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ro News Serial No 7. Vol No I
1st issue of May 2012
<목 차>
I. Life with Kaas
비너스 벨트와 분홍 립스틱
II. Transit of Venus Special
(1) 왜 유럽열강은 일면통과 관측에 엄청난 국력을 쏟아 부었나 ?
(2) 태양 투영판을 이용한 관측 시작
(3) 태양시차를 이용해 AU 구하는 방법 등장
(4) 일면통과와 천문학 발전
1. 1639년 – 관측열풍의 전주곡
2. 1761년 – 본격적 AU 탐구
3. 1769년 – 일면통과에 유럽이 한 몸으로
4. 1874년 – 카메라 등장으로 사진촬영 시작
5. 1882년 – 드디어 정확한 AU를 구했다 !
6. 2004년 – 외계행성 탐사에 이용
(5) Guillaume Le Gentil
지독히 운 없는 사나이 - 일면통과에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6) James Cook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 일면통과 없었으면 호주는 지금도 원주민 땅
(7) 일면통과 관측 Tip
(8) Black Drop 현상
(9) 허블 망원경은 금성 일면통과 때 뭐하나 ?
III. Surprise & Mystery
영광의 탈출 ! – Hipervelocity Stars
(1) 바다뱀자리 SDSS J090745.0+024507
(2) 황새치자리 HE 0437-5439
(3) 고물자리 RX J0822-4300
<본 문>
I. Life with Kaas
비너스 벨트와 분홍 립스틱
6월엔 금성 일면통과 때문에 다른 천문현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호 예고편에 이어 이번에는
Transit of Venus Special 이란 칼럼을 별도로 만들어 보았다. 기사 분량이 너무 많아져 Surprise &
Mystery 칼럼까지만 게재하고 나머지는 다음호로 이월한다.
금성 일면통과 관측의 메인 이벤트에 전에 워밍업 겸해서 Venus 이름이 들어간 천체현상부터 살펴본다.
이 소재는 관측부 조강욱 차장님께서 지난 2월 댓글로 제안하신 것을 칼럼으로 만든 것이다.
비너스 벨트는 영어로 The Belt of Venus 또는 Venus’ Girdle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자속옷 상표와는
아무 관련없으므로 오해 마시도록. 더욱이 이름에 Venus 가 들어가긴 하지만 행성인 금성과도 전혀 관계없다.
먼저 비너스 벨트 사진부터 몇 개 보고 시작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분홍빛 띠를 비너스 벨트라고 한다.
이 현상은 아침노을, 혹은 저녁노을은 아니다. 노을 현상에 대해선 이 칼럼 끝 부분에서 간단히 설명 드린다.
여러분 모두 분명히 지금까지 이런 현상을 몇 번은 보셨으리라 생각되나, 이것의 이름이 비너스 벨트인지
모르고 지나치셨을 것이다.
<분홍빛 띠가 비너스 벨트입니다>
<맨 아래쪽 희미한 푸른 부분은 바다입니다>
<미국 San Francisco >
우선 비너스 벨트의 의미부터 알아본다. 금성의 허리띠 ? 이러면 전혀 이해가 안되실 것이다.
금성이 영어로 Venus 이지만, 이것은 금성과는 관계 없고, 로마 신화 여신인 Venus 이름을 따서 만든 것
이다. 그러면 Venus 여신의 허리띠 가 되겠는데, Venus 여신이 허리가 엄청 길었는지, 사진에서 보시는
비너스 벨트는 그 폭이 장난이 아니다. 왜 Venus 여신은 이렇게 폭이 넓은 허리띠를 하고 다녔을까 ?
비너스 벨트란 이름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 (재위기간: 1837~1901) 패션을 참고해서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시대 Belt (허리띠) 모양을 알아보아야겠다. 아래에 올리는 당시 여성 패션 그림을 보면, 허리띠가
단순히 허리 조이는 기능을 넘어서 하나의 패션임을 알 수 있다.
<당시 Victorian Style. 오른쪽 여성의 허리띠를 자세히 보세요>
이 시대 여성들의 패션을 Victorian Style 이라고 하며 지금도 패션용어로 정착되어 있다. 현대에 와선 각
부분이 현대적으로 변형되어 사용되며, 용어는 <Victorian + 각 부분 명칭>이다. 예를 들면 Victorian Shoes, Victorian Hat, Victorian Dress, Victorian Chair 등등. 위 그림의 오른쪽 여성 허리띠처럼 폭이 넓은 허리띠를 Victorian Belt 라고 하는데, 지금은 Style 이 현대적으로 변형되고 소재도 직물, 가죽, 금속제 체인 등으로
다양해졌다. 아래에 요즘 사용되는 Victorian Belt 사진 올린다. Victorian Girdle 도 보시면 Venus’ Girdle
이란 말이 더욱 잘 이해 되시겠으나, 속옷이므로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Victorian Belt 를 한 모델>
<또 다른 요즘의 Victorian Belt>
비너스 벨트는 구름 없는 맑은 하늘에서 태양 반대편인 일출직전 서쪽, 또는 일몰직후 동쪽에 지평선
(혹은 수평선) 부근 10~20도 위에 펼쳐지는 분홍빛 띠를 말하는데, 가끔 암대 (暗帶) 가 밑에 깔리고
그 위에 층을 이루어 보이기도 한다. 암대는 영어로 Earth’s Shadow 또는 Dark Segment 라고 하며, 일출
직전이나 일몰직후의 시민박명 (Civil Twilight) 바로 아래의 어두운 띠를 의미한다. 이해 쉬우시도록 위의
사진 중 한 개 골라서 설명을 추가했다. 아래 사진 보세요.
<비너스 벨트와 암대의 구분>
비너스 벨트 색깔이 핑크색인 이유는 태양의 붉은 빛의 일부가 후방산란 (Backscattering)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후방산란이란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180도 정반대 방향으로 반사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에서
비행기를 태양, 발사되는 레이더를 태양빛이라고 가정하고 A 의 레이더 빛을 땅으로 비추면 A, B, C 여러 방향
으로 산란되는데, 그 중에서 빛이 나온 방향인 B 로 산란되는 현상을 후방산란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 용어의
정확한 의미와 분홍빛이 보이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제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나중에 아시는 분께 문의
드려보겠다.
