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북극권 원정 -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2015. 4. 9 (木) 조강욱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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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가지 천문현상이 있다.
대유성우와 오로라, 개기일식이 그것인데..
대유성우는 2001년에 삼수 끝에 봤고
개기일식은 퀄리티는 만족스럽지 않아도 세 번이나 봤는데
오로라는 아직 보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캐나다 옐로나이프 한 번 가보려고 하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실행은 아직..
이번 원정의 가장 큰 목적은 개기일식과 오로라, 두 마리 토끼를 한 방에 잡아 보는 것이었다
[ 관측지 선정 ]
개기일식을 육지에서 볼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이다.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의 페로 제도, 그리고 북극 아래 첫 마을, 스발바르 제도.
둘 다 제도라서 기후가 별로 좋지는 않은데..
일식 할아버지 Jay Anderson의 15년치 기상 data 분석 정보를 보니
그나마 스발바르가 조금 더 낫다.
좀 이따 얘기할 '스얼' 루트 상으로도 스발바르가 오히려 접근성이 더 좋고..
북극에서 일식을 보는 것으로 결정!
스발바르 제도의 가장 큰 마을, 롱이어비엔(Longyearbyen)에는
민항기가 정규 노선을 가지고 이착륙하는 세계 최북단의 공항이 있다
(사진 좌하단의 까만 줄이 활주로)
롱이어비엔의 인구는 2천명, 그리고 북극곰은 그보다 몇 배가 많이 살고 있다
3월 평균 기온은 밤낮없이 영하 15~20도. 밤에는 북극곰 때문에 나다닐 수도 없는 땅끝마을..
사람이 살 이유는 별로 없는 곳인데, 20세기 초 탄광촌으로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광산업과 관광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오로라는 어디서 볼까?
오로라 오벌 내의 지역 중에서
스발바르행 비행기가 있는 노르웨이 트롬소에서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관측할 계획이었는데
트롬소의 기상을 모니터링 해보니 이건 뭐.. 일주일에 하루 개일까 말까 하는 날씨.
트롬소나 나르빅에 숙소를 정하고 차 렌트해서 날씨 좋은 곳 찾아서 계속 돌아다녀야 할까?
원정 1년 전인 2014년 3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위성 사진을 매일매일 지켜보다 보니
노르웨이보다는, 스칸디나비아 산맥으로 나뉘어져 있는 옆 나라 스웨덴이
훨씬 날씨가 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르웨이 대신 스웨덴 최북단 도시, 키루나로 관측 포인트를 변경하고
성공률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던..
케언즈에서 같이 쓴 잔을 마셨던 김동훈님, 이한솔님, 박한규님까지 영입하여
4인으로 원정팀 구성을 완료했다
[ 항공 일정 ]
스타얼라이언스(이하 스얼)는 아시아나항공이 포함된 전세계적인 항공 동맹이다
(대한항공은 그 경쟁자인 스카이팀 소속이다)
북유럽 항공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스칸디나비아항공(이하 SAS)이 스얼 소속이라
북유럽 북부 지역의 오로라와 개기일식을 보려면 스얼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아래 파란 점은 스얼의 취항지, 선들은 스톡홀름 직항 노선들이다. 스발바르는 북극해 글씨 왼쪽에..)
스얼 동맹에는 한붓그리기(공식 명칭은 스타얼라이언스 다구간 항공권)라는
궁극의 마일리지 제도가 있었다 (항공사 손실이 심해서 한붓그리기는 14년 6월부로 폐지)
7.8만마일의 마일리지를 가지고 15만마일 거리에 해당하는 편도 공짜 비행기들을 탈 수 있는 환상적인 효율!
하지만 이 한붓그리기를 이용하기 위해선 복잡한 규정을 준수해야만 하는데..
예를 들면 인천 출발 A 도착 → A 출발 B 도착 → B 출발 C 도착 → ...... 해서
다시 인천에 도착할 때까지 무조건 끊임없이 편도 릴레이로 도착-출발 일정이 이어져야 하고
한 번 체류한 곳은 다시 찍을 수 없으며 (24시간 이내 경유지는 제외)
트랜짓 시간도 넉넉히 고려해야 하고
비행편마다 비즈니스/이코노미 등급에 맞는 4명분의 마일리지 좌석이 남아 있어야 하고
전체 모든 비행 일정을 한 번에 모두 발권해야 하고
항공사마다 유류할증료는 모두 다르고 등등등..
