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 서호주 무계획 관측여행
#1. 바람 좀 쐬고 올께요. 서호주에서
#2. 별이불이 제일 따뜻해
#3. 피너클스와 인도양, 쪽박과 대박 사이
#4. 자연의 창으로 우주를 바라보다
#5. 별 찾는 수도승
2014년 12월 17일, Nightwid 조강욱
☆☆☆☆☆☆☆☆☆☆☆☆☆ Day 2 (23 Nov. 2014) ☆☆☆☆☆☆☆☆☆☆☆☆☆
Brookton 고속도로 근처의 캠핑장에서 노숙을 하고 퍼스로 돌아가는 길에
졸려서 고속도로 갓길 parking area에 주차를 하고 잠시 쉬어 가려는데
그냥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나무와 숲도 아름답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셀카 한 방.
한 시간쯤 달려 퍼스 인근에 도착하니 높은 고개 아래 분지 지형에 집들이 보인다
간만에 사람 사는 집을 보니 반가워서 몇 장.
퍼스 시내에 진입하니,
사진으로 수없이 봤던 퍼스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안녕. 너네는 다음에 마나님과 같이 오면 꼭 봐줄께
어제 장을 봤던 Belmont 쇼핑센터에 다시 왔다
쇼핑센터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날씨부터 검색한다
어제 갔던 퍼스 동쪽 지역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 좋고,
내가 가고 싶던 북쪽은.. 오늘은 저녁은 구름이 조금 있을 확률이 있지만
밤이 깊을수록, 그리고 내일은 완전 clear.
그래 북쪽으로 가자. 피너클스도 자연의 창도 가 보는거야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도 들릴 겸, 잠시 쇼핑센터에 들어갔다
작은 것은 그냥 대충 해결하면 되지만 큰거는.. 흠.. 여기서 다 비우고 가야지 ㅡ_ㅡ;;
푸드코트를 지나가는데 음식 냄새가 코를 솔솔 간지럽힌다
심지어 상호가 아리랑인가 하는 한식집도 있다
어제 오후부터 시리얼바로 밥을 때웠더니 맛있는게 좀 땡기긴 하는데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맞아 내가 맛있는 거 먹을 기분이 아니었었지
(굳이 그 감정을 되새길 필요가 있었는지는 ㅎ)
어제 없어서 불편했던.. 앉아서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별을 보기 위한 용도로
K마트에서 캠핑용 접이식 의자와 작은 휴대용 랜턴 하나를 사고
밥은 안 먹어도 커피 안 먹고는 못살것 같아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호주에서는 아메리카노를 'Long Black' 이라고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집, 폴 바셋의 고향이라 그런지
서호주에서 마신 커피 세 잔은 모두 맛이 좋았다
여튼, 아메리카노를 특대자 곱배기로 받아들고 부자가 된 기분으로 북쪽으로 출발.
생수로 감은 머리를 자랑하기 위해 마나님께 카톡으로 생존 보고
(까만 얼굴 더 까매질까봐 썬크림을 치덕치덕 발랐더니 입 주위가 허옇네 ;;;)
오늘의 목적지 피너클스 사막은 퍼스에서 200km 북쪽으로 떨어진 국립공원이다
퍼스 인근, 아직은 숲이 울창하다
어제 마트에서 샀던 멕시칸 스파이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걸 대체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거니
한 입 먹고 포기.