<후방산란 설명>
Tony Flander (미국) 이란 분이 이 현상을 사진에 담으려고 작심하고 기다렸다가 찍은 결과를 아래에서
살펴본다. 일몰직후 태양이 진 반대편 동쪽 하늘에 엷은 분홍빛 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래 첫번째 사진)
<일몰직후>
일몰 3분 뒤 분홍빛은 어둠과 섞여서 점차 흐려진다. 분홍빛 아래로 가느다란 파란 하늘이 나타난다. 사진
중간에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아래 사진)
<일몰 3분후>
아래 사진은 일몰 6분후에 찍은 사진인데, 분홍빛 아래로 좀 더 짙은 푸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푸른색을 암대라고 한다. 사진 중간에 있던 사람이 오른쪽 끝까지 걸어가서 조그맣게 보인다. 일몰
15분 뒤에는 아래 사진의 분홍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지평선을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몰 6분후>
비너스 벨트는 맑은 하늘 에서만 나타나지만, 노을은 하늘 높이 떠있는 구름이나 먼지 가 햇빛에 반사, 산란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어로는 Afterglow 라고 하며, Morning glow (아침노을), Evening glow (저녁노을)
등으로 불린다. 아래에 사진 두개 올린다.
<구름에 비친 노을>
<먼지에 비친 노을.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 때 홍콩까지 날라온 먼지로 생김>
비너스 벨트 보시면서 우아하게 식사라도 하시면 좋겠으나 지속되는 시간은 10 분밖에 안되므로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Tiffany’s 매장 앞에서 샌드위치나 먹는 Audrey Hepburn 이 아닌 다음에야. 대신에 연인
혹은 남편, 사모님과 우주가 만드는 예술을 손잡고 함께 감상하실 시간은 충분히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저는
비너스 벨트 사진의 아련한 분홍빛 보고 있으면 강애리자 노래 분홍 립스틱이 생각나는지…. 아직 인격이
유행가 가사 수준이라 그런가 보다. 이 노래는 24년 전에 나왔다니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기분 전환
위해선 근자에 리메이크 된 송윤아 버전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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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Transit of Venus Special
(1) 왜 유럽열강은 일면통과 관측에 엄청난 국력을 쏟아 부었나 ?
18~19세기에는 영국이 군사적으론 가장 강했으나, 문화에선 프랑스가 앞서가고 있었다. 최강국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모든 국가에서 프랑스어와 패션, 음식 이름을 모르면 행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력 경쟁뿐만 아니라, 문화, 과학에서도 국가와 왕실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각축을 벌였는데, 금성, 수성 일면
통과 관측도 그 경쟁중의 하나였다.
당시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열강은 엄청난 자금을 들여 천문학자가 동승한 일면통과 관측 탐험대를 세계
각지로 보냈다. 물론 식민지 개척 및 향료 원산지 보호의 목적도 같이 갖고 있었다. 17세말까지 태양-지구
거리에 비교된 지구-행성 거리의 상대적 비율은 계산되어 있었으나, 태양-지구 사이 거리의 절대값은 산출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18세기 들어와선 태양-지구 거리를 먼저 알아내는 일이 국가적 명예 및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명제였다.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문화 및 과학의 강대국이 안되면 본질적인 강대국
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면통과 관측의 궁극적 목표는 태양-지구 사이의 정확한 거리 (AU-Astronomical Unit) 를 구하는 데 있었다.
일면통과를 정확히 관측해서 태양시차 (Solar Parallax) 를 알 수 있으면 AU 를 알게 되고 거기에 케플러
제 3법칙을 이용하면 태양계 각 행성들의 거리와 구조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양시차는 각도가 아
니라 일면통과 시간차이를 의미하며, 태양시차를 이용해서 AU 를 산출하는 대강의 원리는 아래에서 설명
드린다.
참고로 AU의 정의는, 타원인 지구 공전궤도에서 긴 쪽 공전궤도 지름의 1/2 (장반경, Semimajor) 을 의미
한다. 1976년에 국제천문연맹은 AU를 현대적으로 복잡하게 다시 정의했으나 그 원래 의미는 변함없다.
지금까지 측정된 가장 정확한 수치는 아래와같다
1 AU = 149,597,870,700 meter (오차 ± 30 meter)
케플러 제3법칙은 조화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행성 공전주기 (P) 제곱은 그 행성궤도 장반경 (a)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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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양 투영판을 이용한 관측 시작
인류가 최초로 금성 일면통과 관측한 방법은 태양 투영판을 통한 관측이었다. 지금도 태양 관측할 때 많이
사용한다. 그러면 이 방법은 누가 발명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었으나 Galileo
Galilei 및 Christoph Scheiner (1573 또는 1575~1650) 란 독일 성직자 겸 천문학자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Galilei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 그냥 넘어가고, Christoph Scheiner 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
1608년 Hans Lipperhey 가 망원경을 특허 신청하고 2년 후인 1610년 Galilei 는 목성의 4대 위성을 발견한다.
바로 이 시기부터 태양 투영판이 사용된 것 같다. Scheiner 는 1611년부터 태양 투영판을 사용해서 태양 흑점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래 그림은 그가 태양 관측하는 모습이다. 오른쪽 의자에 않아 있는 사람이 Scheiner
이고 투영판 조작하는 사람은 그의 조수이다. 그는 Helioscope 라는 태양 관측기구를 최초로 만들어 사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Christoph Scheiner 초상화>
<Scheiner 의 태양 투영판 사용한 관측>
<Scheiner 가 발명한 Helioscope>
또한 Scheiner 는 Pantograph 라는 도구 발명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것은 어떤 도형을 복사, 확대, 축소할
수 있는 기구이다. 저는 이것을 초등학교 때 갖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와서야 누가 발명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래에 그림 올려 드린다.
