에 남반구 하늘에 아래와 같은 11개의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 Keyser 와 Houtman 이 만든 남천 11개 별자리
극락조 (Apus)
카멜레온 (Chamaeleon) 황새치 (Dorado) 황새 (Grus)
물뱀 (Hydrus)
인디언 (Indus)
파리 (Musca)
공작 (Pavo)
불사조 (Phoenix)
큰부리새 (Tucana) 날치
(Volans)
어떤 자료에는 남쪽삼각형자리 (Triangulum Australe) 도
Keyser 와 Houtman 이 만들어서 모두 12 개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이미 1503년 Amerigo Vespucci 의 편지에서 나타나므로 이들이
새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Astro News Serial No 13 참조). 또한 물뱀자리 (Hydrus) 는 이 두 분이 만들었지만, 최초기록은 Petrus Plancius 가 만든 1598 년의 천구입니다 (한담객설 황도12궁 기원 - 게자리
두번째 칼럼 참조).
Plancius 와 더불어 Keyser 와 Houtman 을
장황하게 언급 드린 이유는, 네덜란드 출신인 이 두 분의 업적이 현존하는 여러 별자리들을 만들었던 Johannes Hevelius (1611~1687) 또는 Nicolas Louis de Lacaille
(1713~1762) 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만든 별자리가 남반구 하늘에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여간 Plancius 는 자기가 천문학을 지도했던
Keyser 와 Houtman 의 남반구 탐사결과를 보고
받고, 이에 자극 받아 자기도 새로운 별자리들을 만들어 1594 년 1598 년 및 1612 년에 제작한 천구에 만든 순서대로 그려 넣게
됩니다. 이들 별자리 중에서 현재
사용되는 88개 별자리에 포함된 것은 아래의 3 개 입니다.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나머지 4개 별자리 중에서 Apes (벌.
Bee. 는 이미 <그림 11> 의
북쪽파리 자리에서 소개 드렸고, 수탉자리는 이번에 말씀 드리는 별자리입니다. 기타
2개 별자리는 다음 칼럼에서 소개 드리겠습니다.
• Plancius
가 만든 7 개 별자리 중에서 지금도 사용되는 3 개 별자리
비둘기 (Columba) 1592 년 발표. 1594 년
천구에 등장.
(Plancius 는 Columba Noachi 로 표기함.
Noah’s Dove 노아의
비둘기 의미)
외뿔소 (Monoceros) 1612
년 발표. 1612 년
천구에 등장.
(Plancius 는 Unicornu 로 표기함. Unicorn 의미)
기린 (Camelopardalis) 1612 년 발표. 1612 년 천구에 등장.
<그림 17 Petrus Plancius (플란시우스 1552~1622. 네덜란드).
출처 : commons.wikimedia.org>
(3) Plancius
가 수탉자리를 만든 배경
그러면 Plancius 는
무슨 생각으로 수탉자리를 만들었을까요 ? 이에 대해 Plancius 가
직접 자기 생각을 기록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림 14> 성도를
발행한 Jacob Bartsch 는 이 성도에 실린 별자리 설명에서 수탉자리는 성서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울었던 수탉을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 18 Jacob Bartsch 성도 (초판 1624) 의 수탉자리 설명
(아래쪽 단락).
출처 : books.google.co.uk (Usus astronomicus planisphaerii stellati.
Jacob Bartsch)
위 그림의 아래쪽 단락 VII. GALLVS 부분 맨 아래 줄이 “수탉자리는 마태복음 26 장과 마가복음 14 장의 베드로와 관련있다” 는 내용입니다.
성서에서 예수님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는 대목은 몇 군데 나오는데, 마태복음 26:34, 마가복음 14:30 그리고 누가복음 22:34 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2:60 에는 닭이 소리내어 우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예언대목인 마가복음
14:30 과 닭이 우는 대목인 누가복음 22:60 을 올려 드립니다.
<그림 19 성서의 마가복음 14:30 및 누가복음 22:60. 출처 : CTM 인터넷성경 (bible.ctm.kr)>
개역개정 판본에는 단순히 닭이라고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큰 소리로 우는 닭은 수탉이므로
비록 단순히 닭이라고 해도 수탉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가지 영어 판본은 Cock 및 Rooster 로 표현해서 수탉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위 단락에서 말씀 드렸듯이, 현존하는 별자리 중에 Plancius 가 새로 만든 것에는 비둘기자리 (Columba) 도 있습니다. 비둘기자리 위치는 수탉자리 바로 서쪽입니다. 그런데 Plancius 가 1592 년에 이 별자리를 만들 때 붙인 이름은 Columba Noachi 이며, 노아의 비둘기 (Noah’s Dove) 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보통 비둘기자리 그림에서 비둘기는 창세기 8:11 에 나오는 올리브 나뭇잎을 물고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개역개정 : 감람나무 잎 (= 올리브).
KJV : An olive leaf pluckt off. NIV : A
freshly plucked olive leaf).
또한 그가 만든 별자리 중에서 수탉 및
비둘기 이외에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또 다른 두 개 별자리가 있는데, 이들도 모두 성서와 관련 있습니다. 이 두 별자리는 다음 칼럼에서 살펴 봅니다. 따라서 Plancius 의
수탉이 성서의 수탉을 묘사했다는 Jacob Bartsch 의 기록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Plancius 와
Bartsch 의 생존연대는 각각 1552~1622 및
1600~1633 으로 표기 드렸습니다. 비록 네덜란드와 독일이란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었지만, 22 년 동안을 같은 시대에 살았으니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서로 연락할 기화는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4) 정말 성서만 참고했을까 ?
그러면 Plancius 는
정말로 성서만을 참고해서 수탉자리를 만들었을까요 ? 수탉과 더불어 그가 만든 별자리 중
하나인 비둘기자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가 Sumer 또는 Egypt 별자리도 참조했을지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이 생깁니다. 여기서의 Egypt 별자리란 Ptolemy 의 그리이스 버전 천문학이 아니고, Sumer 에서 수입된 Egypt 토종 천문학을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를 우선 아래에 요약
드리고 세부내역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 Sumer 에도 수탉자리 (Rooster) 가 있었습니다.
위치는 지금의 토끼자리 (Lepus) 이며,
Plancius 가 만든 수탉자리와 아주 가깝습니다.
• 또한 Sumer 에는 태양의 새 자리 (Solar
Bird) 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위치는 지금의 토끼와 큰개 (Canis Major) 사이 입니다.
이것 역시 Plancius 가 만든 비둘기와 아주 가깝습니다.
실제 밤하늘에서 이들의 위치는 <그림 23>
을 보시기 바랍니다.
• Sumer 의 수탉과 태양의 새 자리는 그대로 Egypt 로
전래되었습니다.
• Plancius 가 만든 별자리 중에서 지금은
사라진 한 개 별자리는
Sumer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지만, 성서에도 명칭이 나옵니다.
이 별자리는 다음호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 Plancius 가 살았던 17세기 유럽에서 Sumer 천문학을 직접 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Sumer 천문학의 복사판인 Egypt 천문학은 서유럽에
알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Egypt 천문학을 모방해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었고,
Egypt 천문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Sumer 천문학의 일부라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17세기 유럽은 천주교와 기독교가 학문과 일상생활을 지배하던 시대이므로,
Egypt (또는 Sumer) 별자리들 중에서 성서에 명칭이 나오는 몇 개를 골라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5) Sumer – 목자와 그의 애완동물 수탉
황도12궁
기원 시리즈 중 전갈자리 칼럼에서 Sumer 수탉자리를 간단히 소개 드린 적 있습니다. 기억나시도록 그림을 다시 올려 드립니다.
<그림 20 Sumer 의 수탉자리. 전갈자리 칼럼 재인용. 출처 : Babylonian Star-Lore. Gavin White.