고속도로 쉼터에서 바로 쓰레기통으로 ;;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리다 보니
어디 가나 똑같은 전형적인 호주 풍경, 끝없는 초원이 나타났다
기념사진도 한 장 찍고
어느새 왼편으로 인도양이 보이는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Indian Ocean Drive라는 총연장 844km의 우리나라 국도 수준의 도로다)
잠시 차를 대고 인도양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도 올라가 보고
초원 중간 중간에 쌩뚱맞은 모래 언덕도 보인다
이건 대체 뭐임. 정말 뜬금없다
출발 전날 밤, 집에 몇 장 없는 CD를 모두 들고 갔다
호주의 황량한 고속도로에서 볼륨을 높이고 정명훈의 연주를 흥얼거린다
아~~ 경건하다 경건해
호주의 끝도 없는 평원과 경건한 성가와 연주들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인도양이 잘 보이는 쉼터에 잠시 차를 댔다
이 동네에서도 건설이 끝나면 기념비를 남기는구나
인도양의 파도 소리를 멀리서 들으니 또다시 상념에 사로잡힌다
계획대로, 저 인도양 건너편 케냐 앞바다에서 2년간 별을 볼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오후 3시쯤, 피너클스가 있는 남벙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오늘 여기서 노숙하며 별을 보려 하는데
입구에 있는 표지판에 보니
'여기서 밤 새는 것은 불법이고, 공원 관리자가 계속 순찰을 돌고 있으니 걸리면 벌금 물린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어디 잘 숨어서 봐야겠네.. ;;;
피너클스는 석회질 토양이 수백만년에 걸쳐 침식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석회암 기둥 무더기들로
생성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수백 만 년 전(플라이스토세) 이곳은 하부에 석회암이 퇴적되었다.
이후 산호 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퇴적 되어 충적토를 만들었다.
2. 겨울에 내린 비가 탄산칼슘 입자와 반응하여 석회암의 균열을 가져왔고
물의 동결작용으로 균열의 틈을 넓혔다. 이후 그 틈에는 석영질의 모래가 채워져 굳었다.
3. 점차 균열의 틈은 넓어지고 그 사이로 모래가 주요 입자인 사암이 퇴적되었다.
4. 다시 바람에 의해 지표 위에 쌓인 모래가 날아가면서
석회암 기둥은 표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나게 되었다.
(피너클스 생성원리 자료 참조 : http://earth1004.tistory.com/476)
피너클스 사막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 두번째는 걸어서 돌아보는 코스.
사막을 걸어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차를 타고 돌아보는 코스를 택했다
평범한 도로를 잠시 달리니 갑자기 눈 앞에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헉.... 이건 뭐지!
비행기 안에서 박자세의 서호주 답사 책으로 벼락치기 공부하면서 사진을 봐서 알고 있던 풍경이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는 모습이지만
눈으로 보는 그 풍경은 보고도 믿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 내가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 맞지..
곳곳에 돌무더기로 표시해 놓은 갓길에 차를 대고 그것들을 감상한다
아 이걸 대체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그 긴 세월을 깎이고 깎여서 세상에 드러난 돌무더기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백 년도 못 살고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깃발 들고 다니는 동양인 관광팀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사진 좀 찍어 달라 해야지
찍고 나서 그들끼리 서로 찍어주는 것을 보니 내가 찍은 배경보다 훨씬 멋있다
일본말로 얘기하고 있길래
아까 나 찍어주었던 아줌마한테 스이마셍 모이찌도 샤시노 오네가이시마스 했더니
외국인의 어눌한 일본어를 외국에서 들어서 기분이 좋으신지
웃으면서 한 장 더 찍어주심
수천 수만개는 될 듯한 석회암 기둥들을 보며 맘에 드는 것은 사진을 찍고
이름을 지어서 불러 본다
[ 일만 이천봉 ]
[ 명상 ]
[ 해바라기 ]
[ 나른한 오후 ]
[ 벌집 ]
(그냥 증명사진)
[ 샌드 쉐이크 ]
[ 잠복 근무 ]
[ 너네 제대 며칠 남았니? ]
[ 출격 준비 ]
[ 아휴 힘들어 ]
해가 저물면서 그림자가 길어지니 풍경은 더욱 믿기 힘들게 변해간다
차를 주차해 놓고 한참 걸어 들어가서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으려니
뒤에 내 차가 보여서 그림이 살지 않는다
이 정도면 가리겠지 (바람이 하도 불어서 계속 모자 챙을 잡고 있어야 했다)
그럼 여기쯤 오면..