<Christoph Scheiner 가 발명한 Panto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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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태양시차를 이용해 AU 구하는 방법 등장
한편, 1663년 영국 Scotland 수학자인 James Gregory 가 수성 혹은 금성 일면통과시 태양시차 이용해서
AU를 구할 수 있다고 그의 책 Optica Promota 에서 발표한다. 영어로 Optics Promoted 란 말이며, 이 책은
주로 그가 개발한 Gregorian 식 망원경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핼리혜성으로 유명한 Edmund Hally 가 이 책에 자극을 받아 1676년 에 수성 일면통과를 열심히 관측했으나
열악한 장비 때문에 AU 산출은 실패했다. 그는 다음 금성 일면통과인 1761년까지는 살지 못할 것을 이미
알았으나 평생을 일면통과를 이용해 AU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1742년 사망했다.
<금성 일면통과시 AU 구하기>
위의 그림에서 태양-지구 사이의 작은 점이 금성이다. 일면통과일에 유럽 어느지점 L-1 에서 관측하면 금성
궤적이 태양 아래쪽에 나타나고 그 때의 통과 시간을 T-1 이라고 한다. 같은 일면 통과일 혹은 다음번 통과
일에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남부 같은 지역 L-2에서 관측한 시간을 T-2 라고 한다면 T-1과 T-2
사이엔 미세한 시간차이 ΔT 가 날 것이다. 한편 L-1과 L-2 사이의 지구상 거리 (D) 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ΔT 와 D를 사용해서 AU를 계산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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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면통과와 천문학 발전
1. 1639년 – 관측열풍의 전주곡
지난호에서 영국의 Jeremiah Horrocks 가 그의 친구 William Crabtree 와 같이 역사상 최초 관측기록을
남긴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관측일자를 11월24일 (영국시간) 이라고 적었는데, 이는 당시 율리우스력
(Julian Calendar)를 사용하던 영국의 날짜이며, 지금 사용하는 그레고리력 (Gregorian Calendar) 으로는
12월4일 이 된다. 참고하시기 바라며, 지난호에 보완, 수정해 놓았다.
Crabtree 도 역사상 최초로 관측한 두 명중의 한 명이므로 관측 모습 올려 드린다. 1639년 당시 Horrocks 는
21세이고, 그의 친구라는 Crabtree는 29세였다. 그림에는 노인처럼 그려 놓았다. 옛날 사람들은 조숙했나보다.
이 분도 단명해서, Horrocks 보다는 조금 더 오래 살았으나 34세를 넘기지 못했다. 가끔씩 태양 품에 안기는
Aphrodite 여신을 최초로 훔쳐본 두 명이라, Aphrodite 가 노하셨는지....
<Crabtree 가 집에서 관측하고 있다>
<Crabtree 의 집이었던 자리에 있는 표지판>
Horrocks 가 사망 (1641년) 한 이후인 1661년에 출판된 자료에 따르면 Horrock 도 1 AU 를 계산 했는데,
그 결과는 95,592,420 km (59.4 백만 mile)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정말로 AU를 계산 했는지는 저로서는
확실히 믿을 순 없다. Horrocks 는 천재였으므로 태양시차를 이용한 방법이 아닌,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법으로 AU 를 계산했을 수도 있다.
Horrocks 는 Preston 지역에서 관측했고, Crabtree는 Manchester 의 집에서 관측했는데, 두 지역은 겨우
40 km 떨어져 있다고 하므로 태양시차는 없었을 것이다. 아래에서 보시겠으나, 충분한 태양시차를 확보하기
위해 유럽열강들은 아프리카, 인도, 남태평양 등 당시에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함대를 파견했다. 더욱이
태양시차를 이용한 방법은 1663년에 발표되었는데, Horrocks 의 관측은 1639년이었다. 하여간 그가 정말로
AU 를 계산해냈다면, 실제와 차이는 있으나 그 시대에 벌써 AU 를 산출한 Horrocks 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2. 1761년 – 본격적 AU 탐구
Hally 의 많은 노력에 힘입어 1761년엔 드디어 유럽 열강이 국가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다. 식민지 개척과
더불어 금성 일면통과 관측을 목적으로 인도, 캐나다 동부, 아프리카 희망봉 및 마다가스카르 섬, 시베리아
등으로 탐험대를 보냈던 시기인데, 전 세계 62 곳에서 9개국 천문학자 120여 명이 관측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때 유럽에선 날씨가 좋지 않아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이 시기 인도로 원정 갔던 프랑스 천문학자
Guillaume Le Gentil 의 안타까운 여정을 아래에서 자세히 소개 드린다.
Nicolas Ypey 라는 천문학자의 1761년 일면통과 스케치를 아래에 올린다. 스케치 장소에 대한 정보는 없다.
금성보다 태양을 멋있게 그리는데 더 신경 쓴 것 같다. 그런데 1761년 일면통과는 Descending Node 였는데
(Serial No 6 참조), 스케치는 Ascending Node 처럼 보이지만 Mirror reversed 이므로 참고 바란다.
<Nicolas Ypey 의 1761년 스케치. Mirror reversed >
3. 1769년 – 일면통과에 유럽이 한 몸으로
이 시기부터는 일면통과 관측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배려가 특징이다. 사실 영국과 프랑스는 7년 전쟁중
이었으나 양국은 일면통과 명제 앞에선 서로 협력하기 시작한다. 대의를 위한 국제적 협력이다.
예를 들면, 영국 해군은 1761년 프랑스 천문학자 Alexander Guy Pingre 이 관측여행 가는 길에 영국 점령지
이지만 길을 내 주었고, 1769년 관측을 위해 영국의 James Cook 선장이 Tahiti 로 항해할 때도 프랑스 해군은
“그의 항해는 한 국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인류를 위한 여행이므로” Cook 선장의 Endeavour 호를 공격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18세기엔 유럽 모든 국가가 금성 일면통과 에 관해선 지금의 EU 처럼 한 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음흉한 영국은 아래 칼럼에서 보실 것처럼 Cook 선장에게 남쪽 신대륙 탐사라는 비밀임무도 같이 주어
보낸다.
Hornsby 는 1771년 그의 논문에서 1 AU 를 150,834,700 km (93,726,900 mile) 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위에서
말씀 드린 현재 수치와 약 0.8 %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비로소 인류가 제대로 된 AU 를 알게 된 시대이다.
