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몇년간 다음에 하겠다고 미뤄만 두던 101번을 그려야 할 순서가 되었다
정면 은하를, 그것도 대형 Face-on(정면 은하)을 잘 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다음에.. 다음에 하며 계속 미뤄 두었었다.
Messier 33번을 그리면서 나는 은하 관측에서 사진의 사용법을 새로 배웠다
사진의 참조가 큰 의미가 없는 성단과 달리 (사진과 안시로 보는 모습이 너무 달라서)
은하는 사진을 보면서 보일 만한 구조를 끝없이 찾아 나가는 감질맛을 즐길 수 있는 것.
집에서 (잘 못 찍은) 101번 사진 하나를 구글링으로 찾아서 출력해 왔다.
(너무 잘 찍은 사진은 안시로는 현실성이 없기에 적당한 사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101번을 잡는 순간 나오는 한숨.. 이 뿌연 구름에서 어떻게 또 디테일을 찾나..
그저 스케치의 힘을 믿고,
별 하나 별구름 하나씩 눈알과 손가락의 워밍업을 시작한지 십여분 뒤..
비대칭의 팔이 무언가 돌아가는 느낌,
그리고 별인데 별이 아닌 것 같은 patch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뽑아온 사진을 한 손에 들고
그 수많은 구조들을 하나씩 뜯어본다
괜찮아 시간은 많아..
흠...... 101번을 볼 시간은 충분히 많은데
뿌연 하늘이 그 구조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시간여 점을 찍고 성운기를 그리다가 포기.
다음 시간에 이어서.. 역시 별보기는 감질맛이야
(아직 공사중인 101번)
며칠 뒤, 더 좋은 하늘을 찾아 인제로 향했다.
하늘색은 더 어둡고 무수한 잔별들은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101번 또한 며칠 전 수피령 보다는 그래도 무언가 더 잘 보인다
지난번 그리다만 스케치에 1시간을 더 투자해서 더 보이는 구조들을 보완했다
대상을 잡고 스케치를 한참 하다 보면 “더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온다.
실제로 관측을 잘 해서 더 표현할 것이 없을 때도,
또는 관측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힘들어서 여기까지만 하고 싶을 때도 있다.
101번이나 33번 같은 커다란 정면 나선은하들은 후자에 속한다
분명히 무언가 더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 실력과 장비의 한계를 느낄 때 말이다.
[ M101 Pinwheel galaxy, 검은 종이에 파스텔과 젤리펜, 수피령과 인제에서 조강욱 (2016) ]
구글에서 사진을 찾아다 대조해 보니..
몇시간을 그린 101번도 전체 크기의 극히 일부분일 뿐..
그래도 외부 은하 안의 밝은 성운 몇 개, 그리고 주요 나선팔들의 위치와 생김새는 잡을 수 있었다
언젠가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도전할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멀리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