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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좋은 징조

김민성


  중국의 기름때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제법 뜨거운 물에 강력한 수압으로 샤워를 하고 한국산 치약으로 두 번이나 이를 닦았는데도 몸의 구석구석, 이빨 사이 틈틈이 중국산 기름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다. 중국에서 입었던 옷을 빨래하기도 두려워 아직 배낭을 열어보지도 않는다. 이런 일상적인 생각들을 한국 침대에 뒹굴면서 하면서 다시금 통샹(Tongxiang)과 사람들, 그리고 그 비현실적이었던 전율의 순간을 되새겨 본다.

  7월 20일 상해포동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 팀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금세기 최장, 아시아 최고의 개기일식을 반드시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충만했다. 기상청은 개기일식이 있는 7월 22일 날씨가 흐릴 것이라고 예보하고 있었지만 팀원 중에는 기상청의 예보가 중요한 사안에는 늘 반대라는 세간의 말을 근거로 아예 기상청에 감사해 하기도 하였다. 상해에 있는 여산천문대(余山天文臺)에 도착하여 정문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는 우리 60여명의 한국아마추어 천문학회 회원들은 100년이 넘는다는 여산천문대의 세월의 크기보다 더 크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7월 21일부터는 하늘에 구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급속한 상승기류가 있는지 적운형 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는 것이 여기저기 보였다. 관측지가 있는 통샹(Tongxiang)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예쁜 적운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긴 했지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다. ‘제발 내일만은 비가 오지 않기를...’

  소주(蘇州)에서 1시간 30분여 끝에 통샹(Tongxiang)의 화중생태공원에 도착했다. 생태공원은 매우 넓었으며, 이미 일본인 관광객 600명을 위시하여, 독일, 네덜란드,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서 관측을 위해 공원 여기저기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팀도 할당받은 구역에서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주변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점점 어두워지던 구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아쉬움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어 놓았던 장비들을 천막 안으로 들여놓았고, 더 많은 비에 대비하여 사람보다 장비를 우선으로 보호했다. 천막은 60명이 모두 머무르기엔 좁았고, 상황은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우리의 믿음은 당연히 비는 조만간 그칠 것이고, 우리의 개기일식은 여전히 멋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팀원들은 내리는 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연신 내리치는 번개를 찍느라 신나하고 있었다. 현지인도 이렇게 많은 번개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심한 번개가 몇 초 간격으로 마치 불꽃놀이처럼 주변 하늘을 수놓았다. 누군가 우리가 하루 전날 번개를 관측하고 다음날 맑은 하늘에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최초의 인류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하자, 웃다가 문득 문득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듯도 했으나 이내 번쩍거리는 번개에 또 셔터를 누르곤 했다.

 

