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종종 드는 생각인데,
나는 내 자신을 너무 몰아치는게 아닌가 싶다
행운은 믿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일을 잔뜩 벌려놓고서는 수습이 안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부분 노는 계획이라 문제)
정해놓은 계획이나 강박적인 일들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결되기 전엔 계속 안절부절.
대부분은 잠과 가족을 희생하여 계획 세웠던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한다
근데 요즘은 벌려놓은 일들이 너무 많이 쌓여서,
진짜로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16년된 강박증 '관측후기 남기기'는 보통 새벽에 퇴근하고 쓰거나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서서 쓰거나 화장실에서 쓰는데,
그 코딱지만한 시간도 못내서 관측 다녀온지 열흘이 되도록 한 줄도 못 쓰고 있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 한다고 별보는 짓을 못한단 말인가 ㅎㅎ
어떻게 시간을 낼까 고민하다가, 걸어 다니는 동안에,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잠들때까지 스마트폰의 워드기능으로 관측기를 쓰고 있다
멍하고 보내고 있던 시간 찾아서 쓰면 되는 것을..
13일은 간만에 맑은 하늘을 접견한 날이었다
회원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예별이와 마님을 태우고 일찍 출발..하려고 했으나 실패 ㅎㅎ
오후 늦게서야 서울을 탈출하여 천문인마을로..
내 요즘 상태가 영 안되어 보였는지 마님께서 친히 왕복 340km 운전을..
원장님 만세ㅋㅋ
천문인마을 가는 길이 포장도로로 대 변신을 했다
길 좋아지면 개발 들어올텐데.. 이 동네도 별보기는 이제 시한부 인생인가..
수주면으로 통하는 멋진 터널까지 완공되는 바람에 천문인마을 다닌지 10년만에 처음으로 길도 헤메보았다 -_-;
도착하니 날은 거의 어둑어둑해질 무렵.
이혜경 선생님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날씨가 영 별로다.. 무언가 엷게 덮고 있는것 같은 봄철 특유의 찌뿌둥한 날씨.
간만에 와 놓고는 그래도 얼굴 보여주신 별님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고 계속 게으름을 피운다
예별이랑 놀아주고 예진이랑 노는거 구경하고 속속 도착하시는 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02년 3월 이후 처음으로 별이 보이는 하늘아래 술도 몇잔 마셨다
별볼때 술 안마시는 것도 내 오래된 규칙인데..
자정 이후 하늘이 맑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전망만 생각하며 천문인마을 지하 까페테리아에서 몇시간을 보냈다
00년 2월에 천문인마을에 처음 발을 들인 이후로 (97년 4월 천문인마을 생기기 전에 덕초현에 갔던 것은 제외)
10년간 최소한 60번은 왔을텐데, 항상 소주잔을 들고 계시던 화백님과 한번도 술잔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날씨 안좋은 날 천문인마을에 갈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날은 왠지 -정말 그냥- 별보다도 별보는 사람을 마주하고 싶었다.
10시쯤 도착한 최샘께 '그래 이젠 별도 안보고 술을 마신다 이거지'
한소리를 듣고서도 계속 술자리를 지켰다 ㅎㅎ
어디선가 봤던 사진의 급수라는 글이 문득 생각났다
'9단 : 이제 출사를 나가도 장비는 펴지도 않고 오랜 친구들과 술잔만 기울인다'
아직 급수는 한참 멀었는데 벌써부터 고수 흉내만 내는 것인가 -_-;
어디선가 '시상이 괜찮다'는 얘기가 들리길래 마시던 술잔도 채 안비우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날씨는 여전히 찌뿌둥인데 시상은 썩 괜찮다
이렇게 잘 보이는걸 불평만 하고 술만 마시고 있었다니 난 천벌을 받을꺼야
아니야 몇시간 기다리니깐 온도가 내려가면서 대기가 안정된 것일꺼야
합리화를 위한 별별 생각을 하다가, 무슨 대상을 그릴까 여기저기 두리번대다가..
역시 만만한게 측면은하.
아니지 얘는 불규칙이지 ㅋ 82번을 그려 보기로 한다
M82는 Nightwid 도전 목록에도 이름을 올리신 거룩하신 분이다
물론 찾는거야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문제는 그 중심부의 사시미질 당한 모습.
저게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구조일까?
택도 없다에 한 표 던지고 싶지만, M87의 jet를 관측했다는 Barbara wilson 아줌마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어본다.
[M87's jet, HST]
하지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ㅎㅎ
'우주의 거대 새우깡이 밟혀서 으깨졌다' 는 M82 생성에 대한 학설이 요즘은 정설로 굳어진 것 같은 분위기다.