Solaria Publications. UK. 2008. 인터넷서적. 편집 및 추가>
이 그림의 동서방향을 일반성도 방향과
동일하게 바꾸고, Sumer 의 다른 별자리를 추가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21 Sumer 의 수탉자리 및 태양의 새 자리 주변. 출처
: 위 그림과 동일>
쌍둥이와 황소를 표시 드린 이유는 다른
별자리 위치를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림
가운데에 나무지팡이 들고 걷는 인물은 True Shepherd of Anu 입니다. Anu (아누) 신의 진정한 목자 (牧者) 별자리로 번역했습니다. 황도12궁 기원 칼럼의 Sumer 신들 계보도에서 보셨듯이 Anu 는 Akkad 시대 이후에 Sumer 최고신 An (안) 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아마 Babylonia 시대
기록에 따른 별자리 이름이라 Akkad 어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Anu 신의 진정한 목자 별자리 위치는 지금의 Orion 자리
입니다. Anu (아누) 신의 진정한 목자는 단순한 양치기가 아니라, Anu 신의 메시지를
지상과 지하세계에 사는 모든 다른 신들에게 전달하는 전령입니다. 전령을 하면서 Anu 신 뿐만
아니라 그가 만나는 다른 신들의 메시지도 전달합니다.
Anu 신의 진정한 목자 별자리 바로 아래에 그려진 수탉
(Rooster) 은 그의 애완동물인 동시에 친구입니다. 그를 항상 따라다니는 것을 표현하려고 그와 가장 가까운 발 아래에 별자리를
마련해 준 것 같습니다. Sumer 수탉자리와
같은 위치에는 그리이스 버전 토끼자리가 있습니다. 토끼자리 유래와 관련된 그리이스 신화는 몇 개가 있지만, Orion 이 좋아하던 사냥감이라는 신화가 가장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Sumer 에선 수탉이 Anu 신의
진정한 목자의 “친구이며 동반자” 였는데, 하늘에서 같은 위치에 만들어진 그리이스 토끼는 Orion 에게 쫓기는
“사냥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6) Sumer – 태양의
새
수탉의 바로 왼쪽 (동쪽) 에는 돌 기둥에 앉아있는 또 다른 새가 보입니다. 이 별자리는 태양의 새 (Solar Bird) 라는 별자리 입니다. 모양은 평범해 보이는데 무슨 이유로 태양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았을까요 ?
그 이유는 이 새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여름 무더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복잡해질 것 같아 표시 드리지 않았으나, 이 새의 바로 동쪽에는 지금의 큰개자리가 인접해 있습니다.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Sirius (시리우스) 인데, 이
별은 밤하늘 전체에서도 가장 밝습니다 (주성 A : – (마이너스) 1.47 등급).
새벽에 어떤 별이 태양과 같이 뜨는 현상을
Heliacal rising (힐라이어컬 라이징) 이라 부릅니다. 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 BC 384~BC 322) 는 큰개자리에 위치한 Sirius (시리우스) 의 Heliacal rising 이 일어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 각각 20 일, 모두 40 일 동안을 Dog
Days (개 날들) 이라 불렀습니다. 요즘 역법으로는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까지이며, 일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칼럼 “동양의 복날, 서양의 Dog
Days”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Sumer 별자리에 큰개자리는 없습니다. 대신에 지금의 큰개자리 바로 옆에 태양의 새 (Solar Bird) 란 별자리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여름 새벽에
태양과 같이 뜰 때를 한여름으로 본 것입니다.
새가 지저귀는 기간을 여름으로 보았으니, 개가 왈왈 짖어대는 것보다는 훨씬
더 시적 (詩的) 인 발상입니다.
(7) Egypt – Dendera Zodiac
그러면 위의 Sumer 별자리들은 Egypt 로 전래되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아래 Dendera Zodiac 보시면 복장과 수탉 위치가 조금 바뀐 것 이외에는
Sumer 별자리와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탉을 목자 발 아래가 아니고 발 뒤에 배치한 것은 그림들의 구도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림 22 Dendera Zodiac 의 목자, 수탉, 태양의 새. 제작연도 BC 51 년
이후.
시진
및 모사도 출처 : waa.ox.ac.uk. 편집 및 추가>
(8) Sumer Egypt 별자리와
Plancius 별자리 비교
<그림 23 Sumer Egypt 별자리와 Plancius 별자리 비교.
위치 Sumer N 31° E 46° 기준. 2015 년 11월 1일 새벽 3시. 출처 : Stellarium 화면. 편집 및 추가>
우선 수탉 (1612) 보다 먼저 만들어진 비둘기 (1592) 부터 보겠습니다. Sumer 태양의 새는 돌 기둥에 앉아있어
길쭉한 모양이므로 지금의 토끼와 큰개 사이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돌 기둥 없이 비둘기만 이곳에 집어 넣으면, 비둘기 크기가 상당히 작아져야 합니다. 더구나 토끼 – 비둘기 – 큰개 – Argo Navis 뒷부분 (고물) 의 네 개 별자리가 좁은 지역에 몰려있게 되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따라서 비둘기를
태양의 새 바로 남쪽에 있는 빈 공간에 그려 넣었을 겁니다.
Plancius 는 1592 년에 비둘기자리를 만들고 20 년이 지난 1612 년에 다시 수탉 외뿔소 기린자리 등을 한꺼번에
만들었습니다. Plancus 가 Sumer 또는 Egypt 의 수탉이 머물던 자리를 찾아보니 이미 Ptolemy 가 AD 150 년에 정리한 토끼가 자리를 선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겁니다.
Plancius 는 할 수 없이 이 곳에 수탉을 넣지 못하고, 적당한 곳을
찾아 주변을 배회하다가 조금 동남쪽으로 이동해 큰개 뒤쪽과 고물 사이의 좁은 공간에 끼워 넣었다고 생각됩니다.
Plancius 의 수탉과 비둘기가 Sumer 또는 Egypt 의 원형 별자리와 이렇게 가까운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특히 수탉자리는 새로운 별자리가 들어서기에
너무 좁은 공간에 힘들여 끼워 넣은 듯 보입니다.
당시 보통의 서유럽 사람들 시각으로 미개한
이교도에 불과한 Mesopotamia (Sumer) 또는 Egypt 별자리를
모방했다고 한다면, 학계의 조롱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 스스로는 이들 별자리를 만든 이유에 대해 아무런 “기록” 을 남기지 않으면서, 베드로의
수탉과 노아의 비둘기라는 “소문” 만 나도록 유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 입으로는
아무 말 하지 않았으니, 학자로서의 양심은 지킨 셈입니다. 그래도 Plancius 는
이들 별자리를 Sumer 또는 Egypt 의 원형 별자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Sumer 또는 Egypt 천문학을
참조한 것을 암암리에 표현하려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위와 같은 추정이 성립되려면 Plancius 가 살던 17세기 일부 서유럽 학자들이 Sumer 에서 수입된 토종 Egypt 천문학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으나, 역사를 보면 그런 상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대 그리이스 시대부터 학자들은 Egypt 로 여행해서 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Thales (탈레스) 가 Egypt 를 방문했을
때 피라미드 그림자를 이용해서 그 높이를 쟀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또한 Plato (플라톤) 도 Egypt 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Thales of Miletus. 생존 BC 624~BC 546 추정. Plato. 생존 BC 424, 423
또는 428, 427~BC 348, 347).
피라미드 (Pyramid) 란 단어의 어원도 그리이스어 입니다. 피라미드를 그리이스어 영어표기로 쓰면
Pyramis (피라미스) 입니다. Egypt 를 여행하던 그리이스 사람들은 Egypt 인들이 꿀에 저민 밀이삭을 넣은 사각뿔 모양의 빵을 만들어 먹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이스 여행자들은 그 빵을 Egypt 발음을 따라 Pyramis 로 불렀고, 본국으로 귀국해서 그 빵과 모양이 같은 피라미드를 Pyramis 로
불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9) 사족 – 한국천문연구원
설명
1. Plancius 국적
추가로 사소한 사항 두 가지
언급 드리고 지나가겠습니다.
Plancius 는 네덜란드의 Flanders (플랜더스) 지방 출생입니다.
Flandre (플랑드르) 라고도 합니다. 당시는 네덜란드 영토였지만, 지금은
벨기에 북부입니다. 하여간 Plancius 가 살았을 때는 네덜란드 영토였으므로 그의 국적은 네덜란드 입니다.