말도 안 되게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붓그리기로 항공권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블로그와 여행 전문 카페에서
'3개월 스얼 공부 끝에 한붓 발권 성공!' 류의 글을 보면서
아니 항공권 발권하는데 무슨 3개월 공부씩이나.. 하고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워낙에 변수가 많다 보니 한 방에 시원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마일리지 항공권의 발권은 비행기 출발 330일 전부터 예약이 가능한데,
원정 멤버 4명이 같은 일정으로 움직이려면
한 비행기에 많아야 3~4석밖에 나오지 않는 마일리지 좌석을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잡아야 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마일리지 항공권 발권이 오픈되는 D-330일이 되기 두 달 전부터
퇴근하면 밤마다 온갖 종류의 조합으로 아시아나 홈페이지에서 발권 연습..
한 200번은 해 본 것 같다
전체 구간의 세자리 공항 코드와 출발일자를 넣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기에,
나중에는 내가 갈 지역의 공항코드와 항공사 코드를 모두 외워버렸다 (인천공항의 코드는 ICN, 스칸디나비아항공 코드는 SK이다)
원정 귀국일의 330일 전인 2014년 4월 어느 날,
스얼본사가 있는 프랑크푸르트 영업시간에 맞추어 전세계 1등으로 마일리지 좌석을 획득하려 하니
가장 중요한 북극(스발바르)행 비행기의 마일리지 좌석이 검색되지 않는다.
스칸디나비아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그 북극행 비행기에
마일리지 말고 돈 내고 발권하는 좌석은 이미 오픈을 해 놓았는데..
아오 이걸 그냥!
아시아나 콜센터에 연락해서 이건 뭐냐고 따졌더니 비행기에 마일리지 좌석을 운영할지 말지는 항공사 마음이라고..
(한 번은 아시아나항공 콜센터에 전화해서 공항과 항공사 코드를 줄줄 외며 질문을 했더니
왜 여기로 전화하셨나며 여행사 전담 콜센터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매일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북극행 마일리지 비행기는 나오지 않는다
출국부터 귀국까지 전 일정을 한 번에 발권해야 하여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다른 구간의 항공권도 지구상의 누군가에게 뺏길 수도 있고..
독점 항공사의 폐해를 몸으로 느끼며.. '그래 그렇다면 내가 내 돈 내고 사 주마'
열받아서 북극행 뱅기표를 돈 내고 사러 스칸디나비아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딱 일식 전날, 그 날짜의 비행기만 예약버튼 클릭을 막아놓았다
야! 너 이 #$*@$&*@#%&*#$야 !!!!!
일요일 새벽, 모니터 속에서 몇 시간을 정처없이 헤메다가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평생 한 번도 하지 않던 새벽 산책을 하며, 원정대 카톡방에서 김동훈님과 얘기를 하다가
(은평뉴타운에는 멋진 산책로가 있다. 새벽 안개도 운치 있고..)
스발바르 공항에 SAS 외의 다른 비행기가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르웨이 저가 항공사인 'Norwegian'. (물론 스얼 회원사는 아니다)
여기서는 일식 전전날 비행기표를 팔고 있었다. (가격은 평상시 요금의 3배, 환불은 당근 불가)
그게 어디야.. 눈물을 흘리며 D-320일쯤 전 일정 발권 완료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은 관광이나 비즈니스나 뭐 별로 없나 보다.
왕래하는 비행편도 없어서.. 10일동안 비행기 10번 타야 하는 놀라운 일정.
1. 오로라 포인트 가는 길 : 인천 - 북경 - 스톡홀름 - 키루나
2. 스발바르 가는 길 : 키루나 - 스톡홀름 - 오슬로 - 롱이어비엔
3. 집에 오는 길 : 롱이어비엔 - 오슬로 - 코펜하겐 - 프랑크푸르트 - 인천
참, 마일리지 항공권도 완전 공짜는 아니다
유류할증료와 공항세가 52.1만원 나왔다
(현재 마일리지 항공권의 유할은 대법원에서 폐지하는 것으로 법규 개정 중이다)
[ 숙소 ]
북극, 스발바르제도 롱이어비엔의 숙소는 모두 8개.