아 몰라 안해! 반대편으로 찍으면 되지 뭐
다시 이름짓기 놀이 시작
[ 촛대 ]
[ 광개토대왕릉비 ]
[ 새턴 5호 로켓 ]
[ 스테고사우루스 ]
[ Star chain ]
[ 임원 회의 ]
[ 인왕제색도 ]
몹쓸 셀카도 한 장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이제 세시간 뒤면 일몰이 오겠지.
하늘은 구름이 조금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맑고 푸르다
저녁에 쌀쌀해지면 구름은 다 사라질거야
시간을 때워야 해서 공원 입구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렀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피너클스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벙거지 모자가 참 예쁘다
기념품으로 이거 하나 사가야겠다
2010년에 쿠나바라브란의 사이딩스프링 천문대에서 기념품으로 사다 드린 소주잔을
아직도 쓰고 계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피너클들 그림이 새겨진 소주잔도 하나 구입.
계산을 하려고 보니 아.. 지갑을 차에 두고 왔네..
주차장은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신용카드를 가지러 다녀왔더니
기념품점으로 가는 길 복판에 '4시 반에 문 닫습니다' 라는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시간을 보니 4시 34분.
혹시나 하여 50여 미터를 뛰어서 기념품점에 도착하니
아까 나와 잡담을 나누던 판매원 할머니가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잠깐 잠깐만요 저 모자 하나만 사면 되는데요..
한국 같았으면 돈 벌어야 하니 당연히 다시 셔터를 열었을텐데
할머니니까 봐주겠지.. 하고 아양을 떨어 보았으나
여기 정서로는 택도 없는 일인듯.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지면 그게 작던 크던 견디지 못하는 내 성격이 다시 발동.
아니 4시반에 문을 닫는 가게가 대체 어딨냐
우리나라 같으면 밤 10시까지는 하겠구만
이걸 어디서 사지? 내일 한 번 더 들릴까?
한국에서 인터넷 직구로 살까?
차에 돌아와서 한 20분을 고민하다가
떠나간 기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케냐 장기파견을 아무리 아쉬워하고 생각한다 해도 이제 갈 수 없는 것처럼
그까짓 모자 하나 때문에 내가 왜 내 시간과 생각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거지?
퍼스 공항 기념품점에서도 피너클스 모자랑 소주잔 정도는 팔겠지 뭐
로마 공항에서 이탈리아 전역의 기념품들을 모두 팔았던 것을 생각하며
쿨하게 머리 속에서 지웠다. (사실은 지우려고 노력했다)
너 이제 플랜맨 안 하기로 했잖아. 잊어버려.
(완벽한 계획을 추구하는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다)
해가 질 때 까지는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아까 처음 들어올 때 본 안내문을 기억해보니 드라이브 말고 걸어서 보는 1.2km짜리 코스가 있었는데
아까보단 덜 더울테니 그거 한 번 해 봐야겠다
그래도 햇볓이 따가워서 긴 팔을 꺼내 입고 출발.
사막 산책로(?) 입구에서 서양 할머니에게 부탁해서 사진 한 장.
멀뚱하니 찍었더니 이 할머니.. 일부러 나를 웃긴다
본인을 파파라치라 소개하며 표표히 사라지심
저녁 6시쯤, 사막의 고운 모래를 밟으며 이정표를 하나씩 따라간다 (청녹색 말뚝들이 이정표다)
하.. 진짜 왔네 피너클스.
내 두 다리로 피너클스 사막을 걷고 있는 거야
얘네들은 수백만년을 여기에 서서 비바람을 견디며 살고 있는데
너도 좀 담대해져야 하지 않겠니
겨우 백 년 밖에 못 살면서 말이야..
그래.