그런데 아래에 인용 드리는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의 외뿔소자리 (Monoceros) 설명에선 이 분이 독일인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 Dutch 와 독일사람 뜻인 Deutsch 는 철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되기 쉽습니다. 사소한 사항이지만
Plancius 가 섭섭해할 것 같아 언급 드립니다.
<그림 24 한국천문연구원의 외뿔소자리 설명 부분.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kasi.re.kr)
오류사항 : Petrus Plancius 는 독일인이 아니고 네덜란드인임.>
2. 기린자리 창시자
위에서 기린자리는 Plancius 가 만들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기린자리에 대한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설명을 아래에 인용 드립니다.
<그림 25 한국천문연구원의 기린자리 설명
부분. 출처 : 위 그림과 동일>
오류사항 : 기린자리는 Johannes Hevelius 가 아니고 Petrus Plancius 가 만든 별자리임>
위 인용문에는 헤벨리우스 (Hevelius)
가 기린자리를
만들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기린자리는 Plancius 가 만든 것이 분명하므로
이것도 잘못된 설명입니다. Hevelius 의 최초 성도가 출판된 1690 년 보다 훨씬 이전에 나온 천구 및 성도
세 개를 올려 드립니다. 네 번째의
Hevelius 성도도 같이 일람해 보십시오.
<그림 26 왼쪽 Petrus
Plancius 의 천구 (1612 또는 1613) 에
보이는 기린자리.
왼쪽과
가운데 조각에 보임. 출처 : atlascoelestis.com>
<그림 27 오른쪽
Issac Habrecht 성도 초판 1621 년.
위 인용그림은 1628 년 판본
출처 : Echo – Cultural Heritage Online
(echo.mpiwg-berlin.mpg.de)>
<그림 28 왼쪽 Jacob
Bartsch 성도의 기린자리.
초판 1624 년. 위 인용그림은
1661 년 판본.
출처 : Université de Strasbourg (docnum.u-strasbg.fr)>
<그림 29 오른쪽 Hevelius
성도 (1690) 의 기린자리.
출처 : Tartu Observatooriumi Virtuaalne Muuseum>
(10) 수탉이 닭도리탕이 되더라도
예전에 여행하면서 시골농가가 부업으로
하는 식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주변엔
닭들이 돌아다니며 한가하게 모이를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메뉴가 김치찌개 된장찌개 닭도리탕 세가지 밖에 되지 않아, 영양가 좀 있는
것 먹으려고 닭도리탕을 주문했습니다. 조금
후에 마당이 꼬꼬댁 소리로 시끄럽다가 이내 조용해졌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식이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찬만 여러 번 주문해
먹은 후에야 겨우 닭도리탕을 구경할 수 있었지요.
그 농가를 나설 때는 나머지 닭들 보기
미안해 차마 일일이 세어 보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족 중에서 운 없는 어떤 두 마리는 이미 이 세상 닭이 아니었습니다. 살아남은 닭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어떤 정치인의 말처럼, 수탉이 닭도리탕이 되더라도 Sumer 천문학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IV. 월하산책 (月下散策) – 2 부
조선왕조실록과 성변측후단자에서 찾아본
수탉자리 혜성의 정체
(1) 조선실록 87일
유럽성도 34일간의 기록
여기서는 위 단락의 <그림 15>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성도에 보이는 혜성의 정체를 추적해 봅니다. 이 성도 팜플렛 전체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30 그림 15 의 전체모습.
1665 년에 출판된 성도. 작자미상.
출처 :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소 홈페이지.
Max Planck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Science. mpiwg-berlin.mpg.de>
이 성도는 작자미상이므로, 지금부터 “1665 Max 성도”
로 부르겠습니다. 위 그림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성도
맨 왼쪽 혜성날짜는 연도표기 없이 11월 29일이고 맨 오른쪽은 1월 2일입니다. 따라서 34 일간의 혜성 여정이
됩니다. 날짜는 아래 단락의 확대성도에서
다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성도에서 혜성은 바다뱀 꼬리 – 까마귀 – 수탉 – 큰개
– 토끼 – 에리다누스 –
황소자리 순서로 통과합니다. Max Planck 과학사 연구소 홈페이지를 뒤져보았으나, 여기 그려진 혜성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성도를 확대해서 여기 적힌 글자들도 모두 찾아 보았으나, 독일 도시이름은 보이지만, 혜성이 나타난 연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만들어진 1665 년 전후로 나타난 혜성들의 궤도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
(Jet Propulsion Laboratory 홈페이지에 나와 있으나, 천구상 궤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Stellarium 에서도 17세기
혜성궤적은 핼리혜성 이외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혜성의 정체를 생각하던 중, 핼리혜성이 제일 먼저 생각나서 이것부터 알아보았습니다. 성도는 1665 년에 출판되었으니, 주기혜성이 예측되기 전입니다. 주기혜성이 최초로 예측된 때는 1705
년이며, 발표자는 잘 아시는 Edmond Halley (핼리. 1656~1742. 영국) 입니다. Halley 는 1531 1607
1682 년에 나타난 세가지 혜성의 궤도를 연구한 다음, 이 혜성이 1758 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1705 년에 발표했습니다. 정확히
1758 년에 그의 예측대로 혜성이 나타나자 핼리혜성 (Halley’s Comet)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742 년에 사망해서 1758 년에 나타난 혜성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1531 혜성출현
• 1607 혜성출현
• 1682 혜성출현
– Halley 는 이 세가지 혜성을 연구하고
1758 년에 같은 혜성이 돌아온다고 1705 년에
발표함.
• 1758 혜성출현
– 핼리혜성이란 이름을 얻음.
하여간 위 성도는 1665 년에 만들어졌으므로 1607 년의 핼리혜성일 수는 있어도 1682 년의 핼리혜성일 수는 없습니다. 1607 년 핼리혜성을
Stellarium 으로 검색해 보았으나, 위 성도의 위치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한
1607 년 핼리혜성이 근일점 위치에 왔을 때는 10월
27일이라고 하며, 그 때 위치는 쌍둥이자리입니다.
<그림 31 1607 년 핼리혜성의 근일점
부근. 10월 27일 0시. 서울지역. 출처
: Stellarium 화면>
(2) 두 기록에서 보이는 11일 차이
이제는 서양자료가 아닌, 우리의 기록 조선왕조실록과 이 성도상의 혜성위치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은 조선실록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 (天象列次分野之圖) 는 천상지도로 줄여 표기합니다.
조선실록에는 매일매일의 천문현상이 기록되어
있으니 1665 Max 성도에 보이는 혜성도 당연히 기록되었을 겁니다.
문제는 이 혜성이 출현한 연도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1665 Max 성도에 묘사되었으니, 조선실록에서 1665년 이전의 혜성 기록 중에서 1665 Max 성도의 혜성날짜 및 위치와 일치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의 조선실록 자료에서 1665 년 이전 혜성기록을 찾다가, 크게 오래 걸리지 않고 1664 년 연말부터 기록된 혜성의 이동궤적이 1665 Max 성도의
궤적과 일치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조선실록에
보이는 이 혜성기록 전체를 참고자료 단락에 올려드리고, 필요한 날짜별 현상은 본문에 별도로 정리 드립니다.
참고로 조선실록에는 양력 1665년 3월 27일 (음력 2월 11일) 에도 혜성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병자리 부근인 위수 (危宿) 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하므로, <그림 30> 1665 Max 성도의 혜성위치와는 맞지 않습니다.
