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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북극권 원정 -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015. 3. 28 (土)   조강욱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

 

 

2012년 11월 13일.

 

우리는 호주 동부해안의 북단, 케언즈에 있었다

 

브리즈번 인근의 깡촌에서 며칠간,

 

환상적인 하늘 아래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호주까지 공수해 간 대구경 돕들을 밤새도록 돌리며 완벽한 관측을 하고서

 

best.jpg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호주 국내선을 타고 1700km를 날아서 온 케언즈에는

 

cairns.JPG

 

종일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6시반에 고도 13도 짜리 개기일식을 봐야 하는데..

 

볼 수 있을까?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eclipse chaser들은

 

동쪽 해변에 낮은 산이 위치한 케언즈를 이미 모두 빠져나갔다

 

지형적인 이유, 그리고 기상 확률상 더 가능성 높은 곳으로..

 

특히 케언즈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의 Carbine 산 능선에

 

한국 팀들을 포함한 다국적군 150명이 모여 있었다

 

map.jpg


 

우리는 개기일식 직후 세계자연유산인 케언즈 앞바다 산호섬에서의

 

스노클링 투어를 이미 예약해 놓았었다

 

현지에서 확인해보니,

 

그 산호섬으로 출발하는 배 시간이 촉박하여

 

케언즈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식을 관측하면

 

스노클링 투어 배를 타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내리는 부슬비.

 

아.. 어떡하지..

 


 

케언즈에 밝은 낮에 도착해서 렌트카를 빌려놓고도

 

밤이 되도록 우리는 케언즈를 떠날지 말지 5시간을 토론하고 있었다

 

jetty.jpg

 

동쪽의 산이 고도가 몇도인지도 낮에 확인하지 못했다

 

다섯명, 의견은 2대 2. (한 명은 기권)

 

완벽한 원정에 어울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

 

갑자기 비가 더 내린다

 

night.jpg


 

이렇게 비가 오는데 10시간 뒤 새벽 6시반에

 

수평선의 짙은 안개와 구름을 뚫고 일식을 볼 수가 있을까?

 

확률상으로 성공률 40%를 생각하고 온 일식인데

 

cloud_cover.jpg

 

이젠 그 확률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100km 더 가봤자 하늘은 똑같을거고

 

이 비가 오는데 산에 오른다 해도 뾰족한 수는 없겠지

 

개기일식이 확률이 거의 없다면 하나만이라도 건지자

 


 

내가 케언즈 잔류에 한 표를 더 얹었고,

 

우리는 5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beer.jpg

 


 

드디어 그 날, 개기일식의 아침이 밝았다.

 

아니, 아침이 밝기 훨씬 전에 서둘러 숙소를 떠나 해변으로 갔다

 

setting.jpg

 

몇 시간 전까지 비가 내리던 하늘은 놀랍도록 맑아졌고

 

일식이 일어날 동쪽 하늘에만 야속하게 두꺼운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east.jpg

 

30분전, 15분전, 시간은 계속 다가오고

 

일식 10분전쯤 구름 사이에서 잠시 얼굴을 내민 태양은..

 

partial.jpg

 

잠시 후 다시 구름 사이로 몸을 숨겼다

 

partial2.jpg

 


 

그리고 약속된 시간.

 

하늘빛은 갑자기 한 시간 전 어슴프레한 색으로 회귀하고

 

start.jpg

 

내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조금만..! 구름아 제발 더 빨리!

 

내가 가진 모든 마음과 소망을 담아 구름에게 보내본다

 


 

하늘이 감복했는지 1분쯤 뒤 (정확히 2분짜리 개기일식이었다)

 

구름 사이로 허리춤까지 태양이 모습을 보인다

 

eclipse.gif

 

조금더! 더! 두번째 다이아는 볼 수 있겠는데..

 


 

우리의 바람을 다 듣지 못했는지

 

구름은 다시

 

반쯤 보이던 태양까지 모두 삼켜 버렸다

 

end1.jpg

 

그리고 잠시 후, 구름 뒤에서 무언가 번쩍 하더니

 

짧은 일식은 종료되었다

 

end2.jpg

 


 

아~~ 아쉽다

 

그래도 극적으로 1/2개 봤네.

 

혹시나, 혹시나 하여 한국에서 원정 온 팀 중 세 팀에 연락을 해 보았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한국 원정팀은 물론 모두 케언즈를 떠나 있었다)

 

'잘 보셨나요?'

 

잠시후 수신되는 짧은 메시지들.

 

lim.jpg

 

hye.jpg

 

wook.jpg

 

극적으로. 극적으로. 극적으로.

 

심지어 바다에서도.

 


 

하아...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여기?

 

나는 그 길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어떤 위로도 농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케언즈 해변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식사도

 

한시간 배를 타고 간 산호섬의 고운 백사장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 모래사장 위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이젠 파랗게 맑아진 하늘만 쳐다본다

 


 

개기일식 관측을 준비하면서, 그 어느 누구도

 

케언즈 시내에 남아서 준비해도 괜찮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무엇에 홀려서 거기에 있었을까?