내가 내 의지로 사막도 걸어서 넘을 수 있는데 대체 내가 못할게 뭐야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건조한 사막에서 모래 먼지를 마시며
혼자 수없이 되뇌인다
사막도 걸어 봤는데 내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어
1시간여 사막 산책(?)이 마무리될 즈음.. 내 키가 끝도 없이 길어지고 있다
피너클들도 같이 나를 따라온다
산책 코스를 돌고 나와서
차에서 삼각대를 꺼내고 옷을 더 껴입고 피너클스 입구 전망대에서 박명을 기다린다
구름의 색깔이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반대쪽에서는 태양이 인도양 대신 구름 사이로..
근데 왜.. 이리 구름이 많아지냐
내 떡진 뒷머리 같은 두꺼운 구름들...
구름 속의 비너스 벨트를 감상하며 5분 단위로 사진을 남겨 본다
윗 사진에서.. 감질나는 하늘 아래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찾으셨나요?
이번에는 살아 있는 그 애들을 많이 봤어요.. 로드킬 말고..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구름은 걷힐 기미가 없다
어 이건 뭐지....
구름은 끊임없이 남쪽에서 생성되어 북쪽으로 흘러간다
아니 이 상황이면 북쪽으로 올라간다 해도 별 수 없을텐데....
근데 분명히 피너클스부터 그 북쪽 지역은 예보가 좋았는데 말이야.
그 동안 호주의 일기예보에는 배신을 당한 적이 없으니까..
피너클스 전망대 벤치에 앉아서 끝없이 북쪽으로 흘러가는 구름떼를 지켜보다가
저녁 7시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난.. 포기가 빠른 남자지.
(슬램덩크 22권 - 북산 vs 산왕 中)
이미 사위가 어둑해졌다
한 시간 내로 천문 박명이 올 텐데..
그 전에는 어디든 도착해야 초행길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WIKICAMPS AU 앱으로 다운 받아 놓은 오프라인 맵을 띄워놓고
북쪽으로 100km 이내의 캠핑 가능한 곳을 검색하여
76km 북쪽으로 Point Louise라는 캠핑장을 발견했다
사용자 평도 좋고.. 당연히 네비에는 검색이 되지 않아서 위도 경도 좌표를 찍고 출발.
시골이라 날이 더 빨리 저무나?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미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해변의 제법 큰 타운인 Cervantes와 Jurien Bay를 지난다
여기도 캠핑장은 있지만 유료 시설이라 밤 늦은 시각에 들어가기가 애매하고
(6시면 보통 캠핑장 사무실이 문을 닫는다)
받는 돈에 비해서는 평이 좋지 않다
(보통 차 한대당 2~3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용해 보지는 않았음)
그리고 이 두 타운에는 고속도로 진입로에 가로등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니 대체 뭐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 무슨 가로등이냐.
여기를 안 잡길 잘했지..
인구가 1500명이나 되는 Jurien Bay에서 기름을 넣고
더 작은 시골 마을, 인구 250명의 Green Head로 향한다
운전 중에 힐끗 운전석 옆 유리창을 보니 별들이 보인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것도 같고 많이 보이는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마음만 더 급해져서 열심히 달렸는데도
Green Head 인근에 도착하니 이미 8시 반, 1시간이 지났다
한적한 숲길로 들어선 차는 목적지까지 1km, 500m, 200m, 0m.
네비 상으로는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그냥 그 한적한 숲길 한복판.
(출처 : 구글 지도 검색)
이건 대체 뭐지?
무언가 잘못됐다
아무것도 없는 도로가에 무슨 캠핑장?
도로변에 작은 표지판이 있어서, 내려서 확인해 보니 (위 사진 중앙의 흰색 막대)
PT Louise 2.5km 화살표가 있다
PT Louise라면 Point Louise를 말한 것이겠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포장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비포장도로.
(출처 : 구글 지도 검색)
자동차 헤드라이트 저 편으로 어둠에 덮여 있는 붉은 흙길..
악마의 입처럼 너무나 깜깜하고 괜히 무서워진다.
대낮에도 1km만 달려도 진동에 머리가 띵한 비포장도로를 2.5km나
이 밤중에 네비도 없이 가라는거야?