빙산 사이 계곡에 만들어진 인구 2천명의 작고 고립된 마을이라 숙소도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숙소는 'Travel Quest'라는 미국의 일식 전문 여행사에서 이미 오래 전에 모두 예약해 놓았다
어느 곳에 연락해도 '방 없다' 또는 'Travel Quest로 연락하라'는 얘기 뿐.
Travel Quest에서 팔고 있는 여행상품은 항공권 빼고 현지에서의 일주일 일정만 천만원을 받는 초고가 바가지…
Travel Quest에 연락해서 우리한테 그냥 방만 하나 팔면 안되냐 문의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아니 그냥 내 몸 눕힐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구하는게 이렇게 어려울 수 있을까?
유일하게 예약이 가능한 곳은 공항 근처의 캠핑장이다.
나 말고도 세계 각국의 방 못 구한 일식 난민들이 성화를 해 댔는지
여름에만 장사한다는 캠핑장에서.. 네들이 그렇게 조르니 '특별히' 3월 개기일식 기간에 문을 열겠단다
다만 (얼어 죽어도 책임질 수는 없으니) 텐트며 침낭이며 알아서 준비해 오고
(북극곰에게 물려 가도 모르니) 알아서 밤새 돌아가며 네들끼리 불침번 서라는 말씀.
하오.. 거기까지 극지용 텐트 침낭 난로 등등 그걸 어떻게 다 들고가지..
도저히 방을 구할 수 없어서, 대신 렌터카를 한 대 구했다
차종은 구형 스포티지. 북극까지 가서 국산차에서 차박이라니.. ;;;
(이 역시 일식 바가지는 피할 수 없었다. 환불 불가 조건으로 2일 렌트에 65만원)
차박의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한결같이 걱정을 한다.
저체온증으로, 뇌질환으로 동사 또는 급사할 수 있다고…
비슷한 우려의 얘기를 계속 듣고, 스발바르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날 즈음에
회사에서 2년짜리 해외 파견근무가 거의 결정이 되었다.
그래 해외 근무를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북극 원정은 못 가겠지..
어쩔 수 없이.. 꼭 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현실 도피도 아닌 북극 도피.
그렇게 손을 놓고 한동안을 보내다가 인사과에서 믿을 수 없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그 충격에 정신을 놓고 무작정 회사에 휴가를 내고 서호주의 황무지를 헤메고 다니다가
정신을 차리고 해외 파견을 못 가서 좋은 점들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별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북극에 갈 수 있다'는 것.
그래? 이게 위기일까 기회일까?
한동안 애써 잊고 지냈던 북극에서의 차박이 다시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일식이 임박해지면 팔지 못한 (백만장자용) 숙소가 다시 시장에 나올 것이라 기대하며
방 없다는 호텔들에 계속 스팸 메일을 보내서 찡찡거리니
출발이 한 달 남은 설날 아침, 낯선 이름의 메일이 한 통 날라왔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친구한테 들어 보니 너 방 못 구했다던데.. 우리집 방 한 칸 빌려 주겠다는 말씀!
임대 조건은 인당 하루 15만원씩.
북극 바가지 물가 기준으로는 초특가 수준이다 (2박 3명 90만원, 현지 화폐로 6천 크로네)
얘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따져볼 겨를도 없다.
사기꾼이라도 돈 백만원에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겠지.
오로라 포인트는 키루나에서 한 달을 체류했던 강명우님께
'키루나에서 눌러 앉아 있어도 오로라 잘 볼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서,
멀리 안 가고 키루나 도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캠프 리판으로 예약.
알고 보니 오로라 관측과 각종 activity로 꽤 유명한 리조트(?)였다
[ 장비 & 운송 ]
오로라는 밤새 아무 때나 보이는 것이 아닐 테니..
관측 대기중(?)에 무언가 시간을 보낼 망경을 하나 챙겨 가야겠다
정기양쌤의 8kg 짜리 여행용 8인치 반사를 가져가려 했으나
중국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에어차이나 기내 반입 무게가 5kg밖에 되지 않아서 어이없이 무산.
결국 망경은 초경량을 자랑하는 김남희님의 KENKO SE120(5인치 굴절)에
한솔님 경위대를 내 잘난 맨프로토 055에 올리는 걸로..