 

그래. 이건 운일 뿐이었다

 

우리가 조금 더 운이 좋았다면

 

시내에 있었던 우리만 기적적인 일식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이건 운의 문제가 아니야.

 

별을 보러 가서

 

별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거지.

 


 

케언즈 북서쪽의 Carbine 산에 올라서 밤새 호텔 대신 노숙을 하고

 

새벽녘에 극적인 일식을 맞이하는 이 사람들의 attitude와

 

[ 박대영 作, Carbine 산의 개기일식 풍경 (2012) ]

daeyoung.jpg

 

팔짱끼고 구경거리를 기다리는 케언즈 해변의 관광객들 사이에는

 

travel.jpg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건 천벌이 틀림없어.

 


 

다시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관측지로 돌아가서,

 

나는 남은 기간 더욱 미친듯이 간절하게 관측에 집중했다

 

별 보는 사람은 오직 별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런다고 어이없이 놓친 일식의 아쉬움을 씻을 수 있을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나보다 더 일식을 아쉬워하던 김동훈님께 한마디의 정보를 얻었다

 

'2015년에 개기일식이 있을 북극에 아시아나 마일리지로 공짜로 갈 수 있다'

 

arctic2.jpg


 

북극. 북극의 개기일식이라..

 

그냥 귀국 비행기 통로에서 지나가는 얘기로 들은 한마디였지만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난다

 

 

그리고 한참 뒤, 별하늘지기에서 대영형님이 올린 아까 그 사진을 처음 보고

 

daeyoung.jpg

 

온전히 일식에 집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20년을 쉬지 않고 별을 보면서

 

이런 비참한 기분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는 내 남은 긴 인생에서 나만의 큰 원칙 두 가지를 세우게 되었다

 

'별을 보는 일 만큼은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를 지켜가겠다

 그것이 어떤 고통과 외로움을 가져올지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능력이 닿는 한 세상의 개기일식을 모두 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

 


 

나는 호주에서 귀국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든 신용카드를 정리하고

 

아무 혜택도 없이 오로지 쿨하게 마일리지만 쌓는 카드를 만들고 (외환 크로스마일 카드)

 

2017년 미국 개기일식에 가족 동반으로 원정을 가기 위해 작은 적금을 들었다


 

 

정확히 1년 뒤, 2013년 11월의 아프리카 개기일식은

 

2013.jpg

 

우리나라 직항이 있는 케냐로 가보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기상 조건, 길 상태, 치안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포기.

 

결과적으로는 안 가길 잘했다.

 

우간다로 간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곤 아프리카 전역이 모두 꽝!

 

(우리나라 원정대도 없었다)

 


 

그 다음은 2015년 3월의 북극 스발바르(Svalbard).

 

winter.jpg

 

마일리지는 열심히 쌓고 있지만..

 

내가 진짜로 거기에 갈 수 있을까?

 


 

....

 

나는 최근까지, 매일 아침 이른 출근길에

 

새벽 6시반만 되면

 

어김없이 케언즈에서의 기억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나의 선택, 나의 목소리, 그리고 구름속의 일식.

 

사람이 눈을 뜨고서도 악몽을 꿀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매일 매일 같은 시각에...

 

 

'개기일식을 보고 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여러 선배들의 얘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2009년 여름에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 항저우에 갔었다.

 

거기서 어렵게 기적적으로 만난 개기일식의 결정적 순간이

 

결국 내 인생과 신념과 가치관마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내가 매일 같은 시각에 케언즈 생각을 수백번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서

 

어느새 마일리지 항공권 발권 시점인 D-330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Nightwid 無雲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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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치복 지부장 2015.03.29 09:53
    호주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의 생성한 관측기 고맙습니다.
  • 조강욱 관측부장 2015.03.30 23:07
    네 이젠 잊을만 한데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
  • 이강민 홍보부장 2015.03.30 13:01
    작년 수업 때 들었던 그 안타까운 심정이 다시금 절절히 느껴지네요. 저도 개기일식 꼭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솟구치네요.
  • 조강욱 관측부장 2015.03.30 23:07
    수업 들으셨으면 내후년에 미국 한번.. ㅎㅎ
  • 유태엽 감사 2015.04.07 13:56
    역시 발단은 호주 허무원정이었군요.

    그러나 어찌보면 잘 된 일 같습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결정적 순간들을 모두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만일 호주에서 만족하실 만큼 성공하셨다면,
    제가 북극권 경치 구경 못할 뻔했습니다.

    많은 재미있는 얘기와 신기한 풍경들 기대합니다.
  • 조강욱 관측부장 2015.04.12 22:34
    모든 일에는 기회와 위협이 함께 하는 것인지.. ^^;;;
    케언즈 트라우마는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죠..
  • 이세종 홍보부장 2016.03.31 13:37
    또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모든것의 발단..
    제목이 멋집니다..
    나도 이 글에서 영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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