누가 밟았는지는 ㅋㅋ;;;;
한시간 정도 검정색 스케치북에 흰색 파스텔과 콩테로 그림을 그리다 발이 시려서 잠깐 쉰다고 내려가니,
주방에서 횡성한우의 향기가 진동진다
자동으로 합류하여 관측중 또 음주;;;;
횡성한우 때문이에요 제 의지가 아니라고요~~
천벌을 내리는 분께 나름 논리를 만들어본다
이화영님이 사오신 고기를 화백님 왕언니 유혁님 이화영님과 둘러앉아 시식~~! ㅎㅎ
호주 원정관측 얘기, 별보는 얘기, 별보는 사람 얘기.. 끝에
그동안 그린 스케치를 들고 감히 화백님께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그 내용을 공개 게시판에 쓰기는 쫌 그렇고 관심있는 분들과 공유하겠습니다.. ^^
1시쯤 다시 올라가니 투명도는 완전 개판인데 이상하게 시상은 그대로다..
본체 구조를 마무리하고 주위 잔별들을 찍으려 하니 이게 왠일 투명도의 공격으로 잔별들이 다 사라지셨다
아싸~! 나는 잔별들이 싫어요.. 나중 나중에 더 큰 구경으로 업글하게 되면 잔별 찍기는 더 힘들어질텐데..
82번 스케치를 마치고 카페테리아로 내려오니, 아까 마셨던 소주 몇 잔이 독이 되어 돌아온다
비실비실 춥고 졸리기 시작한 것.
인과응보? 사필귀정?
잠깐만 쉬었다 보자고 카페테리아 탁자에 팔베게를 하고 졸다가 일어나 보니 벌써 새벽 4시.
자고 일어났는데 더 피곤하다
요즘 주중이던 주말이던 4~5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구나
다시 옥상에 올라가니 김지현님만 아직 관측중..
몸이 피곤하여 그냥 관측종료! ㅠ_ㅠ
관측가서 최소한 스케치 두 장은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못 지켰다
이날은 이화영님과 소구경 저배율 관측의 묘미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었다
항상 대구경과 도전 대상만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그쪽'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화영님의 80mm 굴절로 20배로 관측한 46 47은 또 다른 느낌의 이중 성단이다
훨씬 더 밀집되고 충실한 진짜 이중성단.. ㅎㅎ
한 시야에 보는 Kemble의 폭포와 NGC 1502의 은은한 아름다움.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오랜 진리를 다시 한번 몸으로 깨우치고..
내 망원경으로 35와 2158을 보고 있으니 이화영님이 그 옆에 IC도 있던데 한번 찾아보자고 하신다
우라노메추리알을 보니 진짜로 있다
번호도 NGC 2158이랑 비슷한 IC2156/2157
IC 산개가 뭐 특별할게 있을까 싶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보니..
아 은은하니 이쁘네.. 아니 근데 이거슨!!!! 완전 비키니 아냐?
싟형님이 몇년 전에 비키니를 언급했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얘는 보자마자 그거구나! 하는 필이 딱 온다. 이화영님 경싟형님 감사합니다 ㅋ
[IC2156/2157 주변부, 김경싟 편집]
82번 중심부의 가장 선명한 암흑대는 서쪽 방향을 향하여 화살표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도 은하면 곳곳에 형체를 표현하기 어려운 암흑대가 얼룩처럼 박혀있다
Nucleus와 같은 구조는 찾기 어렵고,
대신 중앙부 dark lane에서 북동 방향으로 가장 밝은 부분이 위치한다
[M82 sketch]
[M82 description]
또 하나 특기할만한 구조는 서쪽 edge에서 북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성운기이다
약간 빗살무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마치 멜로페 성운을 보는듯하다
(정작 멜로페의 그 특유의 빗자루로 쓸어 놓은것 같은 구조는 아직 관측하지 못했다 -_-;)
사진에서도 그런 구조는 찾기가 어렵고.. 잘못 봤을수도 있겠지만 한 시간 넘게 보다보니 그렇게 보이는데 어쩔 것인가.. ㅎㅎ
NadA 사진을 봐도, 구글에서 해외 사진을 검색해봐도
은하가 약간 S자 모양으로 휘어 있긴 하지만 명확하게 성운기라고 불릴만한 구조는 찾기 어렵다
[M82, 구글 검색, 조강욱 편집]
이번 관측은 그간의 패턴과는 다르게, 적게 보고 많이 노는 것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좀 마음이 불편한 부분도 있는데 (천벌 받을까봐)
별보는 것이 진정 마음 가는대로 하는 것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관측에 대한 기조가 바뀌는 것이 이상한 것만은 아닌것 같다
별도 봐야하고 별보는 사람도 봐야 하고 할일이 또 점점 늘어간다.. ㅎㅎ
Nightwid 我心如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