맨 아래 단락 참고자료 보시면, 1664 년에 나타난 혜성은 양력 1664년 11월 26일 (음력 10월 9일) 에 진성 (軫星) 또는 진수 (軫宿) 에 처음 나타나서 그 다음해 양력 1665년 2월 20일 (음력 1월 6일) 규수 (奎宿) 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성은 바다뱀자리 꼬리부분이며, 규수를
조선실록에 기록된 그 이전 며칠간의 이동궤적으로 추정하면 고래자리 머리부분 입니다. 조선실록의 혜성이동 궤적을 정리하면 바다뱀 꼬리부분 – 까마귀 – 수탉 – 큰개
– 토끼 – 에리다누스 –
황소 – 고래자리 머리부분 순서가 됩니다. 이는 <그림 30> 1665 Max 성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다만 조선실록은
이 혜성이 소멸한 고래자리 머리부분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문제는, 1665
Max 성도의 혜성위치에 쓰여진 날짜와 같은 위치에 있는 조선실록
혜성의 양력날짜가 1665 Max 성도 보다 11 일 빠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665 Max 성도상에 11월
30일 위치의 혜성인 경우, 조선실록에서 혜성이 동일한 위치이면 양력 12월 11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시
1664 년 겨울에 두 개의 혜성이 나타나서 11일 차이를 두고 천구상에서 같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갔을 가능성은 없는지, NASA 제트추진 연구소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림 32 1600~1699 년간의 유럽기록에
나오는 혜성목록. 편집.
출처 : NASA 제트추진 연구소 (Jet
Propulsion Laboratory) 홈페이지.
ssd.jpl.nasa.gov/dat/ELEMENTS.COMET>
위 그림은 1600~1699 년의 100 년 동안 유럽에서 기록된 혜성들 중에서
특정한 이름이 붙지 않은 것들만 모아놓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1607 년 1682 년
핼리혜성은 1P/Halley 란 항목으로 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하여간 1618 년에는 3 개씩이나 기록되었으나 1664 년에는 한 개만 보입니다. 그렇다면 1665 Max 성도와 조선실록의 11 일 차이는 무엇일까요 ?
개인의견으론, 1665 Max 성도의 날짜는 율리우스력 (Julian Calendar) 에
따른 날짜로 생각됩니다. 그레고리력은 1582 년 발표되었지만, 1665 년 성도는 율리우스력으로 표기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현재도 천문학에선 경우에 따라 율리우스력에 따른 율리우스 적일 (積日 Julian Day Numbers 또는 Julian Day) 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레고리력으로 1582년 10월 15일부터 1700년 2월 28일까지는
율리우스력에 10 일을 더해야 그레고리력이 됩니다. 여기서 차이 나는 1 일이 다시
머리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시차를 생각해보면, 조선한양 시간은 서유럽 시간보다 약 9 시간 빠르므로, 어떤 날 혜성이 관측된 서유럽의 밤 시간은 조선한양 시간으로 그 다음날 새벽이나 아침일 겁니다. 따라서 유럽과 조선의 시차 1 일을 추가한 11 일이 바로
1665 Max 성도와 조선실록의 양력날짜 차이가 됩니다. 다만 한양시간으로 새벽 또는 아침부터 혜성이 보이는 초저녁이나 밤까지
혜성이 천구상에서 좀 더 이동한 것도 고려되어야겠지요.
(3) 조선실록과 유럽성도의 혜성 위치비교
이제는 조선실록의 혜성기록과
1665 Max 성도의 혜성위치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1665
Max 성도에 표시된 날짜는 율리우스력 (추정) 이고, 조선왕조실록의 양력날짜는 그레고리력임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그림들에서 1665 Max 성도는 <그림 30> 을 각각 왼쪽 (동쪽)
과 오른쪽 (서쪽) 의 반으로 나누어 확대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천상지도는 1665 Max 성도의 왼쪽 (동쪽)
에 해당하는 부분은 원본 그대로이고, 1665 Max 성도의 오른쪽 (서쪽) 해당부분은 90° 오른쪽으로
회전시킨 것입니다. 1665 Max 성도에서 여섯개 날짜를 고른 다음에, 조선실록에서
이 날짜들의 혜성위치와 1665 Max 성도에 표시된 위치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그림 33 위쪽 : 1665 년에 출판된 성도 (이 칼럼에선 1664 Max 성도라 부름).
G : 그레고리력. J : 율리우스력. 출처
: 그림 30 과 동일. 편집 및 추가.
아래쪽 : 천상열차분야지도. 출처 : 천문노트 오길순 제작
판본. astronote.org. 편집 및 추가.
녹색원 : 성변측후단자의 혜성위치 (아래 단락 참조)>
위쪽의
1665 Max 성도에서 맨 왼쪽 (동쪽) 에
보이는 혜성날짜는 11/29 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것을
율리우스력 (J) 으로 보겠습니다. 또한 이 날짜를 조선실록 기록대로
1664 년의 날짜로 간주하겠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 자료의 양력은 당연히 그레고리력 (G) 입니다. 따라서 1665 Max 성도의 11/29 (J) 은 그레고리력 (G) 으로 12/9 이며, 이는
유럽시간이므로 조선실록이 기록된 서울시간으로는 12/10 입니다.
물론 서유럽의 밤 시간은 조선에선 아침이
되며, 조선에서 밤이 되어 혜성이 보일 때는 같은 날짜에 서유럽에서 보이는 혜성위치보다는 좀 더 이동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조선실록의 혜성위치 기록이 아주 정확한 지점을 나타내지는 않으므로, 이런 부분은 1665 Max 성도에 따라 조금씩 조정했습니다.
그런데 맨 아래단락 참고자료 보시면 조선실록에 1664 년 12/10 의 관측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이 날은 비가 왔나 봅니다. 따라서 그 다음날인 12/11 일자
기록으로 대신했고, 1665 Max 성도의 혜성위치도 어느 정도 이동시켜 표시했습니다. 아래는 위 그림에 표시된 해당날짜들의
조선실록 기록을 요약한 것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참고자료를 보시면 됩니다.
• 조선실록 1664 년 12/11 (G) /
유럽시간 12/10 (G) / 1665 Max 성도
11/30 (J) :
진수 (軫宿)
에서 우할성 (右轄星) 으로 이동.
• 조선실록 1664 년 12/19 (G) /
유럽시간 : 12/18 (G) / 1665 Max 성도
12/8 (J) :
익수 (翼宿)
내부.
• 조선실록 1664 년 12/21 (G) /
유럽시간 : 12/20 (G) / 1665 Max 성도
12/10 (J) :
장성 (張星)
18도. 성성 (星星) 으로 이동
• 조선실록 1664 년 12/27 (G) /
유럽시간 : 12/26 (G) / 1665 Max 성도
12/16 (J) :
외주성 (外廚星)
아래 호성 (弧星) 동쪽.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패이지의 조선왕조실록 혜성자료.
kasi.re.kr. 참고자료 참조>
조선실록 내용을 천상지도에
청색원으로 표시했습니다. 혜성위치가
위쪽의 1665 Max 성도와
거의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1665 Max 성도의 오른쪽 (서쪽) 부분입니다.
<그림 34 내용 및 출처 : 위 그림과 동일>
여기서는 조선실록의 1664 년 12/29 및 1665
년 1/1 (G) 의 두가지 날짜만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의 조선실록 보시면, 1665 년 1/2~2/11 (G) 기간에는 “밤에 혜성이 나타났다” 라고만 되어있어 혜성위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 조선실록 1664 년 12/29 (G) /
유럽시간 : 12/28 (G) / 1665 Max 성도
12/18 (J) :
군시성 (軍市星) 동쪽
• 조선실록 1665 년 1/1 (G) /
유럽시간 : 12/31 (G) / 1665 Max 성도
12/21 (J) :
천원성 (天苑星)
동쪽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패이지의 조선왕조실록 혜성자료.
kasi.re.kr. 참고자료 참조>
<그림 34> 에서 천상지도의 혜성위치는 유럽과
한양의 9 시간 시차 및 혜성은 초저녁이나 밤에 볼 수 있음을 감안해서 1665 Max 성도 위치보다 조금 서쪽 (오른쪽) 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 위치가 조선실록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
한편, 조선실록 1664 년 12/29 기록은 “군시성 (軍市星) 동쪽” 으로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위 판본의 천상지도에는 혜성이 있을만한 위치부근에 군시성 용어가
보이지 않습니다. 군시성은 원형
별자리 중심에 있는 야계 1성 (野雞一星) 둘레의 13 개의 별을 말합니다. 위 판본에는 군시성 용어만 누락되어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나일성 교수 제작판본입니다. 황색원 표시한 군시13 (軍市十三) 을 확인해 보십시오,
<그림 35 천상지도의 군시성 (軍市星).