  어느 정도 캠프정리가 끝났고 지속되는 비 때문에 원래 계획되었던 별 관측회를 취소하고, 일부 인원을 제외한 팀원들은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장비를 보호하고, 밤샘작업을 할 팀을 꾸렸다. 밤샘작업팀은 나를 포함해 모두 10명 정도였는데 새벽 4시 교대조가 올 때까지 관측 장비를 지키고 비가 그칠 경우 관측 장비를 어느 정도 설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0명의 남자가 비 내리는 이국의 넓은 벌판에서 밤을 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중국술과 한국 산 진짜이슬 몇 팩, 그리고 이야기들... 사람들의 연령대는 20대 초반부터 30대, 40대, 50대까지 다양했는데, 꺼내는 이야기들이 제법 다양했다. 최근에 경험한 일들부터 과거에 경험한 일들, 종교이야기부터 과학이야기... 누군가 시작하기를 이야기들의 결말을 내일의 일식과 연관 지었다. 예를 들면 2년 전 사진공모전에 상을 탔다는 분의 경험은 내일 우리가 일식을 관찰하게 될 좋은 징조라는 식이다. 시간이 지나고 좋은 경험의 밑천이 떨어지자 결국엔 누가 보아도 불행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모두 내일의 개기일식을 위한 좋은 징조로 탈바꿈했다. 나도 그것에 흥미를 느껴 최근에 생긴 나의 예쁜 여자 친구까지 일식의 전조로 내뱉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경험이 내일의 일식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 사람들도 재미있다는 듯 내리는 비를 보며 술에 섞어 마음을 나누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밤이 깊어질수록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1분 단위의 위성사진은 점점 좋지 않은 징조를 보였다. 중국 남부를 거대한 구름이 감싸고 있었으며, 북부와 남부에서 구름은 계속 공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군대에서 기상예보병을 지냈던 한 분이 어떻게 해서든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려했으나 잘되지 않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냉담한 분위기에 어떤 재치 있는 분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시기 시작했고,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이 그보다는 낫다는 식의 재담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날을 샜지만 하늘은 여전히 개지 않고, 비는 끊임없이 내렸으며, 태양의 한끝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 그러나 현재 우리는 최소한 번개를 관측하고 멋진 사진을 찍었으니 괜찮다는 식이다. 그리고 누군가 덧붙이기를 내일 비가 내려서 장비를 철수했지만 우리가 버스에 타자마자 하늘이 기적처럼 열려 개기일식이 보이고 우리만 관측을 못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우리는 아무리 비가 내려도 관측 장비를 걷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얘기. 이런저런 재밌는 상황을 만들면서 또 웃으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때로 간간히 비가 그칠 때도 있어서 텐트 밖에서 하늘을 보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 “별이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그 별이 도대체 어디에 보이는지 연신 물어댔지만, 또다시 구름으로 가려 보이지 않은 것이라는 말에 아쉬워하고 또 하염없이 구름으로 산란된 오묘한 빛을 내는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위성사진은 여전히 부정적이었고, 같은 장소에서 관찰하기로 한 독일팀은 다른 지역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잠깐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교대조가 도착했다. 마치 구원병을 만난 듯 했다. 새벽 5시쯤 되었고 위성사진은 조금 상태가 좋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밤샘팀은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의 숙소에 돌아와 몸을 씻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7시에 숙소에서 머무른 사람들과 함께 다시 관측지인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생태공원 입구에 돌아오자 잠시 그쳤었던 비가 다시 소낙비가 되어 돌아왔다. 반복되는 강한 소낙비로 지도부에서는 장비철수를 결심하고 남자들 대여섯 명이서 먼저 생태공원 베이스캠프로 들어갔다. 캠프에 도착하자 원래 있었던 교대조가 철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철수에 대해 생각하면, 비가 그치고, 장비 설치에 대해 생각하면 비가 오는 식이었다.

  결국 지도부는 다시 공원 입구에 머무른 남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였고, 어떻게 되든 장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간간히 내리고 그치는 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피해 장비를 설치했다. 시간은 어느새 일식 시작하는 제1접촉 시간을 지나버렸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있어서 우리는 제1접촉의 시작조차 알 수 없었다.

  어떤 이는 일식은 이미 포기하고 사람들의 동정을 찍기도 하였고 어떤 이는 마음을 비운 듯 장비는 놓아두고, 가만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삼각대를 설치하고는 있었지만, 긴장감보다는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태어나서 개기일식은 쉽게 볼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하며, 조금 더 덕과 실력과 쌓아서 다음에는 꼭 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여자 친구에 전화를 걸었다. 여자 친구는 생전 처음 보는 부분일식에 격양되어있었고, 벌써 70%이상 가려졌다고 말했다. 나의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들은 주변의 사람들은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한국에 있을 걸...”이라는 아쉬움과 체념이 뒤섞인 말을 농담처럼 뱉기도 했다. 다시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개기일식 순간의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 때 누군가의 함성이 들렸다. “하늘이 열렸다.” 개기일식이 일어나기 10분 쯤 전이었다. 거의 모든 하늘을 덮고 있었던 구름이 태양 있는 부분만 빼꼼이 푸른 부분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마치 태양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내민 양 태양근처에만 하늘이 열렸고, 때로 구름이 필터역할을 하여 맨 눈으로도 먹혀 들어간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급하게 장비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구름이 짙어서 태양을 보여 주기도 하고 보여주지 않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탄식과 함성을 번갈아 만들어냈다. 시간은 점점 예견된 개기일식을 향해서 흐르고 있었다. 마치 꿈만 같았다. 밤새 걱정했던 최악의 상황 중의 하나처럼 개기일식 순간에 구름에 가려서 태양을 볼 수 없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가슴이 조여오기도 하고, 손이 떨리기도 하였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여도 마음은 엄청난 포락선을 그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그 포락선 어디 위치하고 있는지 모르는 어느 순간, 나의 눈부터 시작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검은 태양이 들어났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개기일식 때 느껴지는 추위로 인한 떨림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온도가 순간적으로 내려 간 듯 피부표면에 오싹함이 느껴졌다. 검은 태양이 들어나자 세상은 밤처럼 어두워졌고, 사람들의 탄성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사진 기술이 부족한 나는 사진 찍는 것은 포기하고 비디오 모드로 태양을 찍다가 다시 주변을 찍었는데, 사람들의 카메라와 핸드폰의 LED 불빛만 보였다. 개기일식이 진행되는 중에도 구름에 의해서 가려지고 드러나기도 하였다. 때로 아주 큰 코로나가 보이기도 하였고 검은 태양조차 구름에 가려졌을 때는 사람들은 별이 보인다고 소리치기도 하였다. 나는 꿈같은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싶었고 한국의 여자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 통화 내용은 꿈처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중에 여자 친구가 하는 말이 내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들렸다고 했다. 아마 나는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 같다. 오전 9시35분에 밤이되는 세상.. 그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속에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금세기 최장이라는 5분 30초 남짓 되는 개기일식은 어느새 끝나 버리고 다시 다이아몬드 링이 드러났다. 그리고 조금씩 태양은 달을 벗어나 제 빛을 찾아갔다. 나도 조금씩 현실 속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인식의 범위가 나의 주변으로 조금 넓혀졌고, 어깨를 살짝 올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진행되는 부분일식을 찍을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상기된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고, 금성을 보았다는 사람, 시리우스를 보았다는 사람, 울뻔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놀랍게도 장대한 쇼를 마무리하듯 구름이 다시 많아지기 시작했으며 커튼처럼 하늘을 닫고 있었다.