(나중에 알고보니 에어차이나도 비즈니스석은 8kg이다. 안내 직원의 실수로 잘못 가르쳐 준 것..
그냥 8인치 들고 가되 되는 거였다)
가기 전 예고편에도 올렸지만 비행기 10번의 수화물 기준이 모두 달라 도저히 외울 수가 없어서 아예 표를 만들었다
개인 짐은 최소한으로. 나머지 모든 공간은 김동훈님 촬영 장비를 넣는 것으로..
[ Study ]
항상 모든 원정 전에는 엄청나게 열공을 하고 갔었다 (작년 서호주만 빼고)
'출발 전에 80%를 준비하고 현지에서 20%를 채운다'는
자연과학 탐사의 법칙에 따라서..
근데 오로라나 일식이나 다 맨눈으로 보는 거고
5인치 굴절로 본다 해도 밝고 큰 성운 위주일 것이라 스터디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극지방에서 관측될 확률이 높은 Sun Dogs 현상에 대해서만
천문학회 유태엽님 글로 예습을 하고 갔다
(관련 자료 : http://www.seoulkaas.org/xe/index.php?mid=AstroNews&page=2&document_srl=152708)
(스톡홀름 Sun Dogs)
(남극 대륙 Sun Dogs)
일반적인 관광에 대한 것은 물론 전혀 준비하지 않았으나,
스발바르 가는 길에 오슬로 공항에서 대기시간이 반나절 가량 있는 것을 알고
오슬로 시내에 있는 뭉크 박물관에 가 보기로 했다
(오슬로는 뭉크의 고향으로, 절규를 비롯한 뭉크 작품의 전세계 최대 컬렉션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출장으로 간 비엔나에서
잠깐 짬을 내어 클림트의 '키스' 원작을 보며 느낀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도 원작의 감동은 또 다를 것이다
근데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박물관에 도착해서 뭉크의 원작들을 한 시간 보고 오려면
오슬로 공항에서 절대 헤매지 않고 거의 비밀요원 수준으로
환전이며 짐 보관이며 열차표 구입 등등을 순식간에 처리해야 하는 것.
뜬금없이 오슬로 공항 공부도 하고... ;;;
[ 준비모임 ]
첫번째 모임은 D-Day 11개월 전, 14년 4월에 종로에서..
그리스 주재원 다녀온 회사 선배에게 Eclipse표 와인도 한 병 얻어왔다 (라벨 자체가 이클립스)
(위 네 명 중 박한규님은 개인 사정으로 결국 원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종종 만나서 준비 상황을 체크했는데..
북극에서 차박을 준비하며 하도 흉흉한 소리를 많이 들어서
진짜로 가장 추운 날 산에 올라서 차박을 해 보기로 했다
1월의 마지막 날, 전후 20일간 최저기온 예보가 있어서
가장 가까운 가장 추울 곳으로..
한솔형님 차를 셋이 타고 1100 고지에 있는 광덕산 천문대에 올랐다
외길 눈길을 한참 올라서 광덕산 천문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에 나오자마자 살을 에는 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바지 위에 극지용 오버트라우져를 입고
(회사에서 택배 받고 인증샷)
필파워 800의 마운틴하드웨어 패딩을 입고 영하 100도 스펙의 설상화, 바핀을 신고
신발 안에, 주머니 안에, 장갑 안에 핫팩도 하나씩 넣고 있으니 그런대로 견딜만 한데
맨살로 노출되어 있는 얼굴, 특히 광대뼈가 너무너무 시렵다
누군가 얼굴에 붙어서 계속 바늘로 찌르고 있는 것 같다
(집에 와서 바로 바라클라바.. 쉽게 말해 은행강도용 복면을 하나 샀다)
온도계에 찍힌 기온은 밤새 영하 15도 였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기온은 그보다 10도쯤 더 추웠고
지금 생각해보니 차에 그 온도계가 얼어서 작동을 안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튼 나는 밤새 시동 한 번 걸지 않은 냉동차(?)의 조수석에서 자정부터 6시간을 내리 푹 잤는데
두 형님들은 자리가 불편해서 밤새 잠을 설쳤다 한다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때론 머리 안 대도) 바로 잠이 드는 습성이 이렇게 도움될 때도 있다는..