아 그냥 딴데 갈까
나의 마지막 희망, WIKICAMPS AU를 띄워서 GPS를 세팅해 보니
여기에는 비포장 도로가 표시되어 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어짜피 헝클어진 내 인생. 비포장 시골길에서 밤새 헤매면 좀 어때
한 손에는 운전대를, 한 손에는 WIKICAMPS와 GPS를 띄운 폰을 들고
칠흙 같은 비포장길의 어둠을 헤쳐 나간다
(렌트카 회사에서 빌린 네비게이션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지 않는다)
다행히 App의 오프라인 지도와 GPS는 꽤 정교해서, 나름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한 7~8분쯤 지났을까.. App 지도상의 목적지로 향하는 입구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어두운 입구로 들어가니,
캠핑카도 보이고 차 밖에서 무언가 하는 사람도 있고 이건 누가 봐도 캠핑장.
아~~ 이제야 안심이 된다
한쪽 구석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니
하늘에는 별들이 한 가득!
아니 분명히 구름들이 북쪽으로 엄청나게 몰려갔는데..
이 맑은 하늘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그리고 끊임없이 정적을 깨는 인도양의 파도소리.
이건 정말 해변의 파도소리다
현재 시각 저녁 9시 6분.
아까 퍼스에서 사 온 접이식 의자를 꺼내어 차 옆에 펼쳐놓고 앉아서
그 파도소리를 들으며 암적응이 될 수록 점점 진해지는 마젤란을 감상한다
아! 이렇게 극적으로 환상적일 수도 있을까?
피너클스의 절망적인 상황도, 80km 북쪽의 별빛 가득한 인도양 앞바다도
모두 비현실적이다
생각해보니 20년간 수백번의 관측회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별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96년 경포대에선 구름이 끼어서 백사장에서 동아리 형들과 파도소리에 깡소주만 마셨고
05년에 몰디브에선 바다가 고요해서 파도 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편에서 내드린 문제 기억 하시는지?
여기는 물병자리 밑바닥이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적인 별자리 그림으로는
물병에서 흐른 물줄기 또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줄기이겠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유려한 손놀림 같은 그 별배치를 한참동안 넋을 놓고 쳐다본다
북반구에도 분명 보였을텐데.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말이야
9시반, LMC 밑으로 정말 만화에서나 볼 법한 유성이 하나 반짝 하고 떨어진다
[서호주 인도양 앞바다, LMC & 유성 - Sky Safary 화면 캡쳐 후 그림 추가]
동쪽하늘에서는 가짜 남십자들이 무더기로 떠오른다
흥 이젠 안 속아!
'진짜' 가짜 남십자 왼쪽으로 무언가 성단 같은 것이 보인다
70mm 쌍안경 출동.
IC 2391
(출처 : SkyView, 0.5도)
'Southern Pleiades'
대체 누가 이걸 45번에 비유하냐?
이름 지은 애 누구야 (작명 서비스 매뉴얼대로 한거니?)
별자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그물(Reticulum)자리, 제단(Ara)자리, 테이블산(Mensa)자리....
찾으나 마나 한, 4~5등급으로 이루어진 희미한 별자리이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빠짐없이 이름을 불러 준다
뒤집힌 채 손잡이만 남은 앙상한 궁수까지....
왜냐면.. 그래야만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어제와 달리 유성이 많이 보인다
11월이면 큰 유성우도 없는데 말이지.
오는 길에 K마트에서 무려 12달러를 주고 산 접이식 의자에 앉아서
북반구에서 보이지 않는 남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북쪽을 보니
이건 거의 불꽃놀이 수준이다
다시 남쪽을 보니 마치 한국에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휑하다
우리가 북쪽으로 망원경을 잘 들이밀지 않고,
대신 산줄기와 뿌연 지표면 광해 속에서도 기를 쓰고 남쪽을 보려 하는 것처럼
이들은 보일락 말락 하는 북쪽 대상들을 열망하겠지.
