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북극권 원정 -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출발시간은 3월 13일 금요일 아침 8시 반 비행기.
목요일 야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체중계를 옆에 놓고
갈 때는 23kg, 올 때는 20kg이 되도록 짐을 쌌다 풀었다 무한 반복 하다가 결국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캐리어 옆의 허름한 백팩은 대학생때 유럽 배낭여행부터 내 모든 해외 원정에 동반한 아이다)
새벽 4시 40분 리무진버스 첫차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
드디어 간다
밤을 샜더니 몽롱해서 별로 긴장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잠도 오지 않는다
공항에서 제 시간에 문제 없이 무사히 짐 부칠 생각 뿐..
============================== 1일차 ==============================
리무진버스가 영종대교를 지날 때쯤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인기척에 일어나니
이미 공항이다.
새벽 5시 50분 공항 도착.
이미 와 계신 한솔 형님과 가지고 갈 망경도 체크해보고
욕심쟁이 동훈 형님.. 약속된 무게에서 무려 9kg을 초과하여 들고 오셨다
가져가야 할 장비는 많고.. 무게는 제한되어 있고..
무게 확보를 위해 극지용 설상화와 패딩을 아예 입고 오셨다는.
초과되는 무게를 여기저기 짐 속에다 십시일반 나눠 넣고
티켓팅 카운터에서 몇 번씩 짐 무게를 맞춰본 끝에 무사히 수속 완료.
아직은 쌩쌩한 얼굴들
저 노란색 극지용 패딩을 들고 비행기 10번을.. ;;;
인천공항의 아시아나 라운지.
시간도 없고 음식도 별로 없어서
모닝 와인만 원샷 하고 나왔다 (아니 두 잔이니 투샷..)
짐꾼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비즈니스석 승객 한 분.
우리(이코노미)보다 부치는 짐은 3배, 들고 타는 짐은 2배.. 천상 짐꾼이다
기내식으로 나온 고추장은 우선 묻지마 키핑.
맥주와 함께 아침식사
천문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재미없게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졸다가
눈을 떠 보니 이미 북경 상공이다
반듯 반듯. 내가 생각했던 북경의 이미지랑 많이 다르다 (북경은 첫 방문이다)
오전 9시 45분, 한시간여 만에 북경공항 도착.
사회주의 국가라 서비스가 부족한 것인가..
북경 공항은 거대하긴 한데 뭔가 짜임새가 부족해서 한참을 헤메고 돌아다녔다
하염없이 Transit 터미널을 찾아가는 도중에 서쪽 창가에 월령 21일짜리 낮달이 보인다
사실 내 침침한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았는데
40대 두 형님이 저기 보라는 위치를 더듬거리며 보니
정말로 위치를 알아도 찾기 어려운 달이 하나 떠 있다..
스톡홀름 가는 비행기를 4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여
북경 시내 들어가기에도 애매하고.. PP카드로 입장할 수 있는 라운지에 들어갔다
중국음식에 초밥에 만리장성 와인까지.. 생애 마지막 식사인 양 걸신들린 듯이 먹고 또 먹고
먹다 남는 시간에 아까 본 낮달을 생각하며
노트4에 터치펜으로 그림 한 장. 달은.. 딱 보이는 만큼만 그렸다 (그림 중앙 좌측)
[ 스모그는 어디? 갤럭시노트4에 터치펜, 조강욱 (2015) ]
※ 제목의 의미 : 회사의 북경 주재원 형님들께 항상 전설로만 듣던 뿌연 스모그는
그 날 공항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스모그 구경하러 또 와야 하나?
라운지 한 쪽은 통창으로 비행기 이착륙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행기 뜨는 것을 보는 걸 참 좋아한다
라운지 난간에 매달려서 원 없이 비행기 꼬랑지를 바라본다
오 왕건이다!
다음번엔 꼭 김포공항 옆으로 이사 가야지...