출처 : 나일성
교수 제작판본>
Max
Planck 과학사 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작자미상의 1665년 발행성도 (1665 Max 성도) 에 보이는 혜성은 1664년 11월부터 1665년 1월까지 잘 보였던 혜성이었음이 조선실록에서 기록에서 확인됩니다. 유럽과 조선 한양의 시차와 1665 Max 성도의 날짜가 율리우스력임을 감안하면, 조선실록의
혜성위치가 1665 Max 성도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 혜성은 1664년에 나타났고, 수탉자리에서 가장 밝고 꼬리도 제일 길므로 “1664 수탉혜성 (1664 Gallus Comet)” 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조선실록에도 유럽성도처럼
천상지도에 날짜별로 혜성위치가 표시되었으면 더욱 완벽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 실록의 천문사항은 과학적 접근이 아니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시각으로
기록되어 그럴 겁니다. 그래도 472 년 동안이나 매일매일의 천문사항이 모두 담겨있으니, 자랑스런
우리의 천문기록입니다.
(4) 성변측후단자의 혜성위치
그런데 조선에는 역사기록인 실록과는 별도로
전문 천체관측기가 있었고, 그 명칭은 성변측후단자 (星變測候單子) 입니다. 성변 (星變) 은 글자 그대로 “별 (星)” 에 “변화 (變)” 가 생긴 것을 뜻합니다. 갑자기 나타나는 혜성이나 유성이 이에 해당합니다. 단자
(單子) 는 실록처럼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혜성이나 유성이 나타날 때마다 기록한 낱장 관측기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단자들을 시기별로 모아놓은 것을 성변등록 (星變謄錄) 또는 객성등록 (客星謄錄) 으로 부릅니다.
성변측후단자 또는 성변등록은 극히 일부만
전해집니다. 여기서는 1664 년 혜성이 기록된 두가지 자료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림 36-1 왼쪽 : 논문 Korean Astronomy 의 사진. 성변측후단자인지 확인되지 않았음.
논문저자 W.C. Rufus. 1936. 양력 1664
년 12월 14일 (음력 10월 27일) 의 혜성이라고 함.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그림 36-1> 은 일본 점령시기인 1936 년에 W.C. Rufus 가 쓴 논문 Korean Astronomy 에 실린 사진이며, 양력 1664 년 12월 14일 (음력 10월 27일) 의 혜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 그림 내부에는 다른 기록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그림만으로는 성변측후단자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1664 년의 혜성을
묘사해서 인용 드렸습니다.
그림에서 혜성은 좌할성 (左轄星) 바로 북쪽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날의 조선실록 기록은 우할성 (右轄星) 서쪽 (오른쪽) 으로 되어있습니다.
우할성은 그림에서 맨 왼쪽 위의 별입니다. 이 혜성 위치를 <그림 33> 에 녹색원으로 표시했습니다. 양력 1664 년 12월 14일(음력 10월 27일) 의 혜성은 조선실록 및 1664 Max 성도와 비교해도 같은 위치로
생각됩니다.
<그림 36-2 왼쪽 : 성변측후단자. 양력 1664 년 12월 23일 (음력 11월 7일) 의 혜성.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출처 : 그림 36-1 과 동일.
오른쪽 : 성변측후단자. 왼쪽과 같은 날의 혜성.
출처 : 서적. 다시 쓰는 코스모스 별과 우주 이야기.
p. 11 .
저자. 한국천문연구원. 발행 2015. 4.21. 전자책 (비매품).
kasi.re.kr>
<그림 36-2> 에서 왼쪽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성변측후단자 입니다. 오른쪽은 한국천문연구원이 최근 발행한 “다시 쓰는 코스모스 별과 우주 이야기” 라는 전자책에 나오는 성변측후단자 입니다. 사진 옆에는 (© 기상청) 표시가 있으므로 아마 기상청 소장으로 생각됩니다.
두 그림의 혜성은 같은 날짜인 양력 1664 년 12월 23일 (음력 11월 7일) 의 모습입니다.
날짜는 그림에 보이는 문장으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문장내용과 묘사형태로 보아 둘 중의 하나는 필사본일 것입니다. 물론 최초에 그려진 원본은 따로 있고
둘 다 필사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들에서 혜성은 장6성 (張六星) 아래를 지나갑니다. 이
날 12월 23일 (음력 11월 7일) 조선실록에는
단지 혜성이 나타났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혜성 위치 역시 <그림 33>
에 녹색원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이 날의 혜성위치는
이 시점을 전후로 한 조선실록 기록은 물론 1664 Max 성도와 비교해도 차이가 있습니다. 성변측후단자 그림대로라면 양력 12월 23일의 혜성은 12월 21일 혜성의 동쪽 (왼쪽) 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 성변측후단자와
조실실록 그리고 1665 Max 성도 세가지 중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자료들이 구해지면 다시 업데이트
해 나가겠습니다.
(5) 이 혜성이 나타날 때 조선에선 어떤 일이 ?
잠시 쉬었다가는 의미에서, 이 혜성의 나타나던 때의 조선상황도 알아보고 지나가겠습니다.
1664 년 조선 임금은 현종 (顯宗. 재위 : 1659~1674) 이었습니다. 현종은 조선시대 다른 왕들과 비교해서
두가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입니다.
첫번째는 조선의 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해외에서 출생한 왕입니다. 1636 년 병자호란으로 중국 청 (淸) 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봉림대군 (鳳林大君) 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봉림대군은 나중에
귀국해서 효종 (孝宗) 이 됩니다. 부친이
해외출장이나 여행이 아니고, 굴욕적인 인질상태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니 애국심은 남달랐을 겁니다. 두번째로는 조선의 왕들 중에서 유일하게 후궁이 없었던 왕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왕비를 너무도 사랑해서 후궁을 두지 않은 것 같으나, 속사정을 알고 보면 측은해집니다.
현종은 즉위연도인 1659 년부터 상복 (喪服) 입는 기간을 구실로 당파들이 대립한 예송논쟁 (禮訟論爭) 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망하던 해인 1674 년에도
같은 문제로 두번째 예송논쟁이 벌어져, 15 년의 짧은 재위기간 내내 신하들의 권력에 휘둘렸던 불운한
왕입니다. 심지어 궁궐에서 가장
높은 어른인 현종의 할머니 자의대비 조씨 (慈懿大妃 趙氏. 인조의 계비) 가 후궁을 추천해도 신하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병자호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때이고, 거의 매년 흉년이 들어 민중의 생활은 대단히 궁핍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혜성이 나타나던 1664 년 전후 3~4 년 동안엔 더욱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어 전국에서
많은 유랑민이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고난에 시달리는데, 최고 통치자인 임금이 새로 후궁을 둘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삼정승 이하 조정 신하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첩을 돌려 보냈다는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조선실록에는 이 혜성이 처음 관측된 양력 1664 년 11월 26일 (음력 10월 9일) 에서 6 일 후인 양력 12월 2일 (음력 10월 15일) 에 왕과 여러 고위관료들이 모여 액운의 상징 혜성출현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여기선
앞으로 정치를 더욱 잘하겠다는 현종의 약속만 듣고 회의가 끝났습니다.
또한 현종은 관례대로 신하들에게 구언 (求言) 을 했으며, 이에 대한 답신으로 어려운 민생을 위한 여러 상소 (上疏) 가 올라왔습니다. 구언이란 천재지변이나 혜성출현 같은 변고가 있을 때, 왕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달라고 신하들에게 요청하는 관례입니다. 이런 상소들 중에는 길에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식사를 제공하자는 것도
있었는데, 제도로 실현된 때는 현종 다음 왕인 숙종 (肅宗. 재위 : 1674~1720) 때입니다.