4. 1874년 - 카메라 등장으로 사진촬영 시작
<Henry Chamberlain Russell 의 1874년 스케치>
위 그림은 호주 Sydney 천문대의 H. C. Russel 의 스케치이다. 어떤 자료에는 이름이 틀린 것도 있다.
그림은 Mirror reversed 로서, 금성이 그림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진행해 가면서 내접탈출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금성의 극 부분 경계면이 약간 밝게 보이는 것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이때는 1839년에 발명된 카메라가 더욱 발전되어 있었고, 망원경이 기술적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더욱
세밀한 관측이 가능해졌다. 1874년엔 유럽 강대국 모두 탐험 선단을 파견했고, 망원경과 더불어 카메라도
탐험대의 필수품이 되었다. 남극에 가까운 인도양 남쪽 Kerguelen Island 까지 함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곳에서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카메라 사용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아래 사진은 1874년 호주 시드니 천문대 (Sydney Observatory) 가 New South Wales 주의 Eden으로 일면
통과 관측원정 갔을 때의 사진이다. 앉아있는 사람이 William Scott 천문대장 (1st Astronomer), 사진에서
그 앞 왼쪽에 4.5 inch 망원경 옆이 MacDonnel 천문대원, 사진에서 그 왼쪽 3.5 inch 망원경 옆이 Watkins
천문대원, 망원경 옆에 걸터 않은 사람은 정부 파견 사진사 Sharkey 라고한다. 맨뒤의 왼쪽 다리 떨고
있는 사람은 이 관측지 세운 목수라는데, 천문대와 관계 없는 두사람은 자세가 삐딱한 것이 재미있다.
<천문대장이 옆에 있으니 천문대원은 차렷자세.
그에게 잘 보일 필요없는 정부파견 사진사는 널빤지에 걸터앉고, 목수는 다리 떨고....>
아래 사진은 미국 New York 주 Poughkeepsie 시에 있는 Vassar College 천문학 교수인 Maria Mitchell 이
찍은 1882년 일면통과 사진과 이 사진을 찍은 대학천문대 망원경이다.
<Maria Mitchell 이 찍은 1882년 일면통과>
<Maria Mitchell이 사용한 Vassar Colllege 천문대 망원경>
아래 사진은 1882년 미국 해군천문대가 찍은 유리건판 사진이다. 태양원반 주변에 보이는 희미한 여러 점들은
유리건판의 오염이다.
<미국 해군천문대의 1882년 일면통과 사진>
1882년 일면통과 관측 후 미국 천문학자 Simon Newcomb 는 지난 4번의 일면통과 기록을 토대로 1 AU를
1억 4,959 만 km (± 31만 km) 라고 발표했다. 드디어 실제 수치와 0.005 % 차이 밖에 안나는 거의 정확한
AU를 알게 되었다. 그 시대 망원경만 가지고 이 정도 수치를 알아낸 천문학자들이 존경스럽다.
6. 2004년 – 외계행성 탐사에 이용
<2004년 일면통과 사진>
최근 천문학계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외계행성 (Extrasolar Planets) 탐사이다. 목성 크기 되는 거대 행성을
찾을 때는 어떤 거대행성이 항성을 공전할 때 행성의 엄청난 중력으로 인해 항성이 다소 흔들리게 (Wobbling)
되는 것을 이용해서 찾아낸다.
그러나 지구 크기의 소형 행성은 중력이 작아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없고, 항성 앞을 지나갈 때 항성의 광도가
미세하게나마 감소하는 것을 이용한다. 2004년 일면통과 때는 금성이 태양을 지나갈 때 태양의 광도가 0.001
등급 줄어드는데, 이를 쉽게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외계행성 탐사에 이용하려는 것이 천문학계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였다.
지난 수세기 동안은 금성의 일면통과가 태양계 모습을 알려주는데 기여했다면, 이제는 지구 이외에 외계
생명체가 있을 만한 행성을 찾는데 공헌하고 있다.
- Astro News –
(5) Guillaume Le Gentil
지독히 운 없는 사나이 - 일면통과에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일면통과 관련해서 인상적인 활동을 한 두 분을 소개 드린다. 한 분은 프랑스 인으로 11년간의 청춘을 바친
사람이고, 한 분은 너무도 유명한 영국의 Cook 선장이다.
먼저 Guillaume Joseph Hyacinthe Jean-Baptiste Le Gentl de la Galaisiere (1725~1792) 란 긴 이름을 가진
프랑스 천문학자의 여정을 살펴본다. 이름을 보니 고향, 종교, 조상 이름들이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여기선
줄여서 Le Gentil 로 쓴다. 이 분은 Messier 목록 M8, M32, M36, M38의 최초 발견자로 알려져 있고, 백조자리 (Cygnus) 암흑성운 Le Gentil 3 의 목록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왕실의 지원으로 1761년에 일어날 금성 일면
통과 관측을 목적으로 35세인 1760년에 인도 Pondicherry 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11년간 고난의 여정의
시작이었다.
<Le Gentil 초상화>
그는 청년시절부터 천문학자로서 금성 일면통과를 이용해 AU를 측정하는 국제공동 프로젝트 회원으로 활약
했다. 이 프로젝트는 각국의 왕실이 지원했고, Edmund Hally 이론을 기반으로 1761년의 일면통과 때에 유럽
에서 가능한 최대한 먼 지역으로 여러 국가 회원들 약 100여명을 파견해 관측하기 위한 국제적 조직이었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말로 의지의 한국인이란 말이 있다. 이 분의 여정을 보니 의지의 프랑스인 칭호를
받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장황하지만 금성 일면통과 관측에 목숨 건 그의 의지가 존경스러워 여행길을
자세히 살펴본다. 아래 지도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여정을 지도로 그린 것이다. 정확하진 않으므로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Le Gentil 의 11년간 일면통과 관측여정>
1760년 3월 - 파리 출발. 목적지는 인도의 프랑스령 Pondicherry. 당시 35세.
1760년 7월 - 프랑스령 Mauritius 중간 기착.
여기서 영국-프랑스 7년 전쟁 소식 들음.