10시 30분, NGC 3532가 떴다
좀 더 고도 올라오면 다시 보자.
IC 2602
헛 아까 딴 애를 'Southern Pleiades'로 오해했네!
근데 니가 대체 왜 플레이아데스냐?
(사진 출처 : http://www.southernskyphoto.com/southern_sky/images/southern_pleiades_ic_2602.jpg)
10시 35분, Acrux가 등장했다
겨울 은하수는 오리온과 큰개를 거쳐 남십자까지 뻗어간다
에타카리나 성운이 제법 높이 올라왔다
쌍안경으로 보니 날개를 편 새와 같은 모습이다
(출처 : http://www.cyanogen.com/gallery/ETAsmall.jpg)
쌍안경으로 봐도 이 정도인데
망원경이 있었으면.. 크... (쏘주 한 잔 들이키고 나는 소리)
에타카리나를 보고 있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몸도 점점 추워져서 의자에 앉아 침낭을 입고 떨면서 졸다가
차에 들어가서 잠시 쉬기로 한다
현재 시각 11시니까.. 새벽 1시에 알람을 맞추고 운전석에서 길게 누웠다
히터를 트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
눈을 떴다.
알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오래 잔거야
폰시계를 확인해보니 새벽 3시 5분.
오늘도 똑같은 시간이구나
새벽 1시 알람은 듣지도 못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황홀하고 거대한 겨울 은하수가 나를 반긴다
오리온은 하늘 높이 거꾸로 남중해 있다.
하.. 이게 다 뭐지..
인도양 어느 바닷가에서 파도소리와 함께 보는 남쪽 별빛들....
어제는 그 별들이 소리없는 요란함으로 나를 반겼다면
오늘은 파도소리가 함께 한다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
하는 1988년 푸른하늘 데뷔곡, '겨울 바다'를 자동으로 흥얼거리게 된다
'허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라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그래. 인도양 겨울바다에서 졸다 일어나 보는 밤하늘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별빛이 가장 어지러운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카리나 에타별 밑으로 육안으로도 거대한 성단이 빛난다
생각할 것도 없이 3532번이겠지.
NGC 3532
자기 전에 세워 놓은 쌍안경으로
내가 자고 있던 4시간 동안 숙성된 3532번 성단을 향한다
아 너는 정말...
굳이 망원경이 아니어도 (망원경이면 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겠지만)
고작 70mm 쌍안경 만으로도 3532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황홀하다
나는 항상 모든 대상을 본 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가 관측한 3532의 모습과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의 것도, 하늘의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아름다움.
망원경으로 3532를 관측할 때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자태를 3532의 별칭인 'Wishing Well' 이미지로 대체하곤 했는데
쌍안경으로 본 3532는 소원 비는 연못보다는
우유 광고에 나오는 왕관 마크와 비슷하게 보인다
내일 또 봐 줘야지.
Carina 인근의 대상들을 내키는 대로 훑어보고 있는데
3시 20분쯤, 정동쪽 방향에 이상하게 밝은 기운이 있다
황도광인가?
3시 35분, 황도광이면 황도에 걸쳐서 빛이 날 텐데
사자랑 센타우르스 양쪽에서 같이 찔끔 찔끔 밝아진다
야 누가 황도광이야 형이 혼 안낼테니 손 좀 들어봐
진전 없는 황도광 찾기 수사를 포기하고 다시 하늘 감상
3시 40분, 거대한 석탄자루 성운이 남쪽나라 은하수를 '검게' 빛낸다
하.. 기가 막히는 자태. 이건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다
(출처 : http://archive.victoria.rasc.ca/gallery/John/images/2008/152-Crux_and_Coalsack.jpg)
궁수자리 은하수 조각의 검은 연못 Barnard 92번이 작은 웅덩이라면
(출처 : http://www.capella-observatory.com/images/DiffuseNebula/Barnard92.jpg)
석탄자루는 바이칼호 정도 될까?