(한솔형님 말로는 신월동 아이들은 비행기 그릴 때 바퀴까지 그린다는 ;;;)
내가 침흘리며 비행기 구경하는 사이 라운지 테이블에서는 알 수 없는 거래가..
[ 기필코 성공하게 ]
[ 흠 이 정도면 문제 없지 ]
[ 신에게는 아직 120mm의 망원경이 있사옵니다 ]
80년대 스타일의 버스를 타고 뱅기 앞으로 이동.
난 걸어서 비행기 타는 것을 선호한다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파일럿이 되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빨간외투 할머니 생각 : 눈 좀 떠라)
비행기 앞쪽 짐꾼 (짐 많이 태운 사람들) 칸을 지나서
바로 커튼 뒤에는 사람이 짐이고 짐이 사람인 물아일체의 경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활주로에서 이륙 대기하면서도 깨알같이 뱅기 감상
우리의 사진사.. 동훈 형님의 1번 포즈
비행기는 금세 상공에 올라
뜬금없이 북경 근처 호수도 한 번 삥 둘러 구경시켜 준다
에어차이나 좌석 모니터의 지도는 쓸데없을 정도로 디테일하다.
확대하면 창밖의 풍경이랑 똑같음
[ 40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취침장면 몰카 ]
밥이 보약.. 아니 책이 수면제...
아래 지도의 동그란 원은 북극권을 나타낸다.
스톡홀름은 북극권 바로 아래에..
자다 일어나서 입맛도 없는데 이번 밥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키핑해 두었던 아시아나 고추장 조기 방출!
10시간여 비행 끝에 스웨덴 상공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에서 본 대로 물 웅덩이? 호수?가 셀 수 없이 많다
북유럽아 안녕.
이 와중에 또 깨알같이 뱅기 감상
SAS 간판을 보니 북유럽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비즈니스석은 인천공항부터 목적지인 키루나까지 수화물이 연결되는데,
이코노미석은 스톡홀름에서 찾아서 다시 키루나까지 부쳐야 한다
한솔형님 말씀대로 비즈니스가 더 편한 것이 아니라
이코노미를 일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완전 튄다고 생각했던 보라색 특대형 캐리어가 여기엔 너무나 많다
딴 사람 짐 들고 갈 뻔..
내 폰만 데이터 로밍을 해 가서, 짐을 기다리며 같이 인터넷 쓰려고 핫스팟을 켜니
순식간에 6명이 내 핫스팟에 붙는다
어딜 붙어! 매정하게 비밀번호를 걸어 버렸다
대기 시간이 4시간이라 멀리 갈 수는 없고.. 공항 앞에서 증명 사진만 한 장.
버스가 웁살라 행이다. 우리가 아는 UGC의 그 웁살라는 아니겠지?
Web 상에서만 익숙한 Arlandar 공항, 공항 코드가 더 친근한 ARN.
그 ARN에 진짜 왔다.
북유럽 공항의 우월한 인테리어 (세뇌가 되어서 그런지 왠지 그냥 멋있어 보인다)
관제탑도 왠지 있어 보임
북경도 스톡홀름도 날씨는 맑기만 하다
대기 시간이 길어서 라운지 찾아 한참을 걸어갔는데
이름도 아름다운 오로라 라운지는.... 국제선 승객 전용이다...
[ 오로라 관측소 전경 ]
국내선 탑승구로 돌아와서 하염없이 뱅기를 기다리다가
딸래미 선물을 가장한 내 선물도 하나 같이 사고..
(잘 어울리지 않지만 세계 각국의 헬로키티를 모으는 것도 내 소소한 취미 중의 하나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작은 밤비행기를 타고 스웨덴 최북단 키루나로!
이 비행기는 오로라 오벌을 통과하므로 상공에서 오로라 관측을 할 수 있다
지상에 구름이 있던 없던간에 말이지..
비즈니스에 탄 짐꾼은 여유 있게 창가 자리를 획득했지만
이코노미에 탄 여행객 (또는 평민) 두 명은 창가 획득에 실패..