Pondicherry 가 전략적 요충지라 위험하므로 그 아래쪽 프랑스령
Coromandel Coast 로 목적지를 바꾸어 출발.
1761년 3월 - Coromandel Coast 에 도착.
그러나 영국의 Pondicherry 점령소식에 Coromandel Coast 도 위험하므로
다시 Mauritius 로 돌아가기로 하고 출발.
1761년 Mauritius 로 돌아가는 인도양 바다 배 위에서 6월 7일의 일면통과 맞음.
이 날 날씨는 더 없이 좋았으나, 요동치는 선상에서 세밀한 망원경 관측은
불가능했다. 전쟁 때문에 아까운 기회를 놓친 셈. 여기에 열 받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다음 일면통과까지 8년을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1761년 7월 아프리카 동해안 Madagascar 주변 해안지도 작성하고, 필리핀 등에서 거주함.
1768년 일면통과 관측 위해 인도의 Pondicherry 로 돌아감. (프랑스가 1763년 재 점령).
1769년 Pondicherry 에 6월4일 폭풍이 불어 또 관측에 실패하게 된다. 그 전날과
그 다음날은 날씨가 더 없이 좋았다고 한다. 8년의 인내가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1771 년 10월 프랑스로 귀국. 당시 47세.
아래 사진은 Le Gentil이 1769년에 가서 관측했던 인도 Pondicherry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프랑스가
재점령하려 영국과 전쟁하면서 폐허가 된 모습이 나타나있다. 가운데 깃발 오른쪽 건물이 총독 관저인데,
Le Gentil 은 이 건물에 망원경 설치하고 1769년 일면통과를 보려했으나 날씨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파리로 돌아가자 자기가 이미 법적으로 사망처리 되어있었고 프랑스 Royal Academy Science
에서도 사망으로 제명되어 있었다. 그의 부인은 이미 다른 사람과 재혼했고, 친척들이 그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아 갔다. 지루한 소송 끝에 결국 국왕이 개입하여 신분과 재산을 되찾게 해 주었다. 그도 재혼해서
이후 21년간 천문학에 종사하다 67세에 사망했다. 비록 11년간 죽도록 고생하고 결과는 없었으나, 하고
싶은 것 모두 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남은 인생은 행복했으리라.
1992년에 Mauren Hunter 가 일면통과 관측을 위한 그의 불굴의 의지와 힘든 여정을 연극용 희곡으로
출판했고, 2007년엔 Victor Davis 가 Opera로 만들었다. 아래는 그 Opera 광고사진.
<Opera – The Transit of 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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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James Cook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 - 일면통과 없었으면 호주는 지금도 원주민 땅
James Cook 선장 (1728~1779) 은 35세 때인 1763년에서 1767년까지 지금의 캐나다 동부해안
Newfoundland 지역 지도를 작성하면서 그의 항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더욱이 1766년 8월에 있었던
부분일식에 대해 정확한 기록을 남겨서 영국 왕실로부터 천문가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드디어 38세
때인 1766년, 영국 왕립학회 (Royal Society) 로부터 3년 후인 1769 년에 있을 금성 일면통과 탐험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James Cook 초상화>
한편 Cook 선장이 탐험대장으로 임명된 다음해인 1767년, 영국의 Samuel Wallis 란 탐험가가 남태평양에서
Tahiti 섬을 발견하고 영국에 돌아와 이 섬이 일면통과 관측의 최적지라고 왕립학회에 보고했다. 이 섬의
위도, 경도는 이미 확실히 알고 있는 상태라서 유럽의 어느 특정 지점으로부터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은 사실 일면통과 관측에 대형 함대를 파견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었는데, Tahiti 섬에 대한 보고를
듣고, 귀가 번쩍 트이게 된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남쪽 미지의 땅에 제일 먼저 영국 국기를 꽂고 싶어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그 땅이 정말 있는지 알 수 없고 막대한 비용 및 프랑스의 견제 때문에 국왕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Wallis 의 Tahiti 섬에 대한 보고를 기회로 드디어 남태평양에 일면통과 관측을 핑계로
Cook 선장에게 비밀임무도 같이 주어서 함대를 파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전인 1716년, Edmund Hally 는 적당한 관측지로 Hudson Bay (캐나다 동부), Norway, Molucca
Islands (인도네시아) 3 곳을 제안했었는데, 영국 해군은 왕립학회를 움직여, Hally 가 제안한 지역 중에서
Molucca Islands를 빼고, 남태평양에 위치한 적당한 섬을 제안하게 한다.
결국 국왕은 Tahiti 섬을 일면통과 관측지로 승인하고, Cook 선장에게 일면통과 관측의 공개된 임무 이외에
남쪽 미지의 땅 탐사란 비밀임무를 맡기게 된다. 1768년, Cook 선장은 천문학자 Charles Green, 스웨던
동식물학자 Daniel Solander 등 3명을 태우고 출발하여 1769년 4월에 Tahiti에 도착해서 요새를 세우고
Fort Venus 라는 이름을 붙였다.
<Tahiti 섬의 Fort Venus>
참고로 Tahiti 섬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섬은 당시 원주민의 Tahiti 왕국이었고, 1767년, 영국의 Samuel Wallis
가 최초 발견자이다. 다음해인 1768년 프랑스 탐험가 Bouganville 이 섬을 한바퀴 돌면서 측량하고 귀국한 후
이 섬이 지상낙원 이라고 선전한다. 나중에 고갱 같은 예술가가 이 선전에 feel 이 꽂혀 이리로 이주하기도 했다. 1769 년 방문한 Cook 선장이 유럽인으론 이 섬에 최초로 상륙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지상낙원은 결국 1880년
프랑스 식민지가 된다.
Cook 선장은 관측을 끝내고 봉인된 두번째 비밀임무 명령서를 뜯어본 후에, 당시엔 전설로만 전해지던
남쪽의 미지의 땅 (Terra Australis Incognita – 지금의 호주, 뉴질랜드 지역) 탐험하러 떠난다. 비록 일면통과
관측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그는 이 두번째 임무를 휼륭히 수행해 냈다. 그의 3년간의 탐험여정 지도를
올린다. 지도는 제가 그린 것이므로 아주 정확하진 않다.