쌍안경으로 그 호숫가에서 NGC 4755, 내 마음의 보석상자도 찾아 본다.
작은 성단이지만 워낙 특별한 아이라 10배율로도 그 특징은 구분할 수 있다
3시 45분, 황도광의 위치는 이제 확실해졌다
사자와 센타우르스 사이의 처녀자리에서 사자자리 방향으로 뻗어 있다
그런데 그게 주변 하늘에 비해 그 밝기가 너무 희미해서 별 감흥이 없다
에이 이게 뭐라고.. 그래도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니 열심히 봐 준다
사자로 향해 있는 황도광을 보다 보니 사자 머리 위로 목성이
'내가 이렇게 눈 똥그랗게 뜨고 있는데 그냥 지나칠거냐' 며 눈을 부라린다
그래 그래 봐 줄께 근데 나 오늘 쌍안경 밖에 없다니깐 그러네
목성이 원래 10배율로도 잘 보이나?
목성의 갈릴레이 위성들은 모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影현상이 하나 보일 법도 한데.. 흠 어제 시도한 시리우스의 흑점보다는 쉽겠지
시간은 새벽 4시를 지났다. 박명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3532를 다시 보니 아까보다 더 예뻐졌다
곧 밝아질텐데 넌 어쩌려고 그러니
하루종일 시계바늘 놀이를 하고 있는 마젤란들.
마젤란 시계는 6시 정각을 가리킨다
작은 바늘(SMC)은 이제 희미해졌고
큰 바늘(LMC)은 최대 고도로 남중하여 하늘 높이 떠 있다
얼마 전 초딩 1학년 딸래미가 학교에서
수학 시간에 '시계 보는 법' 시험 본 시험지를 가져왔는데
5시 정각을 5시 12분으로 쓴 것이 생각나서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
쌍안경으로 LMC를 잡으려 하니
하늘의 그라데이션이 달라지고 있다.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대상이 될 것이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어젯밤과는, 저녁에 본 모습과도 다른 대상이다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4/Large.mc.arp.750pix.jpg)
LMC 본체에 Tarantula와 여러 성운기를 조합해보면
마치 먹이를 주워먹는 멧돼지 한 마리가 떠오른다
망원경이 있었으면.. (2)
마젤란의 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넋을 놓고 쌍안경을 쳐다본다
LMC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동안 박명과 함께 SMC는 자취를 감췄다
오늘의 관측을 마무리 할 시간..
하늘이 조금 밝아지니 캠핑장 내의 이정표가 하나 보인다
해변 가는 길이란다
몇 걸음을 옮기니 바로 해변이 나타난다. 이러니 파도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지..
해변 반대편도 5도 이상 올라오는 것 없이 완벽한 시야.
(캠핑장은 나름 큰 나무들로 구역 표시가 되어 있어서 사방이 20도 가량 시야를 가린다)
해 지기 전에 도착했다면 해변에 자리를 폈었겠지.
해변가를 서성이는 동안 인도양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스케일의 그라데이션이 살아 움직인다
삼각대에 쌍안경 대신 미러리스 카메라를 바꿔 달고
어설픈 솜씨로 25분간의 하늘색 변화를 담아 본다
새벽 5시가 넘자, 인도양 수평선 너머로 환상적인 비너스 벨트(Belt of Venus)가 나타났다
아 이건 정말..
내가 핑크색을 좋아해서 비너스 벨트를 더 예뻐하는지도 모른다
비너스 벨트 아래로 짙은 푸른색의 지구 그림자가 점점 내려오다가
어느 순간 모든 색이 희미해지고
5시 18분, 춤추던 비너스 벨트는 15분만에 하늘에서 사라졌다
(바닷물에도 비너스벨트의 색이 비쳐 보인다)
비너스벨트가 완전히 사라지고 1분 뒤, 반대편 수풀 위에서는 태양이 떠올랐다
끝!