날은 너무나 맑았으나 달이 휘영청 밝아서 (다행히도, 그 추위에 달도 없었으면..) 관측은 하지 못했다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림 한 장.
[ 광덕산 혹한기훈련, 갤럭시노트2에 터치펜 (조강욱 2015) ]
어쨌든 하룻밤 혹한기 훈련으로 우리는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북극의 숙소를 해결하지 못했던 이 즈음, 북극에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줄 그 차가
수동 기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아무도 수동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얘기를 하며 셋 다 말을 잃고 망연자실..
어떻게 알았는지 렌터카 주인은 차에서 자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불허한다며 엄포를 놓고…
차에서 자는 것도 싫고 안 들키려고 눈치보는 것도 싫고 수동 운전을 속성으로 배우는 것도 무리한 일이고
나중에는 원정 갈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결국은 위에 얘기한 북극의 불법 민박(?)을 구하며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 준비물 ]
북극까지 관광하러 가는 거 아니니까.. 식당 찾고 밥 먹는데 들이는 시간은 최소한으로.
전투식량과 라면을 잔뜩 챙겨 갔다
광덕산에서 우리를 지켜준 혹한 대비 끝판왕인 핫팩은 인당 하루 5개 기준으로 3인분 120개를 준비했다
북극에서 만날 집주인을 위해 작은 선물도 사 놓고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 몰라서 파스텔에 색연필까지 바리바리 챙겼다
언제나 원정을 생각하면 즐거운 생각만 가득했는데
이번 북극권 원정은 쉽게 풀리는 것이 하나도 없이
항공 일정도 숙소 구하는 것도 렌터카도 기상 조건도
출발 직전까지도 별로 해결된 것이 없었다
북극에 가기 며칠 전, 뜻하지 않은 구호 물품이 도착했다
인삼공사에서 근무하는 민정언니가 추울 때 먹으라고 보내준 홍삼 드링크 한 박스!
원정 일주일 전 마지막 모임에서 똑같이 나누어 가져갔다
한 병씩 마시고 다시 회의
3월에 대체 어떻게 일주일이나 휴가를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는데.. (그렇게 해도 책상 안 빼냐고)
휴가 결재는 이미 1년도 더 전에 받아 놓았었다.. 그리고 잊을만 하면 계속 remind 시켜 드리고..
출발 전날, 부서 후배들이 과자봉지를 들고 무언가 준비를 하길래
누군가 생일인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북극 생환 기원제.
회사에서 차박 얘기, 광덕산 혹한기훈련 얘기를 종종 했더니..
저 케잌 가운데에 써 있는 글씨는 무려 Alive... ;; (그 며칠 뒤가 내 생일이기도 했다)
거대한 초경량 캐리어도 하나 사고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Surf 82/31)
관측과 생환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생각날 때마다 적고
집에 가서 체크, 업뎃 또 체크..
출발시간은 3월 13일 금요일 아침 8시 반 비행기.
목요일 야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체중계를 옆에 놓고
갈 때는 23kg, 올 때는 20kg이 되도록 짐을 쌌다 풀었다 무한 반복 하다가 결국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캐리어 옆의 허름한 백팩은 대학생때 유럽 배낭여행부터 내 모든 해외 원정에 동반한 아이다)
새벽 4시 40분 리무진버스 첫차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
드디어 간다
밤을 샜더니 몽롱해서 별로 긴장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잠도 오지 않는다
공항에서 제 시간에 문제 없이 무사히 짐 부칠 생각 뿐..
Nightwid 無雲
1. Prologue : 모든 것의 발단
2. 원정 준비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원정
3. 1일차(서울-키루나) : 라플란드로 가자
4. 2일차(키루나) : 오로라와의 조우
5. 3일차(키루나) : 쉬는 것도 하늘 뜻대로
6. 4일차(키루나-아비스코) : 태초의 얼음 호수
7. 5일차(나르빅-키루나) : 폭풍의 하늘
8. 6일차(오슬로-스발바르) : 뭉크를 찾아서, 북극을 향해서
9. 7일차(스발바르) :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
10. 8일차(스발바르-오슬로)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시공간
11. 9~10일차(프랑크푸르트-한국) : 10일간 비행기 10번 타기
12. Epilogue : 진인사대천명
[ 예고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