현종 재위기간 중 일어난 예송논쟁은 일정기간
동안 한가지 사안에 대해서 입으로만 얘기하는 토론이 아닙니다. 상복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대를 이어 지속적으로 관직은 물론 목숨을 걸고 싸웠던 투쟁의 일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남인 소속 윤선도 (尹善道) 는 사약을 내리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가까스로 귀양으로 마무리 됩니다. 예송논쟁의 한 축이었던 서인의 영수 송시열 (宋時烈) 은 현종 다음 왕인 숙종 때 왕세자 책봉사건으로 한양으로 압송되는 길 위에서 사약을 받았습니다 (사약
받을 때는 서인이 1680 년에 분리된 노론 소속).
송시열이 사약을 받을 때는 숙종 때인 1689 년의 일이지만, 현종 당시의 정국도 이와 비슷하므로 잠시
당시 상황을 말씀 드리고 지나가겠습니다. 숙종에게는
왕비 소생으로 딸만 있었고, 후궁들에게서 아들 여섯이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유명한 장희빈의 큰 아들이고 생존해있던 둘째 아들은 숙빈 최씨의
아들 (둘째) 입니다. 장희빈의 아들이 숙종의 대를 이어 경종
(景宗) 되고, 숙빈
최씨의 아들이 경종 이후에 영조 (英祖) 가 됩니다. 숙종이
왕세자를 책봉하려는 시점에서 남인과 소론 (서인의 분파) 은
장희빈의 아들을 밀었고, 노론은 숙빈 최씨의 아들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국은 노론이 주도하며, 남인과 소론이 대항하던 형국입니다.
그런데 숙종이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과
상의도 없이 갑자기 남인과 소론이 지원하던 장희빈의 큰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합니다. 숙종 사후에 장희빈의 아들이 왕이 되면,
당연히 남인과 소론의 노론에 대한 보복이 시작될 것임은 당시 누구나 예상 가능했습니다. 이에 지방에 머물던 노론의 대표자 송시열은 이미 이루어진 왕세자 책봉을
취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립니다. 이에
열 받은 남인과 소론은 숙종을 움직여 송시열이 심문 받도록 한양으로 올라오도록 하고, 올라오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사약을 받도록 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82 세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택군 (擇君) 이라 합니다. 택군은
신하가 왕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장희빈의 큰 아들은 숙종의 첫째 아들이므로, 어머니의 행실과는 관계없이 법률상 당연히 왕세자 자격이
있습니다. 정통성 있게 이루어진
왕세자 책봉을 취소하고, 다른 왕자로 다시 책봉하라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신권 (臣勸) 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 줍니다
장희빈의 아들이 경종이 되고 나선 남인과
소론이 집권했으나, 집권 4 년차에 경종이 저녁 식사 후
갑자기 복통을 일으키면서 며칠 만에 사망합니다.
따라서 남인소론 천하는 4 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갑작스런 경종의 죽음에 대해 당시
노론과 영조가 배후에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경종은 자식이 없어 숙빈 최씨의 아들이 그 다음에 영조가 되며, 영조가 장수하는 동안 내내 노론이 득세했습니다. 숙빈 최씨는 원래 궁궐 부엌에서 잡일을 하는 무수리였습니다. 숙종의 둘째 왕비 인현왕후가 입궐할 때
몸종으로 따라 들어왔다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는 왕이 되어서도 출신신분이 낮았던 어머니로 인해 상당한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현종도 영의정을 남인으로 교체하면서 집권세력을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꾸려
시도하는 도중, 33 세 한창 나이에 갑자기 사망합니다. 정사 (正史) 에선 현종의 사망이유를 가족들의 연이은 초상 때문에 심신이 허약해졌다고 하지만, 사망배후로
역시 서인 (노론의 원조) 이 거론됩니다. 그의 대를 이은 숙종은 13 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사인에 이견이 있는 조선의 왕들로는 인종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등이 거론됩니다.
역사는 예송논쟁을 왕권 (王權) 중심 정치와 신권 (臣權) 중심 정치의 대립 또는 사회개혁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해석합니다. 이 논란의 표면적 쟁점은 왕실에서 돌아가신 분과 상복 입는 당사자 사이의 관계를 고려할 때, 왕실의 법도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일반 양반의 관례대로 할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왕실 법도대로 하면 왕권을 존중하는 것이 되고, 양반 관례대로 하면 왕실도 신하와 같은 일반 사대부로 전락하게 됩니다. 효종이 사망하고 현종이 즉위할 때의 1차 예송논쟁 경우의 예를 들면,
사망한 효종의 초상에 효종의 계모 (인조의 계비) 인 자의대비 조씨가 얼마동안 상복을 입어야하는지가 쟁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서인은
조선을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보고, 효종이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었으므로 국왕이었더라도 왕실 법도가 아닌 일반 양반의 관례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펴서 이를 관철 시켰습니다. 이런 논쟁의 이면에는 자기 당파의 논리를
관철시켜 세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강한 신권 (臣權) 과 당쟁의 폐단을 지적하면 식민사관 추종자라고 불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동네에 사는 청년들이
세력확장을 위해 각목 들고 패싸움 하는 것을 건강한 조국건설을 위한 범국민 체력단련이라 부를 순 없을 겁니다. 조선의 당쟁은 1575 년 선조 (宣祖) 때 동대문에 살던 김효원과 서대문에 살던 심의겸이 주축이 된 계파가 동인과 서인으로 불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전의 동교동 및 상도동 계파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런 파당은
조선말기 고종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1905 년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는 을사조약에 서명한 이완용 등 을사오적 (乙巳五賊) 다섯 명 대신들 모두 노론 소속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완용이 노론의 대표였는데,
1910 년 일본의 조선 강제합병으로 마지막 당대표가 된 셈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미래에는 이를 반복하지 않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서인
남인 노론 등에 소속된 사람들이 나라에 끼친 해악을 살펴보는 것을 식민사관이라 부른다면, 조선말기 노론소속
다섯 명이 나라를 일본 식민지로 만들었던 행위를 살펴보는 것도 식민사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굳이 거창한 사관 (史觀) 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굶주림에 시달리던 현종시대 조선민초들의 눈에는 예송논쟁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를 구실로 권력을 위해 싸우는 사치스런 당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1664 년 겨울에도 조정은 연일 시끄럽고, 먹을 것 없어 저녁도 건너뛰었는데, 갑자기 불길한 혜성까지 나타난다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혜성을 아름답다고
느낄 여유도 없이 굶주림과 걱정 속에서 바라보았을 민초들의 서글픈 눈망울이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참고한 자료 : 이덕일의 칼날 위의 역사. 시사저널.
예송논쟁 일부 – 시리즈 # 4 (2014.
9.18).
송시열
사건 일부 – 시리즈 # 21 (2014. 1.15). 을사조약 일부 – 시리즈 # 22 (2015. 1.22).
sisapress.com)
(6) 젊은 날의 초상
1. 금빛 목도리 휘날리며
<그림 37 어린 왕자. 출처 : IWC 시계광고 –
The Little Prince’s Finest Hour. youtube.com>
사람이 한창 때는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광채가 납니다. 혜성코어를 빛나는
얼굴로 본다면, 꼬리는 목에 감은 휘날리는 목도리처럼 보입니다. 어린 왕자 그림처럼, 금빛
목도리 휘날리며 홀연히 1664 년 겨울에 나타난 이 혜성의 젊은 날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1665 Max 성도에는 별들의 크기가 밝기에 비례해서 그려져 있고 혜성크기도 날짜별로 모두 다릅니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 자료에는 이 혜성의
최대광도에 대한 추정자료가 있으며, 맨 아래 단락에서 올려드리겠습니다. 성도에선 이 혜성을 특히 강조해서 크게 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선 안시등급 계산연습도 할 겸, 1665 Max 성도의
혜성크기를 기준으로 제 나름대로 광도를 추정해 보려 합니다.
한편,
꼬리길이에 대해선 NASA 제트추진연구소 자료에도 기록이 없습니다. 꼬리길이에 대해서는 조선실록 기록과 1665 Max 성도 그림을 비교하면서 추정해 보겠습니다. 우선 꼬리길이부터 알아봅니다.