하룻밤이 지나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거친 백사장을 홀로 걸어본다
밀물이 빠져나간 자리의 모양이 마치
비행기 안에서 시베리아 어느 산맥을 내려다 보는 듯 하다
여기가 인도양인가? 인도양 바닷물은 태평양이랑 다를까?
한입 맛 좀 보려고 바닷물에 손을 담갔는데
무언가 징그러운 것들이 물 속에 칭칭 감겨 있어서
입에 손가락까지 넣었다가 혀에 대 보지도 않고 도로 뺐다 (의외로 비위 엄청 약함)
오늘도 머리는 감아야지.
다른 캠핑족들 일어나기 전에 해변가 풀숲에서 머리 감고 세수하고 양치에 가글까지.
600ml 생수 3통이면 충분하다
호주의 캠핑족들은 10시 전에 대부분 자는데, 그렇다고 빨리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이 많아서 (차량 5대) 아쉽게도 음악을 틀어놓지 못했다.
별과 음악은 친구인데 말이야.. (파도소리로 음악을 대신했다)
피너클스에서의 암담함과 이름 모를 인도양 앞바다에서 만난 놀랍도록 아름다운 하늘.
뭐가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선택이 초래한 극과 극의 비현실적인 결과이다.
사실 저녁 시간에 100km 남쪽 피너클스 사막에서는
끊임없이 구름을 생성해서 북쪽으로 밀어내는 중이었기 때문에
북쪽으로 100km 올라간다 해도 상식적으로는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피너클스에 남아 있었다면 저녁 시간에 구름 재고를 모두 소진하고
석회암 기둥 사이로 더 환상적인 하늘이 보여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이 곳 인도양 바닷가에서 피너클스가 어찌 되었던지
하나도 아쉽지 않을만한 하룻밤을 보냈다
공원 관리자와 언제 마주칠지 맘 졸이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은, 37년간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의 결과이다.
그게 옳던 그르던, 성공했던 실패했던 그 크고 작은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 선택을, 그리고 그 결과를 더 사랑해 주어야겠다
오늘은 칼바리까지 올라가 보자.
삼각대와 캠핑의자 등 지난 밤의 흔적들을 트렁크에 던져넣고
시리얼바와 함께 요플레를 하나 뜯어서 마시고
타이머 맞춰서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어 주시고
새벽 6시 5분, Green Head의 Point Louise 캠핑장을 출발했다
☆☆☆☆☆☆☆☆☆☆☆☆☆☆☆ 3편 끝 ☆☆☆☆☆☆☆☆☆☆☆☆☆☆☆
#1. 바람 좀 쐬고 올께요. 서호주에서
#2. 별이불이 제일 따뜻해
#3. 피너클스와 인도양, 쪽박과 대박 사이
#4. 자연의 창으로 우주를 바라보다
#5. 별 찾는 수도승
Nightwid 無雲
1) 식당은 그냥 지나치셔도, 사막에서 머리는 매일 감으시는군요.
하루가 상쾌하려면 머리를 감고,
일주일이 상쾌하려면 손톱 발톱을 깎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맑은 정신으로 별 찾아 고행하는 순례자가 따로 없네요.
2) 낮선 밤하늘 구경 잘 했습니다.
이미 몇 번 보신 하늘이라 길은 쉽게 찾으시겠습니다.
그런데 케냐는 적도가 지나는 곳이지요 ?
거기는 밤하늘 일주모양이 좀 심심하고 숨막혀 보일 것 같습니다.
좀 기우뚱해야 편안해 보이고, 잔 재미도 있지 않을까요.
사람처럼....
마다가스카르는 어떠신지요.
그 섬은 아프리카 옆에 있지만 호주에서 떨어져 나왔다네요.
3) 피너클스 참 신기합니다. 지질학 공부도 잘 했습니다.
영겁의 세월이 지나면 저들도 그냥 모래로 사라지겠지요.
그 전에 저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와야 되는데...
사진도 많이 올려 주셔서 같이 여행 다니는 기분입니다.
자연의 창으로 바라본 우주 모습은 어떤지 다음편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