대신 사람 탈 확률이 제일 적은 꼬리칸(?)을 선택하고 급한 기도를 해 본다
동훈형님은 착한 일을 많이 하셨는지 결국 창가를 차지했고
내 옆 자리는 비행기 출발 직전 금발의 아줌마가 헉헉대며 마지막으로 탑승..
오로라 보러 왔는지 비행 내내 조그만 창문에 코를 박고 있는다
에잉... 포기!
밤 11시, 오로라 포인트로 찍은 키루나(Kiruna, Sweden)에 도착했다
내 생애 처음 밟아본 북극권, 여긴 아직 한겨울이다
내리자마자 한솔님이 비행기 상공에서 대박 오로라를 관측했다는 염장 보고를..
앞으로도 밤이 7일이나 있는데 뭐..
마중 나온 차량들로 작은 공항이 분주하다
우리를 픽업 나온 캠프 리판 (숙소) 차량
구글맵 상으로는 4km밖에 안 되는데 눈길로는 왠지 한참 가는 느낌
봉고차 창밖으로도 녹색의 희미한 오로라가 허무하리만치 쉽게 보인다
이렇게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거였나?
밤을 새서 짐을 싸고 새벽에 집을 출발하여 비행기 세 번을 갈아타고
다음날 자정에 체크인을 했다
방은 뭐.. 잠 자고 관측을 준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들은 대로 숙소 반대편 어두운 숲 속으로 길을 옮겼다
인가를 지나자 바로 어둠이 몰려왔다
인적 없는 눈 덮인 하얀 설원,
관측용 렌턴으로 불을 비추며 누군가의 발자국과 스키자국을 따라
정처없이 길을 걷는다
그렇게 20분여를 걷다가
‘힘들어서 이제 더 못 가겠다. 이 정도면 광해도 별로 없고..’ 할 만한 곳을 발견해서
그냥 거기서 밤을 보냈는데
다음날 낮에 다시 찾아보니 거기가 우리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중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우리는 떠나는 날까지 매일 밤 거기서 관측을 했다
새벽 1시 반쯤, 긴 여정 끝에 드디어 관측지에서 밤하늘 아래 마주 앉았다
아! 드디어 왔구나.
근데.. 오로라는?
아까 공항에서는 차 안에서도 넘실대는 녹색이 보였는데
지금은... 무언가 하늘에 구름 같은 얼룩이 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은하수도 아니고..
분명 오로라가 맞는데 색은 보이지 않는다. 펄럭이지도 않는다
눈으로는 뿌연 광해같이 회색빛의 희미한 오로라가 덮여 있었지만
그래도 사진으로는 녹색이 보인다
[김동훈, 3/14 새벽 2시경 (첫날) 오로라]
본의 아니게 벌써 이틀째 밤을 새는 중이라
졸립고 배도 고파서 잠시 쉬러 20분 걸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전투 식량으로 늦은 저녁밥을 먹고
나름 된장국도 있다 (소금물이나 별반 다르지 않지만)
새벽 3시, 밥 먹고 잠시 쉬다가 해 뜨기 전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기 위해
숙소에서 의자까지 들고 다시 그 장소에 갔는데..
오로라는 더 조용해지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정신없이 졸다가 떨어지길 수차례.
생각해보니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서 일 하고 집에 와서 밤새 짐 싸고
금요일 아침에 비행기 타서 하루 종일 이동하고 밤을 다시 새고 있으니
이게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마침 이제 동쪽 하늘도 밝아오기 시작하고..
새벽 4시쯤 짐을 싸서 완전히 철수.
길고 긴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눕자 마자 엄청나게 코를 골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다행히도 나는 듣지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 어떻게든 그 대박 오로라를 봤어야 하는 건데..
뭐 어쨌든 나에게는 아직 6일 밤이 남아 있다
Nightwid 無雲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 예고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