<그림 38 조선왕조실록 혜성기록.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패이지. kasi.re.kr. 참고자료 참조>
조선실록 1664 년 11월 27일
(G) (유럽시간 : 11/26 (G) / 1665 Max 성도 11/16 (J) 보시면
길이가 1 척 (尺) 남짓하다고 했습니다. 1 척 (尺) 단위는 1 자와 같으며, 30. 30303 cm 입니다. 그런데 천구상 거리가 “시야
각거리” 가 아니고 단순한 “선 (線) 거리” 로 표기되어 혼동됩니다. 아마 11월 27일의 서운관 (書雲觀) 근무자는 신입관료였나 봅니다.
물론 조선실록에는 각거리로 측정된 기록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의 1664 년 12월 21일
기록에는 18 도란 문구가 보입니다. 여기서의 도 (度) 는 서양식 각도단위인 Degree ( ° ) 가 아니고, 이전 칼럼들에서 말씀 드렸던
주천도수 (周天度數 = 거극도 去極度) 입니다 (한담객설
적도 2014.3.6, 한담객설 춘분 2015. 3.5. 참조)
<그림 39 조선왕조실록 혜성기록. 출처
: 위 그림과 동일>
하여간 1 척 (약 30. 3 cm) 이란
표현은, 아래 그림처럼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 자를 하늘에 대고 별과 별 사이 각거리를 쟀을 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테스트 삼아 아래
왼쪽 그림처럼 30 cm 자의 각거리에 들어맞는 두 별을 찾아보았는데,
사자자리 Regulus 와 바다뱀자리 Alphard 가
들어맞았습니다. Stellarium 화면에서
그 두 별 사이의 각거리를 측정했더니 23 ° 가 나왔습니다.
<그림 40 조선왕조실록 1665 년 11월 27일자
기록에 보이는 1 척 (尺) 의 시야각>
그런데 손으로 들고 있는 30 cm 자와 눈 사이의 거리만 잰다면, 1 척 (尺) 의 시야 각거리를 간단히 계산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이 이런 방법을 나타냅니다. 저는 숏 팔이라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도 눈과 30 cm 자 사이 거리가 69~70 cm 이었습니다. 이를
70 cm 로 정하고 tan θ 에서 θ 를 계산기로 구한 결과는 12 ° 였습니다. 따라서 시야각은 그 두 배인 24 ° 입니다. 실제 밤하늘의 별들로 확인한 것과 큰 차이 없는 이유는, 별 사이 실제 각거리를 Stellarium 화면에서 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꼬리길이가 1 척이라는 조선실록 11월 27일 (G) 은 유럽시간 (G) 으로
11월 26일이고, 1665 Max 성도의 율리우스력
날짜로는 11월 16 일
(J) 이 됩니다. 따라서 <그림 33> 성도의 맨 왼쪽 (동쪽) 에 그려진 혜성날짜 11월 29일에서 13 일이나 이전이므로,
성도날짜 11월 29일의 혜성꼬리 보다 훨씬
더 짧았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림 33> 과 <그림 34> 의 성도표기 날짜 12월
16일의 혜성꼬리 길이는 Sirius 에서 Procyon
까지 거리와 비슷합니다. 이
두 별 사이 각거리를 Stellarium 화면에서 찾으면 25 ° 입니다.
조선실록이 꼬리의 아주 희미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기록되었다면, 성도날짜 12월 16일 (조선실록 날짜 12월 27일) 의 실제 꼬리 시야 각거리는 1665 Max 성도에 그려진 25 ° 보다는 훨씬 클 것입니다. 성도는 뚜렷이 보이는 꼬리만 묘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꼬리는
어느 정도 길었는지 추정해 봅니다.
<그림 41 1664 년 12월 27일 (G) 의
최대꼬리 시야 각거리 추정>
1665 Max 성도 보시면 위 표에 보이는 기간의 혜성은 태양에 접근 중이었습니다. 다소 무리한 가정이지만 혜성이 일정속도로 태양에 접근하고, 위 기간
중에 꼬리길이가 시간경과에 따라 비례적으로 증가한다고 보면, 조선실록 기록에 따른 12월 27일 (G) 또는
성도표기일 12월 16일
(J) 의 꼬리 시야 각거리는 72 ° 에 이를 겁니다. 이는 지상에서 보이는 천구전체 각거리
180 ° 의 40 % 나 되는 엄청난 수치입니다. 맨 눈으로 이렇게 긴 혜성꼬리가 보일 수 있을까요 ?
<그림 42 1680 년
혜성의 금빛 목도리 (1664 년 수탉혜성이 아님).
화가 : Lieve Pietersz Verschuier (1627~1686 네덜란드).
Historisch Museum, Amersterdam (Historical
Museum, Amsterdam) 소장.
출처
commons.wikimedia.org>
위 그림은 네덜란드의
Verschuier 라는 화가가 그린 1680 년의 혜성입니다. 혜성꼬리가 목에 감은 금빛 목도리 같습니다. 그림에서 사람들 중 두 명이 들고 있는 것은 관측도구입니다. 혜성모습이 좀 과장된 것 같지만, 혜성꼬리가
북쪽으로 길게 뻗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 43 1618 년
혜성의 꼬리. (1664 년 수탉혜성이 아님).
화가 : Adriaen van de Venne (1589~1662. 네덜란드). British Museum 소장.
출처 : streetsofsalem.com>
위 그림은 네덜란드의 Venne 라는 화가가 1618 년에 나타난 세 개 혜성 중 하나를 묘사한 판화입니다. 역시 이 판화에서도 혜성은 과장되어 표현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당시 혜성꼬리의 각거리는 상당했던 듯 보입니다. 조선실록 기록을 신뢰할 수 있고, 위의
개인적 추정이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면, 1664 년 수탉혜성꼬리가 희미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맨 눈으로 72 ° 까지 보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2. 얼굴엔 눈부신 광채가
이젠 혜성얼굴의 광채는 얼마나 빛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665 Max 성도에서
혜성이 가장 밝았던 1664년 12월 27일에는 혜성크기가 – 1. 47 등급인 Sirius 보다 9~10 배는 더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Sirius 와 혜성에 그려진 대기에 의한 빛의 산란까지 고려한 것입니다. 이 혜성이 Sirius 보다
정확히 10 배 더 밝았다고 보고 안시등급을 계산해 봅니다.
• 안시등급 1 등급과 6 등급의 밝기차이는
100 배.
따라서 한 등급 사이의 밝기차이는 5√100 = 2. 512 배.
• 10 배 밝기차이 나는 별의 등급차이 n 을
구하면, (2. 512) ⁿ = 10.
양변에 log 하면, n x log (2. 512) = log 10 = 1.
따라서 n = 1 / log (2. 512) = 2. 4998 = 약 2. 5 등급차이.
• Sirius
안시등급이 – 1. 47 등급이므로,
서울시간
1664년 12월 27일 (성도 표기날짜는 12월 16일) 의 혜성 안시등급
= – 1. 47 – 2. 50
= – 3. 97 등급 (약 – 4. 00 등급).
정확히 계산하면 이렇게 되겠지만, 제가 실제로 별을 볼 때는 머리도 아프고 공학용 계산기도 필요해서 위와 같은 방법을 쓰진 않습니다. 암산이나 핸드폰계산기를 이용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한 등급 밝기차이는 약 2. 5 배 이므로,
10 배 밝기차이가 나려면 2. 5 를 몇 번 곱해야 되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위의 수식 (2. 512) ⁿ = 10 과 같은 의미입니다.
• 2. 5 를 두번 곱하면 6. 25 이고, 세번 곱하면 15. 625 입니다.
10 은 6. 25 와 15. 625 의 거의 중간이므로,
두번과 세번의 중간인 두번 반 (2. 5 번) 을 곱하면 될 겁니다.
(공학용
계산기로 계산하면, 9. 88211 이 나옵니다).
• 두번 반 (2. 5 번) 곱한다는 것은 등급차이가 2. 5 등급이란 뜻입니다.
따라서 Sirius – 1. 47 등급에서 2. 5 등급을 빼면 혜성의 안시등급인
– 3. 97 등급이 나옵니다.
