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메시에 마라톤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4월 20일 NASA 오늘의 천체사진에서 발표된 이 사진을 보고서였습니다.
Credit & Copyright: Amir Hossein Abolfath
원글출처 : http://apod.nasa.gov/apod/ap080419.html
하룻밤새 메시에 목록상의 110개 천체를 모두 관측하는 것!
이 사진을 보고 저도 메시에 마라톤에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죠.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이래저래 많이 돌아온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2015년 3월 21일.
저는 드디어 메시에 마라톤에 처음으로 참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에 마라톤에 참여를 했다는 뿌듯한 기억을 되돌아보는 지금,
저는 처음 출전한 메시에 마라톤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1. 준비.
열정 하나로 밤하늘의 경험을 쌓아가는 별지기들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저는 2015년 들어 업무가 바빠졌다는 핑계만을 준비하고 있네요.
제 열정이 그 분들만큼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모자란 필드 경험을 벌충하기 위해 문서준비라도 철저히 하자라는 생각에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첫번째는 메시에 목록을 당일 밤에 볼 순서대로 정리한 문서입니다.
사진 1> 메시에 목록을 마라톤 추적 순서대로 재 편집한 바인더
추적 순서는 천문인마을 사이트의 '메시에 마라톤 완전정복'에 기재된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 천문인 마을 : http://www.astrovil.co.kr/space/main.php )
대상 천체의 대충의 위치와 봐야 할 시간, 대상을 가이드 망원경 내에 도입하기 위한 간단한 팁과
구체적으로 해당 천체의 위치를 별지도 몇 페이지에서 봐야 하는지와 함께 적어두었습니다.
사진 2> 저의 완소 별지도 SKY ATLAS2, PDF 복사본인게 늘상 마음에 걸립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이 별지도입니다.
결국 이 별지도를 보고 대상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별지도에서 봐야할 천체의 위치를 지목하는 포스트 잇을 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후기를 쓰는 지금까지 별지도에 저렇게 포스트 잇이 붙어있다는 것은 저 대상을 당일에 보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한편 메시에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정말 고민해야 했던 것은 경위대를 준비해야 할지 여부였습니다.
첫 출전이고 어차피 경험을 얻는 것이 최대 수확이라고 생각하니 적도의를 가져간들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경위대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구입한 것이 트와일라잇II 경위대입니다.
사진 3> 익스플로러 사이언티픽 사의 트와일라잇 II 경위대.
제품 설명에는 한 쪽에 20Kg씩, 최대 40Kg을 탑재할 수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지금 왼쪽에 올린 빛통의 무게가 약 13.5Kg 정도입니다.
여기에 아이피스가 더 올라가야 되는데, 불안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반대편 무게추 봉은 별도로 철공소에 주문을 넣어 제작한 것입니다.
15Kg을 탑재할만한 경위대는 많지 않았고, 저로서는 필요없는 Go-To 기능을 빼면 사실 이 제품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균형을 잡아줄 무게추봉까지 서둘러 철공소에서 제작을 해 달았는데,
아무래도 과연 이 경위대가 이 무게를 잘 버텨줄까 걱정이 심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안정감이 없어 많이 불안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친구는 당일 밤을 잘 버텨주었습니다.
2. 2015년 메시에 마라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횡성 천문인 마을에서 2000년 부터 메시에 마라톤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천문인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별을 보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저 별이 좋아 이곳에 자리를 잡으셨을 것으로 보이는 대장님과 그 분이 세우셨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과 마당,
그리고 저 위쪽으로 누군가의 고정 관측지처럼 보이는 소박한 천문대가 전부였습니다.
이곳에도 여전히 주변 집들에서 뿜어내는 빛 공해가 있었고,
도로를 따라 옆을 가로질러 가는 자동차 전조등에 관측지는 그대로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별빛이 보호받기란 너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19시 30분 예정대로 메시에 마라톤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제 빛통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동영상링크> 2015 메시에 마라톤
3월 21일 19시 30분 ~ 22시 30분까지 초반 약 3시간의 모습.
원래는 밤새 촬영할 생각이었는데, 외부 파워 연결잭을 놓고가는 바람에 3시간밖에 촬영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날씨가 생각보다 춥지 않았던 건 다행이었지만
하늘에 가득한 먼지는 저같은 메시에 마라톤 초보자에겐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여러 능숙한 선배님들은 이것저것 제대로 잘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찾아왔습니다.
새벽 4시 30분경 저에게 작은 기적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가이드 망원경으로 별지도를 보고 대상을 찾아가는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기준 별을 쉽게 가이드 망원경에 들여보낼 수 있었고,
별지도에 있는 별들을 징검다리삼아 대상을 찾아가는게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상하좌우가 역전되어 보이는 가이드 망원경의 별들의 배열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해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감격이란!
사진 4> 제출 전 급하게 촬영한 제 기록지입니다.
내년엔 빽빽하게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가 본 메시에 목록은 총 39개입니다.
저는 나름 만족합니다.
오히려 제가 준비해간 수준을 상회하는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순위가 공개되지 않은 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사진 5> 밤새 마라톤을 함께한 나의 빛통.
너의 진가를 아직 전혀 끌어내지 못하는 이 못난 주인을 용서해 다오 ㅜㅜ;
3. 배운점, 그리고 개선할 점.
첫 메시에 마라톤을 통해 배운게 참 많습니다.
첫째. 내년에는 일찍 와서 좋은 자리를 잡아야겠습니다.
그 좁은 마당에서마저도 경험많은 분들이 잡는 자리와 저같은 신참이 잡는 자리는 차이가 컸습니다.
특히 원지부장님 자리는....그런 VIP 석이 세상에 있을까 싶더군요.^^
둘째. 접안부가 아래쪽으로 향하는 제 빛통을 기준으로 목록을 다시 정리해야겠습니다.
기존 목록 순서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점은 이 순서가 돕소니언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돕소니언은 접안경이 위쪽에 있어 천정을 바라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빛통으로 천정을 바라보려면 몸을 최대한 낮추고 목을 바짝 들어야 했습니다.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은 자세지요.
셋째. 가이드 망원경의 중요성입니다.
실제 대상을 찾아가다보니 거의 대부분은 가이드 망원경을 들여다봐야했습니다.
주 망원경은 가이드 망원경을 통해 찾아간 대상을 확인하거나, 가이드 망원경을 통해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후 대상을 찾는 일부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가이드 망원경의 중요성은 일전에 서산 천문대에서 뵌 천문대장님께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당시에 워낙 둔한 제가 그게 왜 중요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넷째. 포기하지 말자!
사실 새벽 2시쯤 몸도 피곤해지고 먼지가 짙어지면서 빛통에서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깨끗하지 못한 하늘 탓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도 여러 선배님들은 하늘에서 대상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때 포기했더라면 가이드 망원경이 갑자기 익숙해지는 경험을 결코 하지 못했을 겁니다.
좀 더 필요했던 건 하늘이 탁해지는 그 때라도 집중을 잃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해가 떠오릅니다.
날씨는 여전히 탁하지만, 저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구상성단과 산개성단, 은하수를 단 지난 10시간만에 볼 수 있었습니다.
밤새 헤매고 다닌 별자리들이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정리가 되더군요.
이제 어디 옆에 뭐가 있고, 어디 아래 뭐가 있는지, 뭐가 지금 동쪽에서 떠오르고, 뭐가 지금 서쪽으로 지는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에 뿌듯함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올라왔습니다.
내년엔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 6>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별들과 함께한 2015 메시에 마라톤, 횡성 천문인 마을의 추억
저도 내년을 위해서 체력을 길러야 겠어요...훅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