<Tahiti 섬을 떠난 후 호주, 뉴질랜드 연안을 거쳐 계속 서쪽으로 전진,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귀국했다. 1768~1771년의 3년간의 탐험>
금성 일면통과 관측에서 중요한 시점은 태양의 외접, 내접을 각각 진입, 탈출할 때의 4가지 순간이다. 그런데
태양시차를 측정하려면 이 4가지 중에서도 특히 내접진입 (Contact II) 시각을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
이 시점부터 통과 시간을 재기 때문이다. 세부 사항은 다음의 칼럼 (6월 6일 관측의 Tip)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Black Drop 현상 때문에 Cook 선장은 이 순간의 정확한 시각 측정에 실패했다. 그는 본인을 한팀으로
하고 Green 및 Solander 두명을 한팀으로 해서 두팀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장소에서 관측하기로 했는데, 다른
관측 팀 결과도 역시 Black Drop 때문에 Cook 선장 결과와 6초씩이나 차이가 났다. Black Drop에 대해서도
역시 다음 칼럼에서 설명 드린다.
<Cook 선장과 Charles Green 의 스케치. 두 스케치 모양이 서로 다르다.
위 그림이 Cook 선장, 아래 그림이 Charles Green 의 스케치.
위 그림의 2번, 6번, 아래 그림의 4번이 Black Drop 현상>
왕립협회는 관측결과 보고서를 보고 Cook 선장과 Green 두 명에게 책임을 묻기로 한다. Green 은 귀국 도중
선상에서 사망했고, 살아 돌아온 Cook 선장은 호주, 뉴질랜드 연안 발견을 공로로 항의해서 가까스로 면책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만한 인물도 없었는지 1772년부터 1779년에 걸쳐 두 차례나 더 세계 탐사임무를 맡아
여러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영국의 영웅이 되었으나, 1779년 나이 50 세에 Hawaii 에서 원주민과의 전투 중에
사망한다.
1769년 금성 일면통과가 당시 40 대 초반 젊은 선장 James Cook 에게 신대륙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후 그는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은 물론 남극대륙 연안까지 지구의 모든 바다를 종횡무진 달렸다.
지금도 신대륙 주요 도시에 가면 그의 동상을 볼 수 있고, 그의 자취가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다. Aphrodite
여신이 한 시대의 아름다운 영웅 이야기를 만들어 냈지만, 10년을 안 넘기고 다시 빼앗아가 버렸다.
花無十日紅, 權美不十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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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면통과 관측 Tip
<북쪽을 고정한 2012 년 일면통과 궤적>
외접진입 내접진입 중심통과 내접탈출 외접탈출
Contact I Contact II Midtransit Contact III Contact IV
--------------------------------------------------------------------------------------------
서울지역 07시 10.6분 07시 28.2분 10시 30.3분 13시 31.1분 13시 48.5분
--------------------------------------------------------------------------------------------
금성의 시직경은 57.8” (초각) 으로 지구에서 보이는 행성 중 시직경이 가장 크다. 태양 시직경은 31.5’ (분각)
이므로 금성 시직경은 태양의 3 % 에 달한다. 따라서 필터 있는 안경 사용하면 육안으로도 금성의 일면통과를
볼 수 있다. H-α 필터 (Hydrogen alpha. 수소가스의 적색파장을 통해 보는 필터) 사용하면 더욱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다. 운 좋으면 금성이 홍염 (Prominence) 앞으로 지나가는 장관을 볼 수도 있을지도.
일면통과의 클라이맥스는 내접진입과 내접탈출이다. 이 두 지점의 시간이 위의 칼럼에서 살펴본 것처럼,
18~19 세기 AU 산출을 위한 태양시차 측정의 기준이다. 내접진입이란 금성이 정확히 태양면의 안쪽 경계선과
접하는 때이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시각을 산출하진 못했는데, 그 이유는 Black Drop 현상
때문이다.
비록 금성과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흑점도 (Sunspot)도 같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금성은 태양면에서 검게
보이겠지만, 흑점은 상대적으로 다소 밝아 회색처럼 보일 것이다. 금성이 태양면을 빠져나갈 때는 진입할 때와
반대 순서를 거쳐 서울 기준 오후 1시 48분 30초에 태양 품에서 벗어난다.
(8) Black Drop 현상
Black Drop 현상이란 내접진입 때 나타나는 것으로, 마치 물방울이 어떤 표면에서 떨어질 때 물의 표면장력
으로 인해 바로 떨어지지 않고 조금 늘어졌다가 떨어지는 것처럼 금성의 검은 반점도 잠시 동안 태양면 안쪽
경계선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은 수세기 동안 금성의 두터운 대기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으며 금성에 대기가 존재한다는 최초의 증거로 인용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지구 대기의 요동 및
지구 대기 내부에서의 빛 회절 현상 때문이다.
<1761년 일면통과 때에 Torbern Bergman 이 Black Drop 현상를 스케치 한 것.
아래부분 4, 5, 6번 그림이 Black Drop 현상>
그런데, 1999년과 2003년의 수성 일면통과 때에 지구대기 밖에 있는 TRACE 위성 (Transition Region and
Coronal Explorer) 가 촬영한 사진에 Black Drop 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발견되었다. 지구 대기 바깥에서
찍었고, 더욱이 수성에는 대기도 없기 때문에 의문은 가중되었다.
미국의 두 천문학자 Glenn Schneider (Univ. Arizona) 와 Jay Pasachoff (Williams College) 가 그 사진들을
자세히 검토한 결과 “사진에서 보이는 Black Drop 현상은 그 위성에 장착된 망원경의 광학계 및 분해능의
문제인 것 같다” 는 조심스런 의견을 내놓았다. 결국 분해능이 좋은 대형 망원경이면 Black drop 은 안보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2004년 일면통과 사진에 나타난 Black Drop 현상>
<또 다른 2004년의 Black Drop 사진>
그러나 우리는 수세기전 목숨 걸고 일면통과를 관측하던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특히 영국의 국민영웅
James Cook 선장을 지옥과 천당을 왕복하게 했던 이 악동을 결코 놓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현충일에
비오면 모든 게 꽝이다. 현충일 며칠 전에 미리 국립묘지 참배하고, 호국영령께 기청제 (祈晴祭) 라도 지내면
좋겠으나 참배객 많아 고생할 것 같다. 마음만 다녀오고 그냥 집에서 정화수 떠놓고 기도나….