(7)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서면
1665 Max 성도와 조선실록 기록만으로 추정한 혜성의 광도는 –
3. 97 등급이었는데, 실제 광도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 아래 표는 NASA 제트추진
연구소의 1600~1699년 100 년간 혜성기록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림 44 1600~1699 년 기간의
혜성들 일부.
Perihelion : 근일점. Perigee : 근지점. Dist : Distance 태양 및
지구로부터의 거리. 단위 AU.
Mag : Magnitude. 출처 : NASA 제트추진 연구소 (Jet Propulsion Laboratory) 홈페이지 기사.
기사제목 : Great Comets in History. 작성 : Donald K.
Yeomans (2007년 4월)
ssd.jpl.nasa.gov/?great_comets>
1664 년 혜성의 실제 최대등급은 – 1 등급으로, Sirius 와 비슷한 밝기였습니다. 또한 혜성의 근지점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 일자는 12월 29일이며, 그 거리는 0.17
AU 였습니다.
<그림 33> 성도에서 꼬리가 가장
길 때는 율리우스력 성도날짜 (J) 로 12월 16일이며, 그레고리력 조선실록 날짜 (G) 로는 12월 27일입니다. 그런데 위 표에서 혜성의 근지점인 그레고리력 12월 29일에는 성도의 꼬리길이가
12월 27일 보다 조금 짧아졌으나, 혜성크기는
동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혜성이 근지점 이틀 전인 12월 27 에는 꼬리가 가장 길게 보였고, 12월 29일 근지점에선 태양에서 조금 더 멀어졌으니 꼬리는 조금
짧아졌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밝기를
보면, 12월 29일에는
12월 27일 보다 태양에서 멀어졌지만 지구에는 더 가까워졌으므로 이틀 전과 동일하게 보였기
때문에 같은 크기로 그렸을 겁니다.
위 표에 따르면 근지점에서 혜성과 지구
사이 거리는 0. 17 AU 입니다. 화성이 근지점일 때는 지구와 0.
3814 AU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력 1664년 12월 29일의 혜성은 지구와 화성 사이의 반 정도 되는 거리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km 로는 약 2,540 만 km (25,431,637 km) 가 됩니다.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울 때 거리는 약
36 만 km (362,600 km) 이므로, 지구–달 사이 거리의 70 배 가 되는 곳입니다. (1 AU = 149,597,870,700
meter = 약 1억 5천만 km)
(8) 그 해 겨울
조류인플루엔자로 닭이 멸종할
경우엔 다른 가축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인류의 생존이 위협 받는다고 합니다 (인용사진 출처기사
참조). 예를 들어 닭고기와 같은
무게의 고기를 생산하려면, 소는 사육비용이 닭에 비해 약 8 배
더 들고 사육면적은 20 배 더 커야 합니다. 돼지 양 등 다른 가축도 소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탉만 사라진다 해도 번식이 불가능하므로 상황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수탉이 사라져도 새벽은 오겠지만 지구에서 아침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그림 45 수탉의 조상 종류 중 하나인
붉은 멧닭.
사진
및 기사내용 출처 : 조선일보 2015. 5. 30. “치킨의
경고. 나, 사라진다” chosum.com
>
성도그림으로 추정한 수탉혜성의 안시등급은
– 3. 97 등급이고, NASA 제트추진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Sirius 와 비슷한 – 1 등급이었습니다. 당시 동서양 모두에서 혜성은 액운의 징조라서
걱정거리였을 겁니다. 그러나 Sirius 처럼 빛나는 혜성이 전체하늘의 40 % 나 꼬리를 펼치고
있으니 보기 드문 일대장관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이런 혜성이 태양계 구경하다 마음이 바뀌어 지구에 잠시 들렀다 가려고 했다면, 그 결과는 조류인플루엔자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위 단락에선 수탉이 닭도리탕이 되더라도 Sumer 천문학은 살아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이 혜성이
지구를 방문했다면, 수탉은 물론 암탉뿐만 아니라 병아리까지 모조리 닭도리탕이 되었을 겁니다. 인류도 당연히 파국을 맞았겠지요. 그렇다면 우주를 인식할 자기자신이 없으니
우주도 존재할 수 없고, Sumer 천문학 I am that I am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말이 모두 겨울바람 흙먼지로 사라졌을 겁니다. 오늘도 단단한 지구 땅을 밟고 다니며 아침에는 달걀로 식사하고 밤에는 청천낙성 (暒天樂星) 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할 따름입니다.
V. 참고자료
조선왕조실록 혜성기록 (양력 1664. 11.26~1665.2.20)
•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kasi.re.kr)
<그림 46~51. 출처 : 그림 상단에 명기>
<끝>
• 조강욱 부장님 댓글에 대한 회신 •
그림을 몇 개 첨부하므로 회신을 이곳에 올립니다.
1) 에리다누스 자리를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셔서 이것부터 회신 드리겠습니다.
칼럼 본문이 아니므로 간단히 요약만 드립니다.
① 에리다누스 자리도 Sumer 에서 원형 이 만들어졌습니다.
Sumer 별자리 이름은 “Eridu (에리두)” 입니다.
이것은 Enki 신을 묘사한 것입니다. Enki 는 지상통치권을 빼앗긴 후,
Persia 만 바다로 진출했고, 나중에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인류최초의 도시로
불리는 Eridu 를 건설하고 사람들에게 여러지식을
전달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Akkad 에선 Enki 를 그가 강 유역에 건설한 도시들을
연상케하는 이름인 Ea (물의 집)
으로 부릅니다. 아래 Sumer 지도 보시면
아브라함의 고향 Ur 서쪽에 Eridu 가 보입니다.
<그림 01 Eridu 위치. 지도출처 : ancient.eu>
② Sumer 의
Eridu 자리는 강 모습이 아니라, Enki 자체 를 묘사한 것입니다.
따라서 강물 모양은 아니지만, 물병에서 물줄기 가 흘러 나오는 모습은 보입니다.
모양은 Sumer 버전 물병자리와도 많이 닮았습니다.
<그림 02 Sumer 의 Eridu 자리>
③ Egypt 는
Sumer 의 Eridu 자리를 그대로 수입했지만,
Dendera Zodiac
에는 물줄기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림 03 Dendera Zodiac 의 Eridu 자리>
④ Sumer 지역
(N 31° E 49°) 에서 지금은 Achernar 가 지평선에 걸립니다 (최고 고도일
때).
그러나 BC 3000 년엔 Achernar 가 항상 지평선 아래에 있습니다.
이유는 세차운동 때문입니다. 지난 센타우루스 자리 칼럼에선 BC
3000 년 Sumer 에서
센타우루스 전체가 보였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당시는 지구적도가 센타우루스 자리를 향해
남쪽으로 기울었으며, 에리다누스 방향으론 상대적으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림 04 현재
2016 년 1.1 Sumer 지역 (N 31° E 49°).
Achernar 가 최고 고도일 때>
<그림 05 BC 3000 년 1.1. Sumer 지역 (N 31° E 49°).
Achernar 가 최고 고도일 때>
⑤ 이런 내용으로 추정해보면, Sumer 에선 에리다누스의 북쪽 별들
로 Eridu 별자리 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것이 Egypt 를 거쳐
그리이스로 들어가자,
"Eridu" 라는 명칭과 Enki 의 "강" 이란 것을 재료로 해서, "그리이스 신화" 라는 양념으로
적당히 버무려진 후에
그리이스 버전 별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Ptolemy 의 48 개 별자리 (AD 150 년)
중의 하나 입니다.
2) 저도 아직 궁금한 게, 은하수의
암흑대로 Emu 자리를 만든 이유입니다.
호주를 여러 번 가시고 얼마 전엔 단독탐사까지 하셨으니, 호주에서
은하수를 보면
정말 암흑대로 별자리를 만들고 싶어지는지, 만나서
한 수 배우고 싶었습니다.
조만간 기회를 만들어야지요.
3) 칼럼이 원래 진부한 내용이지만,
이번 시리즈야말로 "혼자만" 관심있는 소재들만 다루는 것 같습니다.
보시는 회원들께선 일부러 재미없는 것들만 골라서 쓰고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여간 계속
많은 관심 주시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