  이제 중국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흘렀다. 그 날 촬영했던 동영상을 볼 때마다, 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그 때와 비슷한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빨래가 끝나 깔깔하게 마른 중국에서 입었던 옷을 정리하면서 통샹과 사람들, 그 속에서 경험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며 생각을 마무리 해본다. 좋은 분의 소개로 아마추어천문학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망원경도, 카메라도 없이 3급 천문지도사 연수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좋은 분을 만나 카메라도 장만하고 개기일식 원정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중국에 가서는 개기일식 전날 하늘에 번개가 쳤다. 처음 산 카메라로 수없이 많은 번개사진을 찍었다. 좋은 사람들과 비를 맞으며 밤을 지세고, 일식 당일에는 소나기가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개기일식을 보았다. 태양 부분에만 사라진 구름 사이로... 5분 35초 동안...

  확신이 들 수밖에 없다. 그 시간과 사람들, 이 경험이 바로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의 좋은 징조”라고...

  • 김희준 2009.08.07 07:39
    1년전 바로 이번주, 회사 산악회 인원 19명이 하계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일본에서 후지산 다음으로 산이 높다는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북알프스 종주 산행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산행 첫날 중턱서 내리기 시작한 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몇시간후에 일어날 급반전의 상황이 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채 산행을 계속했는데..


    첫날 도착 목표 지점 1km 남짓 거리를 남기고 체력은 떨어지고 예측하지 못했던 기상악화,

    다리 근육은 경련이 나며 떨리기 시작하며 몸은 저체온증 증세가 오기 시작해

    더이상의 산행이 불가한 아주 난감한 상태에 빠졌었읍니다.


    그날 따라 비상용 무전기도 작동하지 않아 먼저 출발한 동료대원과 연락도 두절되고 

    주변에 등산객은 전부 피신해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에서 첫날부터  산밑에서 정상부근 까지 예정된 코스를 진행하는라

    몸은 땀과 비에 젖어버려 산 중턱에서는 시원하기까지 했던 비바람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추위로 엄습해 옵니다. 


    25년의 등반생활과 45년의 생을 여기서 마감하는 가 하는 생각을 가졌던 때가 바로 1년전이었읍니다.

    살아 돌아온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

    그때 구사일생으로 살아 지금 김민성님을 포함한 회원여러분이 올려준 사진과 생생한 관측기를 보고 있읍니다.
    원정대원 60여명의  간절했던 소망에 결국 그 깊었던 구름 바다와 소나기도 하늘의 모세의 기적처럼

    개기일식 순간에는 하늘을 열어 주었네요  !

    사진과 곁들인 생생한 관측기가 거의 비데오 수준입니다.

    모두들 평생 잊지 못할 갚진 경험 하셨고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 김민성 2009.08.09 21:35

    이번에도 함께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다음에는 아드님과 함께 태양이 없어지는 것을 함께 보시지요!!!^^

  • 이혜경 2009.08.10 09:36
    김민성님, 글 너무 감동적이에요. 늘 별말씀 없이 빙긋이 웃고 다니시더니 이렇게 좋은 글을 쓰시려고 그러셨나봐요. 현실에 돌아와 잊었던 그 때의 감흥이 다시 떠오릅니다.
  • 조영우 2009.08.11 22:32

    고맙습니다~!
    마음 속에 오롯하게 그냥 있는 것을 채 다 쓰지 못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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