(9) 허블 망원경은 금성 일면통과 때 뭐하나 ?
21세기 마지막 금성 일면통과인 6월 6일 허블 망원경 (이하 허블) 은 뭐하실건지 궁금하다. 사실 허블은 태양
필터도 못 챙기고 우주로 나갔기 때문에 주경을 태양 근처로 향했다간 내부 장치가 바로 통닭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블 연구팀도 이 중요한 시점에 한가하게 다른 대상 보고 있을 순 없다. 다음날 바로 책상 없어질지도
모르니까.
금성을 보긴 봐야 되겠는데, 태양을 직접 볼 수는 없어서 내놓은 대안이 금성 간접관측 이다.
프랑스 Grenoble 천문대 연구원 David Ehrenreich 가 이 방법을 제안해서 허블 연구팀 책상을 보전해 주었다.
그의 연구팀은 일면통과 때 달에서 반사되는 태양 빛을 분광 관측할 예정이며 그러면 일면을 통과하는 금성의
스펙트럼을 분석할 수 있고, 여기서 금성 대기 상층부의 황산 농도를 측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지구도 태양 빛을 반사해서 달을 비추는데, 개기월식 때 달에서 반사되는 지구의 빛도 측정할 계획이다.
이 반사된 지구의 빛 스펙트럼으로 지구의 오존층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금성 대기 상층부
황산 스펙트럼과 지구 오존층 스펙트럼을 비교해서 앞으로 발견되는 외계행성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지
판단근거를 만든다고 한다.
지구에는 생명이 있고 금성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란 걸 잘 안다. 그리고 현재도 많은 외계 행성들이
발견되고 있다. 만일 생명존재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위치 (Habitable Zone)한 외계행성이 발견되는 경우에
그 행성에 생명이 있을 만한지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라고 하며,
이미 지난 1월에 테스트도 끝냈다고. 달 중앙부에 위치한 Hipparchus crater 는 허블이 금성 일면통과 때에
관측할 여러가지 crater 중의 하나이다. 아래에 사진 올린다.
그런데, 금성이나 지구나 모두 허블이 직접 보고 쉽게 스펙트럼 찍을 수 있는데, 굳이 당구 쓰리쿠션 게임
처럼 어렵게 보려고 하는지 저로서는 알 수 가 없다.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이런 정보 쓰신 분에게
질문해 볼 생각이다.
<Hipparchus crater 위치>
<Hipparchus crater 정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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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Surprise & Mystery
영광의 탈출 ! – Hipervelocity Stars
우리 은하에만도 2,000 억개가 넘는 별들이 있고, 제각기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도 우리은하를 벗어날
생각은 못한다. 누구 노래처럼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네” 이다. 이유는 그들이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은하를 탈출할 만한 속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단속해도 쇼생크 탈출은
있는 법. 여기선 Galaxy Prison Break에 성공한 별들을 살펴본다.
<드디어 쇼생크 탈출 ! (The Shawshank Redemption) >
우선 우리 동네부터 생각해보면, 지구표면 탈출속도는 초속 11.2 km 이고, 태양표면 탈출속도는
초속 618 km 이다. 탈출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그 천체의 질량이다. 현재 로켓의 최고 속도는 초속
16 km 정도라고 하므로, 지구를 벗어나 태양까지 갈 수는 있으나, 태양에 착륙해서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시야를 좀 넓혀보면, 우리 은하탈출속도는 태양표면 탈출속도의 절반인 초속 300 km이다. 만일 우리가
지구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가려면 적어도 서울에서 대구까지 1초에 날아갈 실력은 되어야야 한다.
(서울ßà대구 KTX 거리 293 km 라고 함). 2005년 까지만 해도 우리 은하 내부에서 이런 속도로 날아다니는
천체는 찾을 수 없었다.
24년전인 1988년, 미국 Los Alamos National Observatory 연구소 Jack G. Hills 는 어떤 별이 우리은하를
탈출할 수 있는 경우를 수학적으로 제시했다. 만일 어떤 이중성 (Binary Stars) 이 우리 은하 중심부로부터
어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지나갈 경우에, 중심부 블랙홀은 이중성 한 개를 집어 삼키지만, 나머지 한개는
엄청난 속도로 블랙홀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는 이론인데, 영어로 Gravitational Slingshot 이라고 하며
우리말 용어는 모르겠으나, 그대로 번역하면 중력새총 현상이다. 잘 아시는 우주선의 Swing-by 효과에
응용되었다.
아래 그림은 초거대 블랙홀 (검은색) 이 이중성 중 안쪽의 푸른별 한 개를 잡아먹고 바깥쪽 노란색 다른 별은
엄청남 속도로 튕겨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배경의 회색 반점들은 블랙홀에 포획되고 있는 주변의 천체들
인데 블랙홀 중력으로 인해 천체의 형태가 으스러지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블랙홀 주변을 지나가던 이중성의 Slingshot 현상>
(1) 바다뱀자리 SDSS J090745.0+024507
이론이야 맞는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 2003년에 와서 실제로 그런 천체를 찾기
시작했는데, 수학이 우주의 언어임을 증명하듯, 2년이 지난 2005년에 그런 별 한 개가 발견되었다.
Warren Brown, Margaret Geller, Scott Kenyon, Michael Kurtz 등 4명 연구팀은 미국 Arizona 주 Tucson
에 있는 6.5 m MMT (Multiple Mirror Telescope) 를 사용해서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별이 엄청난 속도로
직선 운동하는 것을 발견하고 Outcast 란 별명을 붙인다.
나중에 정식 명칭으로 SDSS J090745.0+024507 (또는 SDSS J090744.99+024506.8) 이란 복잡한 이름이
붙었는데 SDSS는 Sloan Digital Sky Survey 의 약자이고, 뒤의 숫자는 J2000 Coordinate Systems
(J2000 좌표계) 를 천체이름으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좌표계는 제가 아직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알게 되면 나중에 언급 드리겠다.
이것은 오늘도 우리은하 탈출속도의 2배가 넘는 속도인 초속 697 km (시속 250만 km) 로 움직이고 있는데,
Jack G. Hills 의 수학이론에 딱 맞게 이중성이 우리은하 중심부 블랙홀을 만났을 때 한 개가 튕겨나간 것이다.
나이는 8 000 만년이며 결국에는 우리은하를 빠져나갈 것이다. 이렇게 초고속으로 직선운동하는 별을
Hipervelocity Stars 라고 한다.
<SDSS J090745.0+024507 사진.
바다뱀자리 (Hydra)
적경 09/ 07/ 44.99, 적위 +02/45/ 06.9, >
(2) 황새치자리 HE 0437-5439
SDSS J090745.0+024507 발견 이후, 많은 천문학자들이 이름 한번 빛내보려고 이런 별 찾기에 매달린다.
우리은하 2,000 억개 별들 중에서 블랙홀에 접근할 수 있는 별들은 약 1,000 개로 추정되는데, 작년 2011년
현재 이런 별 약 10개가 발견되었다.
SDSS J090745.0+024507 가 발견된 같은 해인 2005년 이것보다 한 수 위인 별이 발견된다.
HE 0437-5439 으로 명명된 이별은 Kueyen 320인치 망원경으로 찾아 냈는데, 황새치자리 (Dorado) 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렵다". 아래에 간단히 설명 드린다. 이것은 무려 초속 720 km (시속 260 만 km)
의 만만치 않은 속도로 도망가고 있는데, 나이는 3,000 만년 밖에 안된 무척 어린 별이다. 질량은 우리 태양의
9배로 추정된다. 아래에 별 사진과 밤하늘 사진 올린다.
참고로 별 이름의 HE 는 Hamburg / ESO Survey 를 의미한다.
<HE 0437-5439 사진>
<밤하늘에서 HE 0437-5439 위치. 황새치자리 (Dorado)에 있다.
적경 04/ 38/ 12.77 적위 -54/ 33/ 11.86, 안시등급 24 등급>
제가 위에서 "보기 어렵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론상으로는 볼 수 있기 때문" 이다. 서울의 위도는 37.5도이므로
서울의 출몰성 적위 한계는 - 52.5도 까지인데, 이 별의 적위는 약 - 54.5 도 이므로 서울에선 당연히 볼 수 없다.
그런데 제주도 서귀포시 위도는 33.2도 되므로 서귀포시 출몰성 적위 한계는 - 56.8 도 이다.
따라서 적위 -54.5 도인 이 별은 서귀포시에선 이론상으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몰직후 보이는 시간이 너무 짧고
수평선 부근 날씨 조건이 까다로을 것이므로 "보가 어렵다"고 표현한 것이다.
서귀포에선 적위 - 52.68 도 (-52도 41') 인 Canopus (노인성) 은 가까스로 보인다고 한다.
더욱 특이한 것은 이별이 원래 3중성이었다고 추정된다는 것이다. 아래에 NASA 가 설명한 그림을 올리며
설명 드린다. 3중성이 우리 은하 중심부를 지나던 중, 중심부 블랙홀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여 1개 별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이중성이 된 두 별은 엄청난 속도로 튕겨나갔다. 은하계를 벗어난 한참 후에
이 2개 별은 결국 서로 합쳐져서 뜨겁고 푸른별로 다시 태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별은 이미 우리은하를
탈츨해서 이미 우리은하 중심부에서 20 만 광년 거리까지 도망가 있다.
<HE 0437-5439 생성 과정>
(3) 고물자리 RX J0822-4300
2007년에 발견된 이 별은 지금까지 알려진 Hypervelocity Stars 중 가장 빠른 별이다. 우주의 대포알 Cosmic Cannonball 이란 별명이 붙어있는데, 현재 초속 1,500 km (시속 540 만 km) 로 이동 중이다.
이 별은 생성과정이 위의 두 별과는 달리, 3,700년전에 Puppis A 별의 폭발로 생긴 중성자성 이며 초신성이
폭발할 때 한쪽으로 방향이 쏠려 폭발해서 이 중성자성은 한쪽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고 다른 잔해들은 반대
방향으로 방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엄청난 속도가 나올 수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래 사진의 배경은 ROSAT (Röntgensatellit –독일 X선 우주망원경) 의 Puppis A 초신성 잔해 사진이다.
폭발 중심부에서 오른쪽으로 중성자성인 RX J0822-4300 가 튕겨나가고 잔해는 왼쪽으로 방출된 것이
설명되어 있다.
우측 사각형은 찬드라 X선 망원경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이 별을 관찰한 사진이다. 5년 동안 중성자성이
이동한 궤적이 화살표 방향으로 표시되어 있다. RX J0822-4300 는 앞으로 수백만년 후에 우리은하 담장을
넘을 것이다. 별 이름의 RX 는 ROSAT Observations 를 의미한다.
<Puppis A 초신성 잔해와 RX J0822-4300 의 이동 궤적.
적경 08/ 23/ 8.16, 적위 - 42/ 41/ 41.4, 안시등급 24 등급>
3가지 별의 은하 탈출과정 살펴보니 모두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이중성이나 3중성 모두 동료 별 하나씩을
탈출 과정에서 잃었고, 더욱이 3중성은 이중성이 결국 푸른색 반짝이는 Single Star 로 다시 태어난다.
탈출 에너지는 희생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앤디 듀프레인도 <쇼생크 탈출>할 때까지 27년이 걸렸다던데…
하여간 모두 희생은 있었으나 그것은 폴 뉴먼의 <영광의 탈출>이고 바브라 스트라이전드의 <스타 탄생>이다.
- Astro News –
<끝>
유태엽 선배님!
글의 내용과 정성에 탄복하고.
상경계출신이면서 이공계 출신을 무색하게 하는 천문지식의 전문성이 돋보이네요!
그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따름입니다.